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에서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탈모치료제의 경우에도 (탈모를 질병으로 정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으나) 미용을 목적으로 개발된 약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보톡스도 (질병 치료제로도 사용되지만) 미용을 목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사용되고 있는 약입니다. 보톡스를 맞아보진 않았다 해도 보톡스를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만큼 보톡스는 미용 산업에서 매우 널리 알려지고 사용되는 약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보톡스가 어떻게 발견되었고 어떻게 약으로 개발되었는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보툴리눔의 발견
보톡스의 발견과 개발의 역사는 우연과 의과학 기술 및 지식의 발전이 잘 조합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톡스는 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박테리아가 만드는 독소인 보툴리눔을 이용해 만든 약의 브랜드명입니다. 이 독소는 안타깝게도 또 우연히도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발견되었습니다 1. 1897년 12월, 한 장례식장에서 34명의 벨기에 음악가들이 훈제햄을 먹은 후 식중독 같은 증상을 보였고, 이 중에서 세 명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때 먹었던 햄과 시신에서 얻어낸 장기의 일부분을 분석한 Emile Van Ermengem 박사는 원인이 되었던 박테리아를 분리해 냈고, 이 박테리아가 바로 보툴리눔 독소를 만들어내는 Clostridium botulinum입니다 (이 때는 Bacillus botulinum으로 명명했으나 이후에 Bacillus를 Clostridium으로 변경했습니다).
이후 연구자들은 보툴리눔 독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보툴리눔이 신경 말단에서 아세틸콜린의 방출을 억제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보툴리눔이 아세틸콜린 소포 (Vesicle)이 세포막과 결합하는 과정을 막게 됨으로써 아세틸콜린의 방출이 차단됩니다. 아세틸콜린은 신경-근육 접합부 (Neuromuscular junction)의 신경에서 방출되고 근육에 있는 아세틸콜린 수용체를 활성화해서 근육의 수축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보툴리눔은 결국 근육의 수축을 억제해서 근육이 이완 상태에 머무르게 합니다. 달리 말하면 근육이 마비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생각에 근육을 마비시키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로만 여기기 쉽지만, 근육의 움직임을 줄여야 하는 질병들도 있습니다. 보톡스를 개발한 Alan B. Scott은 보툴리눔 독소가 근육을 마비시키는 원리를 사시와 안검경련 (눈 주위 근육의 경련) 치료에 적용했습니다 2. 눈의 정렬이 바르지 못하게 만드는 근육의 움직임과 근육의 경련을 보툴리눔을 이용해 조절해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보톡스는 치료제로 1989년에 FDA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2. 보톡스의 변신
보톡스는 위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사시와 안검경련을 치료할 목적의 약물로 처음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독소로 인한 일시적 근육 마비가 미용의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잘 아는 것처럼 보톡스는 주름을 만드는 근육의 움직임을 차단함으로써 주름을 개선하는 약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약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현재는 사람들의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보톡스를 맞는 정도는 더 이상 연예인들만 받는 시술이 아닌 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보톡스를 미용을 위한 약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미용/성형 산업에서 보톡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보톡스는 미용뿐 아니라 만성 편두통, 다한증, 근육 경련, 과민성 방광 등을 치료하는 치료제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3. 결론
이번에 소개한 보톡스의 발견과 상업적 성공을 통해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늘 그렇듯이, 우연한 발견의 중요성입니다. 보툴리눔은 그 발견에서 보듯이 독성 물질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독소로 발견된 물질을 약으로 사용할 생각을 누가 쉽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그걸 시도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연한 발견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이 독소를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보톡스가 개발될 수 있었습니다.
보톡스는 기전을 연구한 뒤 다양한 용도로 약을 응용했다는 점이 돋보이는 약입니다. 하나의 약이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을 계속해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약들 중에는 본래 의도했던 목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실패했다가 다른 분야에 적용하게 된 약들이 있습니다. 반면, 보톡스는 (물론 실패가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처음 약으로 사용하려고 개발하던 때부터 계속해서 여러 분야에서 성공적인 효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보톡스가 이렇게 성공적인 약이 된 배경에는 보톡스가 국소적으로 주사되는 약이라는 모달리티가 갖는 것도 특성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약들은 전신으로 퍼져나가 원하지 않는 타깃을 건드리는 부작용들을 만들기가 쉬운 반면, 국소적으로 원하는 위치에 주사하는 약물이라는 점에서 보톡스는 원하는 곳에서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보톡스처럼 자연에 이미 존재했던 물질들이 우연히 발견되어 약이 된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물질에서 유래한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아주 대표적이고 유명한 예입니다. 또 다른 예는 혈전을 예방 및 치료하기 위한 항응고제로 사용되는 와파린 (Warfarin)입니다 3. 이 물질은 곰팡이로 오염된 클로버를 먹은 소들이 죽게 된 일을 통해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상 밖의 일들이 때로는 혁신적인 약을 개발하게 되는 초석을 마련해주기도 합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늘 성공적인 결과만 얻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패를 통해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좋은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믿으며 오늘도 열심히 연구에 매진해 봅니다.
4. 연재를 마치며
지난 글들을 통해 소개했던 약들의 역사들을 보면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약을 만드는 과정은 너무나 긴 여정이며 수많은 실패가 동반되는 과정입니다. 저도 제약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논문들도 보고 계속해서 타깃과 모달리티들을 모색해 보지만, 뭐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것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마도 학계와 회사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상황 속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노력의 결실을 맺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과 실패가 훗날 있을 성공의 스토리를 더욱더 빛나게 해 줄 것입니다. 연재를 마치며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각자의 성공 스토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기를 응원합니다.
출처
1. Jabbari, B. History of Botulinum Toxin Treatment in Movement Disorders. Tremor and Other Hyperkinetic Movements 6, 394 (2016).
2. Alan Scott, the doctor credited with developing Botox for medicine, dies at 89 : NPR. https://www.npr.org/2021/12/18/1065533946/alan-scott-the-doctor-credited-with-developing-botox-for-medicine-dies-at-89.
3. Wardrop, D. & Keeling, D. The story of the discovery of heparin and warfarin. Br J Haematol 141, 757–763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