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해외 포닥, 한국인은 나뿐이라고?] (12) 출국 2달 전 미국 방문기-4탄
현지 시각 새벽 3시 잠에서 깼다.
난 평소에도 새벽 3~4시쯤 취침하곤 했기 때문에 내가 시차를 겪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난생처음 겪는 시차에 피곤함보다 일찍 일어난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미국은 학회도 참 일찍부터 시작한다. 무려 아침 7시에 시작되는 talk도 있었으니 말이다. 일찍 일어난 김에 온라인에서 학회 스케줄을 체크하고 듣고 싶은 talk을 체크했다. 여유 있게 준비한 뒤 호텔 내에 준비된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았다. 그러곤 호텔에서 나와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conference hall로 향했다.
세상에나 너무 추웠다.
캘리포니아는 11월에도 따뜻할 줄 알고 얇은 외투만 가지고 왔는데 패딩을 가져왔어야 하는 날씨였다. 추위를 느낄 새도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둘러서 conference hall에 들어갔다. 워낙 큰 건물이라 그런지 한참을 헤매고 난 뒤 겨우 학회 등록증을 받는 줄을 찾았다. 찐 북미 외국인들이 많아서 너무너무 긴장됐다. 내 차례를 기다리던 중 뒤에 있는 여자분이 WIFI 비밀번호를 아느냐며 물어왔지만 (실제로 모르기도 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몹시 당황했다. 난생처음 미국에 와서 그런지 별것도 아닌 것에도 흠칫흠칫 놀라며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겨우 내 차례가 되어 학회등록 정보를 보여주니, 리셉션 직원이 즉석에서 등록증을 뽑아주며 Welcome Doctor!라고 해주었던 게 인상 깊었다. 받은 명찰 옆에는 내가 출입할 수 있는 무료 Talk과 출입할 수 없는 유료 Talk을 구분할 수 있도록 QR코드 그리고 이용할 수 있는 WIFI 정보가 함께 들어있었다. 가 함께 프린트되어 있었다. 유료 또는 점심이 제공되는 talk의 경우 member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매번 QR을 제시해야 출입할 수 있었다. 큰 규모의 국제학술대회가 오랜만이라 모든 것이 새로웠다.
전날 아무것도 못 먹은 탓에, 배가 몹시 고팠다. 하지만 한국이랑 달리 점심을 주지 않았다. 다행히 근처에 식당가가 있어서 조금 걸어 나가서 밥을 사 먹을 수 있었지만, 패스트푸드점은 없었고 제대로 된(?) 식당만 즐비했다. 혼자 가기엔 겁이 나서 커피만 3~4잔 마시며 굶주림을 달랬다. 첫날의 일정이 끝난 뒤 세븐일레븐이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가 가격을 보고 놀라자 빠졌다. 한국에선 3천 원도 안 할 것 같은 볼품없는 편의점 샌드위치가 8~9불이었다. 미국 물가를 실감했다. 그리고 세븐일레븐 근처에는 유모차? 마트 카트? 같은 것을 끌고 다니는 노숙자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웠다. (물가에 놀라고, 분위기에 놀라고)
겨우겨우 지인과 합류하여 타코나 햄버거로 허기를 달랠 수 있었지만 입맛에 맞지 않았다. 라면이 먹고 싶어서 한참 걸어 Ralphs라는 마트에 갔다. 겨우 찾은 닭고기 국물맛 컵라면과 12불짜리 스시롤 하나를 사서 호텔에서 밥을 먹었다. ‘이런 게 미국 생활이라면 난 말라죽고야 말 거야….’ 한식 파였던 나에겐 가혹한 식사였다.
학회장에서 만난 같은 과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많은 국내외 연구자를 소개받았다. 그전에는 다른 연구자들과 교류한 적이 없었기에 네트워킹 경험이 처음이었다. 거기에 사실 혼자 참석하는 학회 자체가 처음이었던지라 뭔가 낯설면서도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알아가는 것이 신났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참석하는 학술대회에 비해 연구의 다양성이 남달랐다. 흥미로웠다. 그렇게 첫째 날, 둘째 날 그리고 학회 마지막 날까지 총 4.5일간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처음 뵙는 교수님들께 지도교수님 이름을 대며 어느 학교에서 왔다고 자기소개하기도 했고, 다른 학교 교수님께서 밥을 사주신다고 하여 미국에서 감자탕을 먹어보기도 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엄청나게 비싼 감자탕이었을 것 같다)
다음날, 무료 런치를 준다고 하는 어느 Talk에 입장했다. 다행히 해당 Talk은 무료라서 QR을 찍고 해당 hall에 입장할 수 있었다. 뷔페식으로 갖가지 음식이 있었다.
