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고비, 심리적 슬럼프를 이겨내는 법] 7. Closing
슬럼프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 이유는 사실 거창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잊을 때쯤 찾아오는 슬럼프를 어떻게든 물리쳐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연구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 이제는 좀 편해지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내 안일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치 못한 일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곤 하였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완전히 엎어지거나, 누군가와 대판 싸우는 등의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공허함이 자리 잡았고, 그게 스트레스가 되어 결국 슬럼프로 이어졌다. 문득 '내 직업이 문제를 정의하고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슬럼프도 하나의 연구 대상처럼 분석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슬럼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면 그에 대한 해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연재를 시작하며 내가 어떠한 요소들로부터 심리적 피로를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비교에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습관적으로 나를 남들과 저울질하며 살고 있었다. 대학원 합격 후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동기들은 나보다 훨씬 똑똑할 텐데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학부 연구생 경력이 긴 친구들에 비해 나는 너무 뒤처진 게 아닐까?' 같은, 지금 생각하면 아무 의미 없는 비교들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입학 후에도 이 비교의 굴레는 멈추지 않았다. 동기들은 나보다 훨씬 잘난 것으로 보였고, 화려한 연구 실적을 내는 선배들을 보며 '과연 내가 저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지만, 그때 느꼈던 심리적 압박감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Image from Pixabay)실패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선배가 설명해 줄 때는 분명 쉬워 보였던 실험인데, 막상 혼자 해보면 꼭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소한 실험 하나 재현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였고, ‘나한테 재능이 없나?’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실험 외에도 기대 이하의 시험 성적, 발표 때 버벅거렸던 기억들 등 다양한 실패들이 큰 스트레스였다. 지금 돌아보면 누구나 겪는 시행착오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나 자신을 못살게 굴었는지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진다.
여러 실패 경험에 더해 연구실 내 인간관계 또한 큰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루 대부분을 제한된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과 보내다 보니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연구 자체만으로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 상황에서, 사람 사이의 갈등은 큰 심리적 압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을 반복하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연구실에서 모든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 또한 익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실험과 각종 업무에 익숙해지자,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연구 생활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곧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업무량이 많아지니 어느 순간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상당히 지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매일 반복되는 비슷한 업무 속에서 연구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순간들도 찾아왔다.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취미 생활을 가져본다던가 여행을 떠나는 등의 여러 시도를 해본 결과, 피로감과 권태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슬럼프가 찾아온 이유를 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슬럼프는 연구 생활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것은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대충 살아가는 사람에게 슬럼프는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슬럼프가 온다는 것은 그만큼 성실하게, 치열하게 달려왔다는 증거이며 지금까지 잘 해내 왔다는 신호이다. 슬럼프는 실패나 후퇴가 아니라, 꾸준히 달려오다 잠시 호흡이 가빠져 있는 상태에 가깝다. 잠시 멈추어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면 원하는 목표에 좀 더 가까워질 것이다.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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