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의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하던 날, 열쇠를 받으며 관리인과 입주자 정보를 작성하던 중이었다. 이 칸에는 뭘 쓰고 저 칸에는 뭘 쓰고… 한창 빠르게 인적사항을 같이 소리 내어 적는데, 직업을 얘기해야 하는 차례에 관리인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Student”라고 쓰는 것이었다. 한 달 전에 졸업했으니까 나는 더 이상 학생은 아닌데… 근데 사실 새 포지션이 어떤 “어른의 직업”인 건 또 딱히 아니고 사실상 아직 trainee인 건 맞으니까… 그래도 어른의 직업을 아직까지도 갖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 간다고 슬퍼하던 와중에, 그래도 대학동네라고 나도 당연히 학생인 줄 아나 보네… 내가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나 보다 하는 약간의 기쁨을 느끼며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 내게 관리인은 그래서 이제 학교는 얼마나 더 다니면 되냐고 물어봤다. 음… 잘 모르겠는데, 앞으로 5년? 6년? 확실히 1, 2년은 아니야… 하며 다시 생각에 잠기려는 나를 두고 관리인은 그것 참 긴 시간이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그래, 앞으로도 참 긴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
나는 새로 합류하게 된 연구실의 유일한 포닥으로서 이 연구실에서 여름에 교수가 되어 떠난 기존 포닥의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나머지 구성원들은 보통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PI급에게 주어지는 NIH 그랜트를 가지고 있는 시니어 사이언티스트 한 명과, 올 초 다른 곳에서 5-6년 간의 포닥을 마치고 조인한 주니어 사이언티스트, 그리고 랩 테크니션과 시니어 박사학생 세 명이다. 박사학생들마저도 모두 펠로우쉽이 있어서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랩은 재정적으로 꽤나 여유가 있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교수님은 사실상 아무에게도 월급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나 빼고).”
새 랩에서는 이제 테크니션이 있으니 더 이상 실험 재료 주문과 재고 관리를 직접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실험을 할 수 있어서 즐겁다. 큰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게 된 것도 두려우면서도 신이 나는데, 필연적으로 대규모의 클로닝과 같은 단순 노동(?)이 필요하다면 그저 간단하게 업체에 주문을 넣으면 되니 두 배로 즐거웠다. 교수님은 박사학생 셋이 내년 즈음에 졸업을 하면 더 이상 학생을 받지 않을 생각이고, 스태프 사이언티스트(staff scientist) 중심으로 연구실을 꾸려 갈 계획이라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기도 했다.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마이크로매니징이 필요한 것 같은데 장기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리드하려니 망망대해를 혼자 표류하는 것 같아 신경쇠약이 걸릴 지경이고 (“대체 왜 모두 나를 믿는 거지?”), 연구비 지출 금액이 커지니 이 비용이 부담으로 다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은 매번 커진다 (“쫓겨나면 어떡하지?” ). 의사소통도 다소 부담스러운데,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바쁘기는 했어도 거의 항상 연구실에 함께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있었으며, 매우 젊었고, 딱히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교수님이나 나나 유명한 연구자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동경했다. 연구 분야는 적당히 경쟁적인 주제지만 다소 niche 해서 신진 연구자들이 진입하기 좋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어려운 거다. 포닥 지도교수님은 연구소 일로 항상 바쁘고, 그게 아니면 학회에 가 있고, 내가 하는 일을 큰 틀에서만 알고 있으며, 유명한 연구자들이 친구였다. 연구 주제는 하루 걸러 하루 다른 랩에서 어떤 preprint가 나왔으니 읽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유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 있었다.
