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더니 간밤에 한국에서 끔찍한 비행기 사고가 났다며 잘 도착했냐는 연락을 받았다. 무척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아무래도 타국에 있다 보니 이런 큰 사건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한국을 떠나온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둘째 날에는 그래도 어디든 나가볼까 해서, 물어물어 현지인 맛집이라는 브런치 가게를 찾아갔다. (사실은 여전히 한식이 땡겼지만, 모처럼이니...^^)
가는 길이 꽤 험난했는데, 지하철과 트램, 버스까지 타고 힘들게 도착한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비도 내렸다. 그런데 신기한 게 주위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우산을 왜 안 쓰는 건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처럼 비가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종일 쏟아붓지도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지내다 보니 확실히 하루 내내 비가 내리는 날에도 잠깐 내리다 멈추고 다시 내리고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강수량도 적은 편이었다.
10분 정도 빗길을 뚫고 칵테일과 브런치를 파는 가게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들어서자 금발의 백인 서버가 “어쩌고 저쩌고 okay?”라고 했다. 느낌으로 알아들었는데 bar 자리 앉아도 괜찮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이럴 땐 자연스럽게 알아들을 척을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괜찮다” 말하고 bar 자리에 앉아 제일 평범해 보이는 핫케이크(근데 블루베리를 곁들인)를 시켰다.
9만 원내가 단풍국을 너무 얕봤나 보다. 엄청나게 단 메이플 시럽에 당해버렸다. 조금 뿌린다는 게 핫케이크가 푹 절여져서 너무 달았다. 배가 고팠지만, 도저히 그 핫케이크(그런데 블루베리를 곁들인)를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문득 San Diego 때처럼 앞으로 이런 걸 먹고 어찌 버틸지.. 겁이 났다.
음식을 남겼더니, 직원이 box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No ^^;; It’s okay.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나섰다. 그 블루베리 핫케이크 하나와 터키샌드위치 그리고 음료 두 잔에 팁과 세금까지 한국 돈으로 9만 원은 줬던 것 같다.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3만 원이든 5만 원이든 경험이라 생각하고 현지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이젠 이런 평범한 한 끼도 모두 생활비라고 생각하니 퍽 부담스러웠다. (마치 5만 원짜리 순대 국밥을 먹는 느낌이다)
한국 사람들이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이 넘었네, 어쨌네- 뉴욕에서 베이글이랑 커피를 사서 먹으면 3만 원이네, 4만 원이 넘네 할 때는, 여행 가서 그 나라 그 도시에 물가에 맞는 음식을 사 먹는 것인데, 왜 이리 호들갑인가 했었다. 여행객에게나 비싸게 체감되는 것이지, 거기 사는 현지인들에겐 평범한 수준일 거로 생각했었다. 불과 2달 전에 San Diego에서도 둘이서 60불, 70불짜리 (대략 9만 원) 브런치를 별생각 없이 사 먹었었던 나였는데, 이제 여기서 생활한다 생각하니 너무 비쌌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식재료값이 물가에 비해 저렴하므로, 외식 물가가 비싼 것이 더더욱 체감 됐다.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첫 외식에서 안 좋은 인상을 받은 후, 날도 우중충한 데다 배도 차지 않아서 저녁에는 한식을 먹기로 했다. 며칠 신세 지게 된 곳에서 대단한 음식을 해 먹기도 애매했던 터라, 근처 H마트에서 할인하는 삼양라면을 구매했다.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구매한 삼양라면은 거의 라볶이 수준으로 달았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다 버렸다. 모든 수출용 한국 라면은 달짝지근한 걸까?... 라면애호가인 나에겐 정말 너무 실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캐나다의 겨울은 대체로 흐리고 날이 좋지 않아서 시차 적응을 핑계로 며칠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 뒤로는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요양을 했다. 아무래도 출국하기 전까지 내심 스트레스가 많았었는지 몸과 마음 모두 너무 피곤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출국 2일 만에 겪는 Homesick?) 미국에 가져갈 한국 음식을 사러 마트에 장을 보러 갈까 잠시 생각도 해보았지만, 괜히 미국으로 입국할 때 뭐든 간에 문제가 될까 봐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후회막심)
그렇게 며칠이 지나 12월 30일이 되었다. 놀랍게도 아직 미국에서 머물 곳을 계약하지 않았기에, Zillow와 Apartments.com에 들어가 근처 아파트를 검색했다.
