연재를 마무리하며
이전 글을 쓴 후 지금 마지막 글을 쓰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닥친 일들을 처리하느라 미뤄두기도 했지만,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게 더 정확한 변명이 될 것 같습니다.
첫 글에서 연구 윤리 위반을 직접 목격하면서 겪고 느낀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를 나누는 게, 또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이 글의 목적이라고 썼고, 매회 글을 쓰기 전에 그 목적을 의식적으로 되새김질했습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글을 통해 제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 가능한 형태로 만들다 보면, 연구 윤리 위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누군가에게 제안할 정도는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마지막 글에서는 우리 앞으로 이렇게 합시다, 하면서 모두가 실천할 수 있을 만한 명쾌한 제안을 하고 싶었는데, 실상은 한 글자도 제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연재하는 내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감정들을 공유할 뿐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 글들을 읽어보면 연구 윤리를 위반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 연구 윤리 위반을 목격하고도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피해자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에 대한 실망, 피해가 그 사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된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피해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결국 그 일을 겪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을 배경으로 제 살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뿐이라는 허탈함 같은 감정들이 단어에, 문장에, 문단 사이사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데, 그게 새삼 부끄럽습니다. 내 마음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해서 일기장을 보여줘 놓고 다시 급히 회수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런 와중에 공감해 주시는 댓글을 보면 그래도 여기서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반에 제가 감정이 앞서 연구 부정과 연구 윤리 위반을 구별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루뭉술 글을 썼는데, 그 점을 지적해 주신 분들의 말씀도 들을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마지막 글을 쓰기에 앞서 바랐던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지난 글들에 언급했던 연구 윤리 위반 사건들이 잘 해결되어 피해자가 고통을 덜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바람도 이뤄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연재의 중심 사건이었던, 연구비 부정 지출과 날조로 인해 연구 기관이 재편된 일은 이런 일들이 대개 그렇듯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그 일과 무관한 사람들(
일곱 번째 글)은 돌아오지 못하고, 소속 기관을 옮겨야 했던 교수들(
여덟 번째 글)의 원래 자리 역시 사라진 채입니다. 그 일로 사라진 자리들이 대학 내 부속 기관으로 새로 마련된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만 이전의 규모에 비하면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연구비 부정 지출을 주도한 사람은 해외 다른 대학에 자리를 잡았고, 여전히 국제 학술지의 에디터입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고 (아마도 그의 연구 윤리 위반에 대해 모르는) 해외 신문사와 전문가로서 인터뷰하기도 합니다.
연구 기관에 내려진 처분을 연구 윤리 위반 행위자들의 책임이 아닌 대학의 문제로 몰고 갔던 전 교수(
네 번째 글)는, 자기 생각을 학회지에 기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글은 외부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고집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글에서 다뤘던, 저작권 위반에 관한 사건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인 연구를 선배에게 빼앗긴 대학원생은 학계를 나왔으며, 연구 기획과 수행에 상당한 공헌을 해놓고도 의도적으로 저자에서 배제된 연구자는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동료 대학원생의 논문에 필요한 분석을 대신해주고도 저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가 아무 문제 없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까지 지켜봐야 했던 대학원생은 답답한 마음을 계속 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자신의 공로를 무시하고 그 공적을 가로챈 동료가 이름이 알려진 대학에 취업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마지막 사례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계속 마음이 쓰여 그 일에 도움을 줄 만한 교수를 찾아가 의견을 구했으나 그 끝에는 실망밖에 없었습니다. 교수는 이야기를 다 듣더니 “학위 취득 과정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 의식해서라도 앞으로는 주의하라고 전할 수는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주의하게 하는 게 아니라 잘못한 걸 스스로 바로잡는 게 아닌지 물었더니, “흐음…”하고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피해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하자, 교수는 (가해 학생에 대해) “그럴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하고는 말을 줄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의 경위를 잘 아는 누군가는 “모두 피해 학생이 더 우수하다는 걸 잘 아니까 앞으로는 괜찮을 거야”라며 태평하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 피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죠”라고 대꾸하자 “음…” 하며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펄펄 뛰면서, 다른 사람이 피해자가 되면 그 고통에 관심 없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야 물론 내 몸에 난 생채기가 남의 것보다 훨씬 아프겠죠. 그러나 그렇게 남의 피해를 묵인하다가 결국 가해자를 돕는 꼴이 되지 않을까요. 생각보다 가해는 그 일에서 끝나지 않으며 피해도 거기서 끝나지 않으니까요.
