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splash의 Public domain vectors나는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이 좁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열을 식히고 있다. 평소에는 털 고르기를 잘하는데, 스트레스 때문인지, 발톱이 길어서 그런지, 이번엔 쓰다듬다가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내버렸다. 이제 더는 기대할 것도 없다. 최악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고함치며,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주변은 조용하다. 요동치던 내 가슴도 조금씩 진정되어 간다.
실험실의 생쥐, 연구자는 나를 마우스라 부른다. 인간을 위한 실험에 기여하는 동물의 열에 아홉은 바로 우리 마우스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케이지(Cage)라고 하는 사각형의 공간이다. 내가 태어나서 여태껏 살아가는 공간이다. 자연이 아닌, 사람이 만든 곳에서의 삶,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이런 인위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친구도 더러 있다. 하지만 나는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본능에 충실하게 대응하기로 한다. 충분한 먹이와 물이 있고, 바닥에는 신선한 깔짚이 있다. 나름 쾌적한 환경이라 할 만도 하다. 햇빛은 볼 수 없지만, 천정에 있는 조명이 일정한 주기로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며 낮과 밤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활동하기 편한 밤에 돌아다니고, 낮엔 휴식을 취한다. 벽면은 투명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 안에서는 밖이 보이고,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이를 경계로, 사람과 우리는 서로를 수시로 관찰한다. 각자 상대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공통된 언어는 없지만, 눈빛, 표정, 행동으로, 그리고 서로의 몸이 맞닿을 때 알 수 있다.
질병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신약을 개발할 때,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할 수는 없어서, 우리 같은 동물을 대신 이용한다. 그런 입장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 다만, 동물을 다룰 때 기본적인 윤리만은 지켜주길 바란다. 불필요한 희생이 없도록, 꼭 동물 실험이 필요한 것인지, 거듭 검토해 달라. 실험 대상 개체수를 최소화하라. 그리고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등 우리를 하나의 생명체로써 존중해 달라. 예전엔 동물 실험 환경이 열악했는데, 요즘은 이러한 방면에서 제도적인 보완이 이루어지면서 나아졌다고 하니, 다행이다.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 것도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에게는 사랑을 주다가, 회사에 있는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려면, 인지 부조화 때문에 고민이 되긴 할 것이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같은 날 태어난 일곱 쌍둥이 형제들과 함께 한동안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나는 가족들과 헤어진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이곳저곳으로 자꾸 옮긴다. 하나 더 부탁이 있는데, 우리를 옮길 때 꼬리를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머리를 아래로 하고 거꾸로 매달리는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터널이라고 부르던데, 위아래가 뚫린 작은 원통을 사용하길 추천한다. 우린 그런 곳에 들어가기 좋아한다. 우리가 스트레스받지 않아야, 연구자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나는 숨구멍이 뚫린 박스에 담긴 채 흔들리는 자동차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나는 진동에 민감하다. 주변에서 건축공사가 진행 중인지, 소음과 진동이 심하다. 기분도 덩달아 요동친다. 주변 케이지의 이웃 몇은 스트레스가 컸는지, 얼마 못 버티고 죽어 나간다. 그럴수록 연구자는 더 자주, 세심하게 우리를 살핀다. 깔짚을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부족하지 않게 공급한다. 나는 그럭저럭 이곳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흔들리던 세상은 어느새 다시 잠잠하다. 이번엔 너무 고요하다. 폭풍 전야의 바다다.
연구자 A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내 옆구리에 주사를 놓고 간다. 무언가가 내 몸에 들어와 퍼진다. 암세포다. 두 주가 지나니, 눈에 보일 정도로 배가 부풀어 오른다. 통증도 점점 심해진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다. 정신없이 헤매고 있는데, 연구자 A가 이번엔 항암제를 들고 나타난다. 병 주고 약 주기, 당하는 입장에서는 견디기가 고약하다. 이번에는 여러 명의 젊은 연구자들을 대동하고 왔다. 마치 그들 앞에서 무언가 시범을 보이려는 것 같다. 지난번과는 달리 그의 얼굴을 보니 살짝 긴장감이 돈다. 나를 만질 때 보니 역시나, 그의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반격의 기회다. 굳게 마음을 먹는다. 그는 왼손으로 과감하게 나의 목덜미를 잡는다. 조금 느슨하다. 내가 잔뜩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오른손으로 태연하게 항암제 약물을 담은 뭉툭한 바늘을 내 입에 들이민다. 바로 이때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뒤로 젖혀, 그의 왼손 검지를 앙 깨문다. 그가 낀 라텍스 장갑 따위는 내 이빨이 쉽게 뚫고 들어간다. 마침내 그의 피부에서 피가 난다. 사람들의 비명으로 실험실은 금세 아수라장이 된다. 당황한 그는 가까스로 나를 다시 가두지만, 구급약품 찾으랴, 상처 싸매랴, 전화하랴, 허둥대며 정신이 없다. 상처 입은 연구자를 누가 도울 것인가.
사내 안전보건을 총괄하는 연구행정가 A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 온다. 자격을 갖춘 관리자 호출, 응급처치, 응급실, 진료, 매뉴얼 확인, 보고.... 부서장인 그는 근무 중 사고 처리 표준절차에 따라 최대한 신속한 대응에 나선다. 아무래도 몸을 다친 연구자 A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험동물실의 관리 부실과 안전 시스템의 허점에 관해 각종 불만을 제기한다. 필수 응급약품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약품도 유효기간이 지나버렸다, 진료 연계와 적절한 대처를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연구자에게 파상풍 예방접종을 시행하라.... 연구행정가와 연구자는 거친 감정의 파도를 넘고, 이성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에 다다른다. 다행히 연구자 A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 한숨 돌린 연구행정가 A는 일련의 보고를 하고, 회의에 참석하여 사례를 전파한 후 사안을 마무리 짓는다. 나는 졸지에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에게 실험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마우스가 된다.
이전에 지내던 곳과는 달리, 이곳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조금 전부터는 여기로 어떤 가스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숨을 쉴수록 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졸리다. 또 내게 극심한 고통을 가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참을 만하다. 사람도 때가 되면 고통 없이 자다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가. 배려해 줘서 고맙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죽으면 무엇이 남을까. 연구자가 원하는 데이터가 남을까. 그러면 나도 보람된 삶을 살다 가는 것이 될까.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파멸의 길을 걸어야 하는 나의 운명이여. 마지막으로 마음껏 소리 한번 지르고 가련다. 잘 살다 가요! 찍찍찍.
‘....... 아아, 그만둬 다오! 증오와 죽음이 돌아와야만 하는가?
그만둬 다오! 인간은 죽이고,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냐?
........ 세계는 과거에 지쳤노라.
아아, 세계는 안식하든지 아니면 사멸하라!’
- 셸리, [헬라스] 중에서*※ 참고
* <역사의 연구 I>, A. J. 토인비 지음, 홍사중 옮김, 동서문화사, 2020년,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