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splash의 Shaun Alam연구 조직이라는 우물에 발을 들여놓고 허우적대던 사회 초년병 시절. 그 우물 안 시스템만을 익히기에도 버거워 좌충우돌 헤매기만 한다. 그러다가 업무적인 관계에서 연구행정가의 필수고객이라 할 수 있는 연구자와 대화라도 할라치면, 번번이 해외사례 얘기가 나오고, 특히 미국의 경우는 이렇다, 는 얘기가 꼭 등장한다. 바다 건너 또 다른 우물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내용인지라, 얘기를 다 듣고 나서도, 나는 별로 대꾸할 말이 없다. 아직 이곳 우물 밖을 벗어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겐 바다를 얘기할 수 없다.’ - 장자
그때부터인가, 어쩐지 내가 있는 곳이 다소 좁다는 느낌이 든다. 우물 밖은 어떤 곳인가, 다른 우물은 어떻게 생겼나, 그곳에는 어떤 개구리들이 사나, 개구리는 다 똑같이 생겼나, 도대체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궁금증이 점점 커진다. 나도 언젠가 한 번 멀리 나가보리라 다짐한다.
‘내가 이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다.’ 1)
기회가 온다. 기존 연구자 대상 1년간 해외연수 프로그램 외에, 연구행정가 대상 3개월 단기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신설된다. 연구행정 분야 최초 해외연수자 최종 1인에 선발되기 위한 분투가 시작된다. 우선, 선발을 위한 기본 조건인, 연수기관으로부터 공식적인 초청이 있어야 한다. 미국 국립기관 홈페이지를 뒤져, 연수를 희망하는 부서의 책임자에게 이력서를 첨부하여 이메일을 보낸다. 답신이 없다. 또 보낸다. 또 반응이 없다. 아직은 괜찮다. 연구부서도 그렇지만, 연구행정 관련 부서 조직이,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거대하다. 포기하지 않고 이메일을 계속 보낸다. 열한 번째 시도 만에, 드디어 기다리던 답신이 온다. 당신을 초청한다.
어설픈 영어 인터뷰 후, 용기를 갸륵하게 여긴 기관장은 나의 연수를 승인한다. 본격적인 연수 준비 과정에서, 연구자와 연구행정가 간에 중요한 소통이 시작된다. 미국 연수 간다던데, 정말이냐, 어디로 가느냐, 축하한다, 점심을 사겠다, 거긴 내가 예전에 있던 곳인데, 이러이러한 것을 준비해서 가야한다, 가족들 같이 간다며 집은 구했느냐, 거기 가면 이런 것을 꼭 배워 와야 한다. 초짜 연구행정가인 나를 위해, 온 연구자가 나선다. 연구자는 연구행정가에게 참 고마운 존재다.
그 고마움에 한껏 기대어 가족 동반 연수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그 많은 짐을 가지고 온 가족이 함께 가려면, 첫날 누가 공항에서 차로 픽업해 주어야 한다, 마침, 현지에 잘 아는 연구자 A가 있으니, 그에게 부탁해 보겠다. 염치 불구하고 더 기대어본다.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한 일이 생긴다. 부피가 큰 이민 가방을 수상히 여긴 보안요원이 우리 가족을 콕 찍어서 샅샅이 수색한다. 그 때문에 예약한 연결 비행기를 놓친다. 우여곡절 끝에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목적지에 도착한다. 공항에 마중 나와, 끝까지 나를 기다려준 연구자 A를 만난다. 낯선 땅, 어두운 밤, 지쳐버린 우리 가족에게 그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아이들 목마르겠어요. 집에 가 봐야 아무것도 없지요? 마트부터 들렀다 가지요. 그는 우리를 차에 태워, 식료품점으로, 숙소로 데려다준다. 생경한 타국에서의 첫날밤, 하늘엔 빛나는 별들이 가득하고, 마음엔 고마움으로 이루어진 삶의 빛들이 가득하다.