연구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박사과정 학생들은 내가 학위를 얻은 게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너무나도 똑똑하고, 스태프 사이언티스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연구실 비품이 어디 있는지, 장비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난생처음 보는 특정 실험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랩 테크니션 선생님보다도 잘 모른다. 예전 랩에서는 모두가 내게 의견을 구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가장 얼간이가 되었다. 이전 랩과 다른 근무 스타일도 힘든 면이 있다. 예전 연구실은 휴가나 출퇴근이 매우 자유로워서 실험이 많은 날은 연구실에 오래 있지만 실험이 없는 날은 아주 일찍 퇴근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새 연구실은 실험이 있든 없든 모두 연구실에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암묵적인 시간대가 있다. 더구나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직원이기 때문에 퇴직연금이 어떻고 휴가 일수는 어떻고 병가 일수는 어떤지를 눈치껏 잘 챙기고 지켜야 한다. 사실 이 근무 시간이 가장 큰 고역으로 아직까지 적응이 잘 되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꿈을 꿀 때가 행복했었다. 막상 치열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중심부로 들어오자 아무래도 내 능력으로는 해낼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행해지는 느낌도 종종 들었다.
교수 자리를 찾는 것은 주차장 자리 찾기와 같다는 말이 종종 들려오는데, 꼭 교수가 아니더라도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부터 박사급의 모든 포지션은 이 주차장 이론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포닥 자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냐는 수많은 질문과 답변을 나도 직접 해보기도 했고 간접적으로 보기도 했지만, 어떤 자리를 찾는다고 해서 그게 내가 잘났다는 뜻은 아니고 찾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못났다는 뜻도 절대 아니다. 그냥 그때 어떤 포지션이 운이 좋게 비어 있었고, 그 포지션에 원하는 인재상이 분명히 있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본인이었을 뿐인 것 같다.
내가 지금 계획하기 시작한 프로젝트는 박사과정 학생이 예전 포닥과 브레인스토밍 정도를 했던 과제였는데, 막상 교수님이 그랜트를 땄을 때 그 포닥이 교수가 되어 떠나고 박사과정 학생도 졸업 준비를 하게 되다 보니 1년쯤 전부터 정작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사람이 없어 내부적으로 표류하던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교수님이 새 포닥 지원자가 있다며 모두를 모아 놓고 내 잡톡(job talk)을 듣도록 했는데, 가만 보니 내가 박사과정 동안 하던 실험이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딱 필요한 실험방법과 전적으로 일치했고, 마지막으로 향후 포닥 트레이닝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연구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그 아이디어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research interest를 이야기하더라는 거였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눈치껏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박사과정을 한 연구실은 유명 랩 출신의 신임 조교수가 차린 신생랩이었는데, 새로 포닥으로 조인하게 된 연구실은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의 지도교수님과 아주 친한 사이라는 것 같았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 내 특정 도시에서만 포닥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입장이었고, 연구비 삭감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모두가 신규 포닥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에서 이 연구실 이외에는 지원한 곳이 전부 신생랩이었기 때문에 그런 곳들은 PI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더라도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최종 결정까지 매우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지금 있는 연구실로부터는 최종 오퍼를 받기까지 채 3-4일이 걸리지 않았다. 1차 스크리닝 인터뷰를 통과한 후, 직접 연구실에 방문해서 연구 발표와 점심식사, 구성원들과의 1:1 미팅, 마지막으로는 해피아워로 구성된 하루를 꽉 채운 면접을 했는데, 이후 나에게는 따로 추천서 제출에 관한 언급은 없었고 주워듣기로는 그 3-4일 동안 PI가 내 박사 지도교수님께 직접 연락해서 얘기를 좀 했다는 것 같았다. PI는 박사 지도교수님과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고, 포닥 지원 1-2년 전에 박사 지도교수님의 초대로 우리 학교에 와서 세미나를 하고 가신 적이 있는데, 그때 나도 함께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었다.
내 분야는 알파폴드와 같은 딥러닝의 등장과 발전으로 인해 곧 사람이 필요가 없어질 거라고들 하는데, 이런 압박감과 회의를 이고 지고 또다시 긴 트레이닝 과정을 밟으려는 이유는 대체 뭘까? 실험과학자는 정말로 머지않아 대체될까?
러다이트 운동은 그저 교과서에서만 보던 오래전 역사인 줄만 알았지
(그림 사용은 작가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인스타그램 @like.things13)
하지만 사람들은 알파폴드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블랙박스(black box)니까. 컴퓨터가 예측을 무진장 잘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그것을 증명해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또한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target을 사람이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모든 연구가 시작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아직 “빔라인(beamline)을 닫을 때가 아니고 전자현미경(EM)을 팔아버릴 때는 아니다.”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