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과정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나만의 주제를 가지고 실험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가장 먼저 수행해야 했던 실험은, 이미 여러 논문에서 효과가 검증된 약물을 사용해 특정 반응을 유도하는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간단한 실험이었기 때문에 한 번에 성공할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 예상했던 결과가 계속 나오지 않았다. 주말까지 연구실에 나와 실험을 반복했지만 기대한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간단한 실험조차 해내지 못하는 상황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꼬리를 물었고, 그때 느꼈던 무력감은 지금도 선명하다.
(Image from Pexels)연구자의 삶은 실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며칠 밤낮으로 준비한 샘플이 사소한 실수 하나로 모두 무용지물이 되기도 하며,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 연구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치밀하게 연구 계획을 세우고 신중하게 실험을 진행하더라도, 예상했던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데이터를 모아 논문을 작성하여도 그것을 출판사에 투고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몇 개월, 어쩌면 몇 년을 들여 작성한 소중한 논문이 단 한 통의 메일로 인해 거절 통보를 받는 일은 비교적 흔하며, 이러한 경험은 연구자에게 깊은 무력감과 자괴감을 안겨준다. 연구자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실패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며 많은 연구자를 슬럼프의 늪으로 빠트린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밥 먹듯 겪는 실패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에 다니는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공은 제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바로 연구의 성공보다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BRIC의 실험 Q&A 게시판만 살펴봐도 실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조언을 구하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결국 실패란 연구자라면 누구나 반복해서 마주하게 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기에 연구자는 실패 그 자체로 인해 자신을 의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 모든 연구자는 수많은 실패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은, 모든 실패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패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실패의 빈도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실험과 같은 기술적인 과정에서 반복적인 실패가 발생한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실험의 성패는 때로는 정말로 사소한 요소들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실험에 실패한다면 실험 조건이 다른 문헌들과 유사한지, 시약에는 문제가 없는지, 장비의 상태는 적절한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또한, 실험이 제대로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조군(control) 설정은 필수적이다. 대조군은 실험 결과의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양성 대조군(positive control)은 실험에서 반드시 반응이 나타나야 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특정 유전자의 knock-down이 DNA 손상을 유발하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에서는, 이미 DNA 손상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약을 처리하는 것이 양성 대조군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음성 대조군(negative control)은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조건이다. 예를 들어, 약물을 녹이는 데 사용된 용매(solvent)만을 처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양성과 음성 대조군 모두에서 예상한 결과가 확인된다면, 실험 프로토콜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실험 실패의 원인은 가설 설정이나 생물학적 변수 등 다른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반복적인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논의(discussion)이다. 함께 일하는 연구실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소하게 지나쳤던 부분들을 발견하거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았던 기법이나 장비 사용법에 대한 실질적인 팁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처음 인트로에 있었던 문제 역시 연구실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매우 사소하고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깨달았고, 곧바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학회나 세미나에서 만난 연구자들과의 논의 또한 다른 시각으로 나의 연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 또한, ‘Research Gate’ 등의 다양한 온라인 연구자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활발한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 이러한 커뮤니티에서 실험 실패 사례를 공유하거나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올리면, 다양한 연구자들로부터 좋은 조언을 들을 수 있다.
(Image from Pexels) 어렵게 데이터를 정리하고 논문을 작성하여 저널에 투고하는 과정에서 다른 종류의 실패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몇 주 또는 몇 달을 기다려 받은 에디터의 이메일에서 rejection 통보를 받는 일은 매우 흔하다. 심지어는 수정 요청을 받아 논문을 성실히 보완했음에도, 최종적으로는 rejection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반복적인 실패는 연구자로 하여금 자신의 연구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한다. 리뷰어들의 comment는 때로는 냉정하고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연구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논리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담겨 있다. 또한, 좋은 저널에 실린 논문들을 꾸준히 읽는 습관은 매우 유익하다. 이를 통해 해당 저널이 어떤 주제를 선호하는지, 어떤 수준과 구성의 논문을 요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자신의 연구 결과를 그것에 맞게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실패를 수용하고 논문을 수정하여 다시 투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미래에 더 깊이 있고 완성도 높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는 대게 우리의 정신을 흔들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존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실패는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이후로는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게 되었고, 실패를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한 명의 탐정이 되어, 실패가 발생한 원인을 추리 게임을 하듯 분석하게 되었고, 이러한 접근은 연구를 보다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