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해외 포닥, 한국인은 나뿐이라고?] (16) 북미행 프레스티지 좌석에 꿈과 희망을 싣고
그렇다. DS-2019를 집에 두고 왔다.
다시 갔다 오려면 리무진을 놓치고. 리무진을 놓치면 그 비행기를 못 탄다. 그러면 비행기를 미뤄야 하는데... 어디 보자 보너스 좌석 티켓 변경 비용은 4만 원…
폭풍 서치를 해보니, 예전에는 원본 DS-2019가 무조건 필요했지만, 이제는 (2023년 4월부터는) PDF 파일로 보내주므로 사실상 원본이랄 게 없다.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아보였다. 하지만 선명히 찍혔던 대사관 영사님의 파란색 서명이 문제였다 (원본 확인을 위해 일부러 색이 있는 볼펜으로 서명을 해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행여나 문제가 되어 입국에 차질이 생길까 두려워 고민이 되었다. 바꿀까 말까 하다가. 그냥 일단 떠나기로 했다 (출국준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픈 마음) 캐나다에서 미국 입국까진 약 6일간의 시간이 있으니 FedEx로 서류를 받으면 되겠거니 싶었고, 종이 한 장이니까 비용도 많이 안 나오고 괜찮겠거니 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무려 8만 원이었다는 건 안 비밀)
이래저래 밤도 새웠고, 당황해서 식은땀이 나는데, 패딩은 또 어찌나 더운지 정말 무겁고 힘들고 미치겠네 이거.
아침시간 비행은 여러모로 참 불편하다. 느긋하게 라운지에서 쉴 시간도 가족과 함께 커피를 마실 시간도 애매하다. 요즘처럼 해외여행객들이 많은 시기에는 체크인 후 곧바로 출국장 줄을 서야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5시 반쯤 도착한 공항 한켠에 짐을 펼쳤다. 부모님과 번갈아가며 32킬로를 맞추느라 거진 1시간을 썼다. 신발 한 짝까지 양쪽 짐에 무게를 재가며 분배한 끝에, 정확히 32킬로로 맞췄다. 가자마자 차 없이 식료품 구하는 게 가능할까 걱정되어 챙겨간 참기름, 자그마한 고추장등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들은 전부 부모님 편에 돌려보냈다. 그렇게 짐을 들고 체크인을 하려다 보니, 이코노미와 달리 프레스티지는 체크인 하는 곳이 따로 있다 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그리로 향했다. 한산한 분위기. 그리고 과하게 친절한 직원들. 드디어 프레스티지를 타는구나 실감이 났다. 체크인할 때 직원이 내 여권을 확인하며,
“eTA는 신청하신 거죠? J-1 비자 소지자신데,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넘어가시는 건가요? 캐나다 입국 시 이 부분 물어보실 수도 있는데, 영어 소통 가능하시죠?” 등등의 질문을 했다. eTA (Electronic Travel Authorization)는 미국의 ESTA와 같은 캐나다의 전자여행허가 시스템이다. 발급비용도 6~7불 정도로 저렴하며 5년간 (또는 여권 남은 유효기간 중 더 짧은 시한) 유효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경우 eTA로 캐나다에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다. 이걸 알고 있던 나는 출국 며칠 전 eTA를 신청해 뒀었다. 그리고 패기로 도전하는 육로입국도 어떻게든 되겠거니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큰 걱정 없이 "아 네네, 네네네"라 하며 넘겼다. 사실 진짜 걱정은 따로 있었는데...
이민가방을 3단까지 펼치면 대한항공 수하물 기준 크기보다 한참 초과된다. 이럴 경우 대형수하물로 분리가 되는데 추가요금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는 “무게”가 중요하지 “짐 크기”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는 3단은 크기가 초과되니 2단까지만 펼쳐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이민가방 3단으로 펼치고 대형 위탁 수하물 추가요금을 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인터넷에서 들은 정보를 믿고 3단으로 펼쳐 짐을 쌌다. 하지만 쫄보가 어디 갈까. 수하물 체크인 할 때 이거 너무 커서 안 된다고 빠꾸 먹을까 봐 내내 쫄아있었다.