남을 희생시키면서 이익을 편취한 사람은 멀쩡하게 살아갑니다.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남에게 기댄 만큼 남들보다 성취도 빠르죠.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낄지는 몰라도 그들은 대개 일을 올바른 모습으로 돌려놓지 않습니다. 그건 누군가를 희생 삼았다는 죄책감보다 자기 욕심과 목적이 우선이라는 증거고요. 그들이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잠재적인 피해자는 얼마나 더 늘어날까요.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 테지만, 교묘한 가해자들은 본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법입니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 자체로도 고통스럽지만, 그 일을 해결하지 못해 끊임없이 괴롭습니다. 이 일을 공개했을 때 가해자나 그 측근들로부터의 보복도 두렵고, 학계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손가락질받을까 두렵고, 내 커리어에 지장이 생길까 두렵죠.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자기 커리어를 밟아가는 모습을 보면 또 괴롭고요.
안 좋은 소식은 제가 알고 있는 일들 바깥에서도 계속 일어납니다. 연재가 진행 중이던 작년 여름에는 연구 조작이 개인 수준을 넘어 조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기관들에서 저작권을 판매하기도 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1). 한 연구 그룹은 저널의 게스트 에디터에게 특정 인물을 공동 저자에 추가하라는 부당한 요구를 받은 일을 공개했습니다. 괜히 나서서 커리어를 망치지 말라는 등의 동료들의 우려 섞인, 그러나 이 일을 해결하는 과정을 지지할 생각은 없는 목소리도 함께 실었습니다 (참고 문헌 2). 연구 윤리 위반에 대한 규제도, 사회 수준의 경계도 강화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도 결국 자기 욕구를 택하고 마는 사람들은 있는 모양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연구 윤리 위반에 대해 안전하게 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어떤 안전한 방식으로든 범인이 드러나는 이상 고발자가 아예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은밀하게 일어나는 만큼 고발할 수 있을 만큼 그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겠죠. 피해자가 있는 일이라면, 그가 원치 않았을지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는 가해자를 고발하기 어렵습니다.
완전히 기댈 수 없는 시스템하에서, 누군가 일으킨 연구 윤리 위반의 바람을 맞고 있는 개인들은 너무나 작습니다. 조직이 자르면 잘려야 하고 커뮤니티가 침묵을 종용하면 꾹 참게 됩니다. 이런 일로 힘들어하는 이가 있어도 개인이 구제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고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이나 정책 등 시스템의 변화를 이끄는 배경에는 일반 시민들의 염원과 인식 변화가 있는 것처럼, 연구 윤리 위반에 관해서도 사건과 무관한 구성원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관심이나 무심함으로 연구 윤리 위반을 묵인하고 있는 건 아닌지, 피해자를 혼자 두고 가해자를 돕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성찰하는 것, 연구 윤리 위반을 한 사람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면 일을 올바르게 되돌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연구 윤리 위반의 피해자가 자기 권리를 찾고 피해를 복구하고 싶다고 결심했을 때 편이 되어 주는 것 등.
그리고 공유하는 것. 지난 얼마간 연구 윤리 위반에 대해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몇 번이고 삼켜왔습니다. 같은 일을 비슷한 깊이로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모르는 척하고 큰일이 아니라는 듯 대꾸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상식이 잘못된 건지 의심도 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도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더군요. 자신이 겪은 연구 윤리 위반의 사례를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지면에 공유한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참고 문헌 2)
제 글을 읽고 이런 마음을 느끼시는 분이 계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이라는 게 제가 원하는 대로 읽히지만은 않겠죠. 어떤 분께는 덮어두고 싶었던 일을 괜히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분께는 말해봐야 소용없는 일을 다룬 글 쪼가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런 글이라 하더라도, 이후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혹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실은 중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먹을 때 도려내지고 먹는다고 맛있지도 않은, 그러나 또 다른 파프리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파프리카의 씨앗’처럼요.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참고 문헌
1. Richardson, R. A., Hong, S. S., Byrne, J. A., Stoeger, T., & Amaral, L. A. N. (2025). The entities enabling scientific fraud at scale are large, resilient, and growing rapidly.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22(32), e2420092122.
https://doi.org/10.1073/pnas.2420092122
2. von Ungern-Sternberg, B. S., Regli, A., Stepanovic, B., & Becke-Jakob, K. (2024). Authorship misconduct: professional misconduct in editorial handling of authorship.
British Journal of Anaesthesia,
133(6), 1134-1136.
https://doi.org/10.1016/j.bja.2024.08.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