가는 곳에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거나, 랩에 다른 포스닥이 있었다면 연락하며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join 하는 랩에는 마땅히 도와 달라 부탁할 사람이 없었기에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교수님도 그곳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잘 모르신다 했다).
이전 연구실 선후배며 친구들이며 모두 하나같이 말하는 것이, 미국에선 집에서 직장까지 걸어 다닐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차를 사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차를 타고 다녔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심리적으로 당장 차를 산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차를 사는 것도 일단 정착한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차 없이 출퇴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지난번에 언급했었지만, 해당 지역에 거주 중인 한국 분들은 다운타운은 피하라 했는데, 교수님을 통해 추천받은 곳들은 전부 다운타운 근처에 있었다. 아파트 계약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구글 로드뷰로 아무리 주위 분위기를 살펴본다 한들, 어디가 좋고 안전한 아파트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저렴한 에어비앤비를 찾아서 임시숙소로 계약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나중에 이사하는 것이 문제였다. 한 달 정도 열심히 좋은 아파트를 찾아 tour를 하고 집을 계약해서 이사를 결정한다 해도, 그사이 짐이 늘어나 있을 테고.. 나중에 혼자서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도 내심 막막했다. 거기에다가 한국처럼 근무시간에 외출하여 개인 용무를 보는 것이 눈치 보일지, 아니면 초반에는 이해해 주는 분위기일지도 모르겠고 이런 모든 것조차 조차 신경 쓰였다. (소심)
결국 임시숙소가 아닌 내가 미국으로 넘어가는 1월 1일이나 1월 2일에 입주 가능한 아파트를 찾아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자신감이었나 싶다. (미국에서 며칠 앞두고 이사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듯)
미국은 대체로 이사 2~3달 전에 lease를 갱신할 것인지 아니면 종료할 것인지 통보해야 한다. 거기다, 아파트 management 팀은 보통 새로운 세입자를 받기로 결정된 직후 나 며칠 후에 (계약을 완료한 이후) 가전제품 등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청소를 한다. 듣기로는 Move-in date을 정해 놨어도, Apartment 팀의 사정으로, 예를 들어 청소가 아직 안 됐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Move-in date이 뒤로 밀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은 이사 나올 집과 이사할 집을 여유롭게 일주일 정도 겹치게 계약을 한단다.
당시 그런 분위기를 몰랐던 나는, 최대한 비대면 연락이 가능한 아파트를 찾아 메시지나 text, e-mail을 보내서 1월 2일 또는 3일에 입주하고 싶은데 가능한지 문의했다. 당시 아파트 홈페이지에 당장 3일 뒤인 1월 2일이나 1월 3일에도 Available unit이 있다고 기재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이제 막 remodeling이 끝난 꽤 큰 apartment로 세입자를 받을 새로운 Unit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문의해 보니 내가 원하는 유닛은 1월 3일까지 준비되지 않는다며, 다른 층의 unit으로 입주할 것을 권유했다. 내가 원하는 곳은 6층 건물의 4층이었는데 권유받은 그곳은 3층이라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고민하다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내가 외국인이며 J1 status로 미국에 입국하는데 계약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답을 하지 않고 일단 Apply를 하라며 파일이 첨부된 링크를 보내줬고, 이게 뭔지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개인정보를 작성해서 보내주었더니 20불을 청구당했다.
미국의 집 구하기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었다. 짬 날 때 블로그에서 심심찮게 접했던 내용이긴 했지만,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던 터라, 막상 내가 직접 계약하려고 했을 때는 뭐가 뭔지 프로세스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막상 내가 겪고 나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