이 자리에서 내 경험을 공유하자면, 이민가방 정도는 3단으로 펼쳐도 괜찮다. 그들은 이민가방 정도는 부피가 아닌 무게만 본다. 이노코미든 프레스티지든 퍼스트 클래스든 위탁 수하물 1개당 32킬로를 초과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는 말이다. 특히 미주 노선은 출장자 이민자 유학생등 이민가방 들고 떠나는 승객이 많아서 나와 똑같은 이민가방이 여러 개 쌓여있었는데, 나 포함 모두 “3단”이었다.
순탄히 체크인을 마치고, 부모님과의 "잘 다녀와.., 갈게요... 가서 연락할게요...🥲" 하는 벅찬 이별을 한 뒤. 부랴부랴 출국장으로 향하는 줄을 섰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잠깐 찔끔했던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새벽부터 그런 북새통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부모님과 도란도란 커피 한잔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기내 캐리어 하나에,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은 핸드 캐리백과 뚱뚱한 백팩. 웬만한 이불만큼 컸던 롱패딩과 꾀죄죄함을 가리기 위해 눌러쓴 칼하트 비니까지 1시간 정도 줄을 섰는데 주위에 사람도 많다 보니 온 더워서 땀도 나고 상당히 불쾌했다. 얼른 씻고 싶었다.
그 많은 짐을 가지고 1시간이나 대기하면서 짐 검사를 마친 뒤, 출국장에 들어선 즉시 라운지로 향했다. 대한항공 라운지에 가서 짐을 맡기고 샤워실을 찾아 나섰다. (어디서 본 건 있는 1인) 샤워실 앞에 직원분이 계셨는데 대기가 있다며 이름을 적고 가면 진동벨을 주겠다 하셨다. 그사이 바나나, 요거트 등 간단한 음식으로 떼웠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칵테일을 먹는 것 같아서 기웃거렸는데, 바텐더가 바로 앞에서 말아주는 것 같았다. 간단한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외쿡인이 날 보더니 갑자기 주섬주섬 뭔가 움직이셨다 그리고 그걸 보여주셨다. 그건 바로 칼하트 로고가 달린 후드집업이었다.
내 모자에 있는 칼하트 로고와 본인 후드집업에 달린 로고가 같다며, 친근한 웃음을 건네는 그분께 달리 할 말은 없고 아하하하하 하고 과하게 웃어 보였다. 솔직히 내가 쓴 모자에 그 로고가 있는지도 몰랐었기 때문에 처음에 어리둥절했기도 하고. 이제 영어권 나라로 떠나는데 영어는커녕 이런 기본적인 리액션도 못하는 나를 보니 참 쓴웃음이 났다. 휴 미국 가면 어떻게 사냐.. 대체 영어로 인터뷰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미스터리다.
마침 샤워실에서 받은 진동벨이 울려서 자리를 피했다.
백화점 화장실처럼 생긴 그곳에서 편하게 샤워를 했다. 내가 워낙 오래 씻다 보니, 중간에 직원이 노크를 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오래도록 개운하게 샤워를 마쳤다. 정말 얼마나 뽀송하던지! 비행 직전에 하는 샤워는 정말 환상적이다. 특히 미주로 향하는 장거리 노선에서는 더욱더 빛을 발한다. 비행 내내 뽀송한 상태로 쾌적한 기분이 든다.
샤워 후에는 잠시 면세물품 인도장으로 향했다. 짐이 많았기 때문에 무얼 딱히 사고 싶진 않았지만, 처음 만날 미국 교수님과 랩멤버에게 줄 오설록 초콜릿 몇 개를 미리 주문해 뒀다. 근데 정말 사람이 어어어어얼마나 많은지. 그 초콜릿 하나 받자고 거의 30분을 대기했다. 라운지에서는 샤워하느라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었는데… 인도장에서 대기하느라 한참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보딩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탑승구가 거의 터미널 끝쪽에 있었기 때문에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짐이 너무 많아서 가는 내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보통 프레스티지 클래스가 먼저 탑승하도록 하던데, 나는 그것이 무색하게 너무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큰 차이를 못 느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경기도 오산. 아예 출입하는 문이 다르다. 이코노미와는 다른 출입구. 벌써부터 돈값하는구나 느꼈다.
인생 첫 비즈니스좌석에 앉으니 옆자리는 당연히 비어있다. 널럴한 공간에 마음까지 편해졌다. 웰컴 드링크로 샴페인을 한 잔 건네받고 얼마 뒤. 승무원이 재킷을 맡아주겠다며 받아갔다. 이불에 준할 정도로 큼직했던 롱패딩을 가져가 주다니... 너무 고마웠다.