공짜 샐러드 바 공짜 밥만 먹고 나오려고 했지만, 곧 화려한 음악과 함께 talk이 시작되었다. 잘 차려입은 두 사람이 잘 꾸며진 스튜디오에 어색하게 앉아서 어딘가 어색하고 경직된 말투로 런천 미팅을 시작했다. 해당 학회가 주목하는 질환의 기본 정보, 신약 정보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며, 중간중간 학회 공식 앱을 통해 quiz를 내고 즉석에서 투표를 받았다. 연구자를 위한 Talk이라기보다는 관련 종사자들 또는 환자 및 환자 가족과 같은 일반인을 위한 talk이었던 것 같다. 내가 참여한 학회는 환자 및 의료계 종사자(간호사 또는 의사)도 참여 가능한 큰 규모의 학회였는데, 그 때문에 특정 연구내용 외의 talk이나 임상시험 진행 상황 그리고 환자 care에 대한 세션도 꽤 많이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 스튜디오에 앉아 계시는 저 두 분은 분명 나와 같은 연구자 또는 어딘가의 PI 또는 어느 제약회사의 임직원일 것인데, 그때의 그들은 마치 아침마당 MC 같아 보였다. 대학 시절 공개오디션 프로의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같이 TV 생방송을 직관하는 느낌이었다. 미국에서 PI로 살아남으려면 저런 쇼맨십도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학회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내가 들을만한 talk이 없는 시간대도 많았다. 그 때문인지 member 들을 위한 휴게공간이 잘 구성되어 있었는데 피클볼이라는 간단한 스포츠를 할 수 있는 공간,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연구자들이 식사하거나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도 그런 공간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잠깐씩 휴식을 취했다.
중간중간 시간이 크게 빌 때면 근처 관광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학회장 근처엔 영화 탑건의 촬영장소인 코로나도섬이 있었다. 멀리 가기엔 무섭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혼자라 외로웠기에 점심시간엔 혼자라도 ferry를 타러 가보기로 했다. 별 기대 없이 갔던 곳이지만 그곳에서 눈부신 캘리포니아의 석양을 감상할 수 있었다.
코로나도섬으로 향하는 편도 9달러 ferry 예상치 못한 추위에 몸살이 났다. 거기에 jet lag로 인한 피로까지 몰려왔다. 옷을 얇게 챙겨간 탓에 미국에 있는 내내 추위에 떨었다. 가장 두꺼운 옷은 두툼한 후드티였는데, 차마 학회장소에 후드를 입고 가긴 좀 그래서, 내내 얇은 티와 재킷으로 버텼다. 캘리포니아라도 항상 따뜻한 건 아니라는 것을 뼈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가게 될 동부지역은 얼마나 추울지 감히 상상되지 않았다.
5일간 진행됐던 학회의 초반은 인기 있는 주제의 talk으로 구성됐지만, 넷째 날부터는 점점 인기가 덜한(?) topic이 많아졌고 5시 전에 끝나는 날도 있었다. 붐볐던 학회장이 점점 한산해졌다.
넷째 날, 용기를 내서 학회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값비싼 수제버거를 먹었다. 이젠 미국에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팁도 15%를 알아서 계산하여 영수증에 적어냈다. 저녁에는 대중교통을 타고 조금만 가면 Seaport Village라는 곳에 Kissing Sailor Statue가 있다고 해서 구경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없어서 사진 찍기 좋았다. 나름대로 교통도 편리하고, 해가 지고 난 뒤에 돌아다녀도 그렇게 무섭지 않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Kissing Sailor Statue 이땐 모든 미국이 다 이럴 줄 알았는데…. 미국은 초저녁이라도 차 없이 혼자 다니기 위험한 곳이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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