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Unsplash의 Ogie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소통을 얘기하는데, 종이인 제가 빠질 수 없어,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아, 인사부터 해야겠군요. 연구자와 연구행정가는 서로 처음 만날 때면,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는데, 이때 악수보다도 먼저, 저를 가슴속에 품고 있다가 꺼내어 교환합니다. 바로 명함이지요. 그 후 악수를 하고, 각자 손에 든 것을 잠시 쳐다봅니다. 이제야 상대방이 누군지 제대로 알았다는 듯, 다시 한번 인사말을 건넵니다. 제가 없으면 어떨까요. 이름, 직업, 소속 기관, 연락처 3종 세트(핸드폰, 이메일, 주소) 등 기본 정보를 말로 확인하느라,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잘 못 알아들은 정보는 그것대로 바로잡느라, 효율적으로 대화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자화자찬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소통과 매너는 바로 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와 같은 중요한 정보는 조그마한 저에게 맡겨두고, 더 큰 곳으로, 더 중요한 곳으로 나아갑니다. 연구행정가 Z는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 저를 깜박 잊고 챙기지 못했다가 몇 번 난감함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이후로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을 한답시고, 가방, 지갑, 다이어리, 재킷 주머니, 그야말로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면 거의 모든 곳에, 저를 조금씩 챙겨 넣어둔답니다. 뭐, 저는 어디든 상관없으니, 조용히 숨어 지내다가 필요할 때면 나와서, 기꺼이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마중물이 되겠습니다.
이제 일을 해볼까요. 연구행정가의 일이란, 말보다는, 제 위에 내용을 담은 문서가 기본입니다. 보통 진실은 듣는 것보다 보는 데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더군요. 1) 그야말로 제 위에 쓰여 있지 않은 것은 소문에 불과한 것이지요. 말은 허공에 내뱉어져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사람마다 그것을 잡아, 달리 이해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반면에 저와 같은 실물 기록물은 이견 없는 확실한 증거가 되지요. 단, 손으로 쓴, 알아보기 힘든 악필 글씨 문서는 예외입니다. 해석의 불확실성은 사람을 불안하게 합니다. 요즘은 누구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고, 저를 프린터기에 넣어 출력하기 때문에, 그런 염려는 좀 줄었습니다. 사실, 예전에, 저는 사람마다 다른 글씨를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맨날 똑같이 생긴 것을 보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지요. 웬만한 서예가 뺨치게 멋진 글씨를 구사하던 연구자 A가 기억납니다. 대학에 다닐 때 강의 내용을 필기하는데, 노트가 제법 볼만했습니다. 연구자이자 관리자로서 그가 거둔 직업적 성공에는, 어렸을 적 필기구와 저를 끼고 글씨 연습했던 것이,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 습관이 그의 지식 또한 늘려준 것 아닐까요.
‘우리가 읽은 것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 2)
연구행정가 Z는, 문서를 자신의 얼굴로 여깁니다. 일을 맡으면, 제법 신경 써서 제 위에 내용과 형식을 입히지요. 그의 상사인 연구자 B는 아이디어가 담긴 대강의 내용을 구어체로 얼기설기 서술한 문서를 그에게 넘깁니다. 그는 곧 모르는 것은 질문을 통해 해결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며, 어느 정도 전체 내용을 구성합니다. 이제는 구슬을 잘 꿰듯 내용을 형식으로 엮을 차례입니다. 선 긋기, 표 사용, 적절한 어투, 글머리 표, 글자 크기, 굵기, 색, 간격, 여백 등등.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죠. 이제 문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반복 검토합니다. 컴퓨터 화면상 아무리 그럴싸하게 보이더라도, 반드시 프린터기를 통해 나온 저를 만지며 검토합니다. 십중팔구는 그러면서 오류를 또 발견하게 되지요. 그렇게 완성된 여러 장의 문서는, 여기저기 삐져나오지 않도록, 잘 정리하여 스테이플러로 찍습니다. 이때 조심하지 않으면, 제 옆구리에 손을 베어, 피를 보게 된답니다. 그에게 여러 번 미안한 적이 있었지요. 저는 물이나 커피 등 액체류는 딱 질색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마음을 몰라주던 연구행정가 A가 있었지요. 그는 여러 장의 문서를 넘길 때면, 꼭 그의 검지를 입으로 가져가, 혀에 있는 타액을 찍어서, 저에게 묻힙니다. 그래야 제가 잘 넘어간다나요. 옛날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습관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야지요. 이젠 퇴직하셨으니, 저를 만지는 일도 드물어지셨겠네요. 드디어 최종 보고 자리에서 무사히 보스의 칭찬을 받게 된다면, 행정가의 직장 생활에서 이보다 더 바랄 것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보스의 칭찬은 문서의 내용을 향한 것일까요, 아니면 형식을 향한 것일까요. 이제 그 둘은 한 몸이라고 여기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어쨌든 연구행정가 Z는 자신의 얼굴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문서 중, 요즘 오프라인에서 가장 보기 힘든 것은 무엇일까요. 연구계획서 아닐까요. 연구행정가 Z는 경력 초창기 시절, 시시때때로 연구자들로부터 연구계획서를 접수해, 출력하고, 복사하여, 연구과제 평가를 준비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직접 상당한 양의 연구계획서 뭉치를 들고 외부 소속 기관의 평가위원에게 배달하기도 했었지요. 워낙 양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기술력이 부족한 탓인지, 저는 툭하면 프린터기나 복사기 안에 걸려 나오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런 고장이 나면, 그도 저도 사방에 검댕이 잔뜩 묻어서 난리였지요. 거기다가 연구자가 직접 작성한 연구계획서는, 연구행정가의 시각에서 보면 오류가 많습니다. 연구행정가가 연구 내용에 약하듯이, 아무래도 연구자는 문서 형식에 약할 수밖에 없지요. 다시 수정 계획서를 받아 출력하고 복사하고... 그야말로 업무시간 내내 그는 사무용 기기와 저를 붙들고 씨름하곤 했지요. 그러던 것이, 차츰 이 모든 프로세스가 전산화되면서, 이제는 연구계획서가 컴퓨터 안에서만 돌아다닙니다. 아, 전자문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앞으로 저는 필요 없는 시대가 올까요. 제가 사라지는 것이 나무가 사는 길일 테니, 받아들여야겠지요?
연구자와 연구행정가,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인가 봅니다. 과거 그들은 저를 그냥 버리거나 구겨서 버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개인정보나 대외비 내용 유출을 막기 위해 파쇄기를 사용합니다. 제 위에 쓰인 내용을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분쇄해 버리는 것이지요. 이면지를 활용해 저의 앞뒷면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못 말리는 절약의 대가들도 있답니다. 사실 저는 헤어지고 버려지는 것에 익숙합니다. 달력이 되어 한 장씩 뜯어져 나가기도 하고, 영수증 같은 경우엔, 매일매일 버려지는 양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아이들은 저를 접어서 배를 만들고 물에 띄우거나, 비행기를 만들어 허공에 날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럴 땐 이별이라 할지라도, 참 낭만이 있지요. 아무튼, 우리는 모두 언젠가 헤어집니다. 어쩌면 올여름도 그냥 떠나기 아쉬워서, 이처럼 뜨거운 것 아닐까요. 너무 더울 땐 저를 부채 삼아 부쳐보세요. 그럼 저는 이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겠습니다. 아디오스(Adiós).
※ 참고
1) <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유경 옮김, ㈜현대지성, 2022, p112
2) <군주론>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외 1인 역, 까치글방,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