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닥의 삶 – 진로 선택, 연구 주제 선정, 전반적인 생활 및 고민
연재
[포닥의 삶] 연구실 첫 논문을 향하여 + a

안녕하세요, 김포닥파닥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제가 있는 이곳은 현재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업무가 워낙 몰아치는 바람에 이제야 근황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최근 지도 교수님께 연구실의 첫 논문 초안을 전달해 드린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이곳은 모든 것이 '새로움' 그 자체입니다. 신임 교수님을 필두로 포닥과 학생들, 실험실 환경, 심지어 연구 분야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단계죠. 매일이 도전의 연속입니다. 물론 이런 환경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교수님의 비전과 연구 분야를 믿고 지원했지만, 신분이 불안정한 포닥에게 실적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심적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로의 전환을 꿈꿨고, 열정 넘치는 신임 교수님 밑에서 따끈따끈한 통찰력을 배우고 싶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참 많았습니다. 특히 신생 랩 특성상 초반 기틀을 잡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다행히 기본적인 장비는 갖춰져 있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실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더 정교한 장비와 다양한 분석 기법이 필요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eBay에서 중고 장비를 수소문하고 업체들의 데모 장비를 테스트하며 연구실 프로젝트에 적합한 장비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셨고, 저 또한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직접 연락해 분석 및 실험 기법을 배우며 제 연구에 적용하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하며 하루하루 천당과 지옥을 오가곤 했습니다. 이미 시스템이 잘 갖춰진 연구실에서 효율적으로 연구하는 동료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죠. 제 일상은 매일매일이 파이프라인 확립을 위한 테스트의 연속이었습니다. 변수를 하나씩 조정해 가며 최적의 조건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며칠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여기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업무와 각종 실험실 관련 행정 업무까지 더해지니 하루가 너무나 짧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능력 있는 교수님 덕분에 굵직한 연구 과제들을 수주할 수 있었고, 덕분에 현재까지 3번의 재계약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보다 불과 몇 달 먼저 시작했던 동료가 재계약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저는 '연구실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그렇게 꼬박 2년을 보낸 뒤, 어느 정도 파이프라인이 안정되고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 교수님께서 드디어 논문을 써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지난주, 수개월의 노력 끝에 완성한 첫 논문 초안을 드렸습니다. 첫 버전이라 분명 어설픈 점이 많겠지만, 2년 반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어 일궈낸 첫 결실이기에 감회가 매우 남달랐습니다. 최근에는 교수님께서 제가 확립한 파이프라인을 활용해 짧고 간결한 Short paper를 추가로 내보자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긴 시간 공들여 만든 시스템이 바로 다음 프로젝트에 적용되는 것을 보며 나름의 뿌듯함과 보람을 느낍니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저에게도 언젠가 찬란한 봄날이 오겠지요.
최근에는 제가 있는 곳에 한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국내 여러 과학기술원과 연구소에서 새로운 국가 정책에 대한 설명회와 채용 박람회 같은 행사를 열어주신 것인데요. 해외에서 활동 중인 연구자들을 국내로 영입하기 위한 정책과 혜택을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현직 교수님들 및 인사 담당자들과 직접 대화하며 채용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새로운 정책 설명 과정에서 다소 미흡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특히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한 참석자가 "정권이 바뀌어도 이 정책이 유지되느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던졌을 때, 담당자께서는 "걱정 말라"라고 답하셨지만, 연구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구두 약속만으로 안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내 연구소에서 일정 기간 포닥 과정을 거치면 정규직 전환 기회를 준다는 정책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채용 규모(TO)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아직 조율 중이라는 답변을 듣고 아쉬움이 컸습니다. 행사 및 정책 자체가 다소 급박하게 기획된 느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느끼던 문제이지만, 이번에도 AI를 적용한 어떠한 연구에도 지원을 팍팍 해주겠다고 했는데요. 이렇게 당시 인기 있는 기술들만을 쫓아가기 위한 표면적인 정책을 만드는 것 또한 아무래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최근 해외에 비해 열악한 처우 때문에 국내 과학기술 인재들이 유출되거나 해외 연구자들이 귀국을 꺼린다는 기사를 자주 접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이런 행사를 여는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당장의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려다 본질을 놓치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 단순히 인건비를 조금 더 높여주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적 보상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사회 전반에 깔린 이공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연구자가 오직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안전하고 견고한 시스템 구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많은 분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시니 머지않은 미래엔 지금 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요?
평생 한국에서 살다 미국으로 건너와 보니, 두 나라가 직면한 고민의 지점이 참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의 저출생 문제도 그렇습니다. 한국은 임신과 출산 시 국가적 지원이 상당하지만, 제가 있는 이곳은 기초수급자가 아닌 이상 지원이 거의 전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매우 열려있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심지어 학위 기간 동안 자녀를 출산하는 대학원생 부부들도 종종 보이기도 하더군요. 이러한 것말고도 논의할 여러 사항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년보장,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원 등등 말입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단순히 재정적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재정적 지원만큼이나 중요한, 우리가 정작 놓치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지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하루입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