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치고 열어본 SNS에는 나의 시절 인연들이 모여 있다. 한때는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의 이직 소식, 승진 소식, 결혼 소식, 임신 소식, 출산 소식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불 꺼진 방, 핸드폰 화면의 빛만이 얼굴을 비추는 시간. 습관처럼 열어보는 SNS가 한동안 내 핸드폰에서 가장 무거운 앱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나. 박사를 받은 뒤에 해외에서 직장, 그것도 박봉의 임시직으로 살겠다는 선택을 한 나와, 한국에서 멋지게 자리 잡고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세워나가는 나의 지난 시절 인연들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타지에서 이러한 고생을 하면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있었던 학회에 다녀온 뒤부터, 이런 나의 생각은 불안을 먹고 피어나 무기력으로 번졌다. 나만 빼고 모두 멋지게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난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지금 돌이켜봐도 심적으로 너무도 힘들었던 대학원 생활 속에서 다들 배우자도 만나고, 서로 당겨주고 끌어주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무기력증만 남은 것 같았다.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여행도 미루고 결혼도 미루고 살아온 것에 비해 내가 만든 성과는 크지 않았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박사 생활 동기는 희미해지고, 포닥을 마친 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바꿔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 울음을 삼키거나 내리 잠을 자는 일밖에 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매일 밤 일과를 마치고 누우면 아침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렇게 눈을 감으면, 다음 날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탤런트 홍진경 씨는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던데, 마음에 걸리는 게 무척 많은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자신의 일을 할 때 항상 행복한 사람들이 부럽다. 어떻게 하면 출근을 즐겁게 하고 퇴근을 홀가분하게 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일 하는 모든 순간순간이 감사와 행복으로 가득 찰 수 있을까?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곳에 나의 욕망이 있다고 하던데, 나의 욕망은 크게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몰랐다. 내가 학창 시절 꿈꾸던 30대의 삶은 이미 가정도 꾸리고, 번듯한 직장에서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는데. 내가 그리고 있는 삶의 궤적은 그것을 한참 벗어났다. 엄마 아빠는 지금 내 나이에 이미 나뿐만 아니라 동생도 낳아서 기르고 계셨는데, 그것에 비하면 나는 서른을 넘긴 지도 한참 지난 이 나이에도 아직도 어린아이 같다.
물론 30대가 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결혼을 강요하시지도 않는다. 모든 꽃에는 저마다의 피어나는 계절이 있다고 했다. 30대에 꼭 결혼을 해야 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의 생물학적 시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몸은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마음은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남은 인생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문득 무겁게 다가와 겁이 났다. 고년차 포닥이 되면서, 3년 전 포닥을 시작하며 잠시 미뤄두었던 내 커리어의 방향에 대한 답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포닥 생활을 하며 만난 분들 중, 학계에 남아야 할지 회사로 가야 할지 고민된다는 나의 말에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 그럼 무조건 학계에 남아라.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더 고민하지 말고 깔끔하게 포기해라.”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연구가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계속 붙들고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그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나 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도와준 누군가의 사랑 덕분이며, 나 또한 타인을 사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의미를 전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는 걸까. 돌이켜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사랑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는 소중한 가족들, 그리고 멀리 타국에 있어도 잊지 않고 종종 안부를 물어주는 소중한 친구들.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들의 존재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어쩌면 내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힘들고 지칠 때에도 내가 생명공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인류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는 감정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누군가를 위해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잊고 지내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내가 학계에 남기보다는 산업계에 더 끌리는 이유를 조금씩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연구 자체를 위한 연구보다,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보다 실질적으로 활용해 환자와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던 답은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왜 연구하고 싶은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Everything happens for reason” 요즘 나를 붙들어 주는 한 마디이다. 모든 것은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이곳에서 포닥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고민들이 나를 찾아 온 것도 모두 다 이유가 있었던 일이라고 믿어보면 마음이 한결 좀 편해진다.
SNS를 쿼티 자판으로 한글 입력하면 '눈'이다. SNS는 우리의 눈이다. 어떤 것이든 볼 수 있지만, 보는 대로 믿게 한다. 누군가의 결혼식 사진, 승진 소식, 완벽해 보이는 일상. 그 프레임 밖에 있는 불안과 눈물은 아무도 찍어 올리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면서도 매번 잊는다. 남의 하이라이트 필름과 나의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하루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온 셈이다. 애초에 공정한 비교가 아니었다. 잠시라도 눈을 감아보자. 눈을 감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답답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휴식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눈을 감고, 나 스스로를 온전히 바라보고, 내 앞에 놓여있는 소중한 하루만 사는 연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들의 속도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늦게 핀 꽃도 결국은 핀다. 그렇게 그 믿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타지에서의 하루를 살아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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