반면, 나와 적대적이던 연구자 B는, 뜬금없이 훼방을 놓는다. 그에게 나는, 자신이 독점적으로 구축해 놓은 국제 네트워크 영역에 허락 없이 끼어든 버릇없는 사람이다. 감히 나를 통하지 않고 거기에 멋대로 간다고? 연수기관의 직원 중 하나인 자신의 지인에게, 나에 대한 비방을 늘어놓는 바람에, 나는 진땀 빼는 일을 겪는다. 하늘이 도와, 어찌어찌 무마하고, 위기를 넘긴다.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초청한 이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 연구행정가다. 조직 내에서 두려움 없는 리더(Fearless leader)라고 불리는 정황으로 볼 때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어른임이 틀림없다. 보잘것없는 이력의 외국인인 나를 초대해, 컴퓨터 시스템을 갖춘 전용 사무실 공간을 하나 내주고, 연수 기간 내내, 요청하는 방대한 자료를 제공하며, 여러 부서에 걸쳐 미팅을 주선해 준다. 연구자를 변호하는 사람(Advocate)으로 자처하는, 삼사십 년간의 연구 활동을 접고, 연구행정으로 커리어를 전환한 연구자도 인상적이다. 어느 날 전산시스템에 직원 부고 소식이 뜬다. 장문의 추도사다. 정제되고 품격 있는 영어 어휘로 가득한 글에서 애달픈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나이 제한으로 퇴직하는 정년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바로 며칠 전까지도 함께 근무하던 직원이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와 친밀한 사이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직장에서 본인의 일에 그토록 진실하게 정진했던 한 인간을 칭송하는 말로 고인을 애도하고 안타까워한다. 별것이 다 부럽다.
‘여러분에게 바라건대, 정진하고 또 정진하십시오. 여러분의 빛으로 세상을 밝게 하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2)
저녁에 집에 와보니, 캠프를 마친 아이가 상장을 하나 받아왔다. ‘침묵상(Award of silence)’. 영어를 잘 못하니, 종일 말은 안 하고, 무언가 만드는 활동에만 열심을 냈나 보다.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아빠처럼 아이도 어찌어찌 자신의 삶을 헤쳐 나가고 있다.
저녁엔 근처 공원 산책을 즐긴다. 거주 시설과 상점들이 위치한 도시이건만, 콘크리트 회색 지대 못지않게, 무성한 나무와 널따랗게 자라 있는 잔디의 녹색 지대가 곳곳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자연보호라는 구호 없이도, 자연이 보호되고 있다. 어렸을 적 봤던 서양 만화영화에 나오는 거위, 오리, 기러기들이 심심찮게 지나다닌다. 어스름한 저녁 시간, 벤치에 잠시 앉는다. 바로 눈앞에서 밝은 불빛 여러 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한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반딧불이다. 덕분에 잠시 물아일체의 경지를 맛본다.
연수 마지막 날,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아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준다. 적당한 용기가 없어, 일회용 지퍼백에 김밥을 몇 개씩 담는다. 두루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반응이 좋다. 신기해한다. 노 스시, 잇츠 김밥! 갑자기 일어난 애국심에, 나도 모르게 한국 음식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우물 안을 벗어난 개구리는, 바다 건너 낯선 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우물 안으로 돌아온다. 공통 관심 영역이 넓어져,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소통이 원활해졌음은 물론이다. 우물 안을 둘러보니,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 나도 무언가 달라졌음을 자각한다. 독일인 괴테가 약 2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으로 내면의 성숙을 이룬 것만큼은 아니어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노라, 혼자 생.각.한.다.
‘저는 잘 있으며, 점점 더 내면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나 자신의 고유한 것과, 내게 생소한 것들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모든 면을 받아들여 내면으로부터 성장하고 있습니다.’ 3)
※ 참고
1) <이탈리아 기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외 옮김, 2007, 민음사
2) 같은 책
3)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