다 좋은 프레스티지좌석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코노미와 달리 발 밑에 개인물품을 놔둘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모든 짐은 오버헤드빈에 올려야 한다. 이것저것 꺼낼 것도 많고 한데,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이어폰을 뺀 나머지를 모두 오버헤드빈으로 올려버리는 실수를 하고 만다. 중간에 꺼내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부모님과 같이 무게 맞춘다고 이것저것 욱여넣어버리는 바람에 이미 터질 듯이 패킹되어 버린 내 가방 1, 가방 2, 가방 3은 이미 뭘 꺼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맛 라면
San Diego로 떠났던 그날과는 사뭇 다른 쾌적한 비행. 비행기에서 누워서 잘 수 있다니 이코노미증후군은 정말 ‘이코노미’만의 증후군이었다. 비행기에서 스테이크도 썰어주고 중간에 간식으로 끓인 라면도 호로록해주고. 아이스크림이나 과일 간식도 야무지게 먹고 아침으로도 광어필레 구이라는 근사한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의외로 비리고 맛이 없는 메뉴에 놀란 나는 광어에는 거의 손대지 않고 대부분을 남겼는데 내 라인 담당 승무원이 음식에 손대지 않은 걸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맛에 안 맞냐고 물어왔다. 소심한 나는 그냥 배가 안 고파서 그랬다고 얼버무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요청하면 메뉴를 바꿔서 다시 준다고 하는 것 같았다. (짜릿한 자본주의)
아쉽게도 짧았던(?) 비행이 끝나고 캐나다에 도착한 나는 힘겹게 다시 가방 1, 2, 3을 꺼낸뒤 승무원이 가져다준 (짐이나 다름없던) 롱패딩도 마지못해 받아 들었다.
후끈한 실내공기에 차마 롱패딩을 입지도 못하고 질질 끌고 나가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거기다 기체에서 내린 직후 캐리어가 넘어져버렸는데, 아무도 도와주지는 않고 뒤에선 사람들이 밀고 나가는 통에 정말 진땀이 났다. 하나 일으켜 세우면 하나가 넘어가고 다시 하나 일으켜 세우면 뒤에서 사람들이 밀고 나가고 당황해서 땀이 비 오듯 했다. 무슨무슨 법? 때문에 승무원은 승객이 짐을 옮기는 걸 도와줄 수 없다나 뭐라나 하는데. 뭐든 간에 그럴 경우 뒷사람들 보고 잠시 멈춰달라고 하거나 교통정리를 도와줄 수 있던 것 아닐까..?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만 묘하게 아쉬웠다.
그렇게 힘겹게 짐을 추슬러서 캐나다 입국장으로 향했다. 그랬더니 무슨 기계로 간단한 개인정보를 입력한 뒤 출입국 심사를 받으라 했다. 흑백으로 찍힌 얼굴 사진과 영수증(?) 같은 신고서 종이를 들고 남들 가는 길로 따라 나가니. 공항직원이 우리 쪽 사람들에게 손짓하여 이쪽으로 나가라 알려줬다. 그리고 그렇게 공항직원의 안내를 따라 걷다 보니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다. (일본만큼 간단한 캐나다 입국)
내 랜딩시간에 맞춰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분이 얼떨결에 밖으로 나와버린 나와의 상봉의 순간을 동영상으로 찍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부모님께 보내드렸더니, 부모님께선 라운지에서 샤워했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더니 꼴이 왜 그래?라고 하셨다. 짐 가지고 쩔쩔매느라 땀에 쩔어서 꾀죄죄한 모습을 보니 타박받을만할 모양새긴 했다. 그 잠깐 공항에서 이동하는데 그렇게 땀이 날 줄이야..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싶었다.
앉아서 쉴 새도 없이 바로 빅사이즈 우버를 불러서 숙소로 향했다 (일반 승용차로는 어림없는 짐의 양). 집에 도착하여 곧바로 샤워를 하고 두통약을 먹었다. 비행기에서 와인을 너무 먹은 탓도 있지만 간밤에 짐 싸느라 잔뜩 받은 스트레스와 비행기 내 기압차로 인해 두통이 몰려왔는데, 약이 없어서 내내 지끈지끈 아팠다. 약을 먹고 바로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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