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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글자글한 주름과 얼룩덜룩한 검버섯으로 덮인 할머니의 얼굴. 누군가는 추하다고 느껴 피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랑과 희생정신의 증표로 보여 아름답다고 느끼고 한 발 더 다가간다. 관점의 차이이자, 이에 따라 이해가 달라지는 예다. 같은 음악을 감상해도 듣는 이에 따라 감상평이 다양하고, 같은 풍경화를 감상하더라도 보는 이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인 것과 같다. 한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 간의 소통 문제가 있을 때, 상호 이해에 이르는 방법의 핵심은 문제의 내용만큼이나 그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빙의까지는 아니어도,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의 시각을 가지고 문제 상황을 다시 바라본다.
나는 한국 내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미군 병사다. 부대 안에는 미군 병사 외에도 소수의 한국군 병사가 함께 근무한다. 이들은 직업군인인 나와는 달리, 자국법에 따라 의무 복무를 하는 군인이다. 나는 한국이란 나라가 궁금하기도 하고, 외출할 때 현지 정보도 얻을 겸 이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는데, 그러는 중에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한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대학생이다! 한두 명 예외가 있긴 한데, 한국인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틀림없다. 친분이 있는 한 한국군 병사는 오히려 내가 대학에 다니지 않고, 젊은 나이에 포클레인 운전을 배워 직업군인을 선택한 것에 놀란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서는 신기함, 재미, 약간의 연민과 무시가 섞여 있다. 미국인이, 집단으로 대학에 가는 한국인을, 그리고 한국인이, 개인마다 제각각 다양한 진로를 선택하는 미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이해가 필요하다.
나는, 대학에서 생명과학 전공으로 박사까지 십여 년의 학업과 훈련을 마치고, 연구소 조직에 들어와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연구자다. 고교 시절 입시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중에, 우연히 이 길을 선택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생명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 욕구는, 지금껏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원동력이다. 사실 인생이란, 이러한 유의 어울리지 않는 불가피한 상황이 뒤엉킨 상태에서 내려진 판단과 선택으로 하게 되는 일의 연속이다. 인문, 사회 분야 사람들은, 왠지 근거도 없이 각자의 주관적인 주장만을 펼치는 것 같고, 과학자는 명확한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방법론을 통하여 이를 검증한 후 객관적으로 증명된 결과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앞으로 밝혀야 할 생명현상은 무궁무진하므로 밥벌이가 될 수 있겠다, 는 세속적인 계산을 하는 동시에, 과학을 통해 질병을 극복하고 인류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못 믿지만 과학은 믿을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믿을 수 있는 과학의 세계에 속하여, 평생 연구자의 길을 가리라, 다짐하며 신생 연구소 조직에 발을 담는다. 이후 연구에만 전념하며 성과를 쌓아가는, 나름 신나는 조직 생활은 계속된다, 보직이란 것을 맡기 전까지는.
신설 기관의 개원 준비 특별팀, 얼떨결에 나는 팀장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아, 연구와 행정을 병행함으로써, 조직 생활의 고단함을 맛보게 된다. 당시로 말할 것 같으면, 주 5일 근무제 시행 논의가 한창이었으나, 이를 시행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반대의견이 심해, 아직 주 6일간 근무하던 시절이다. 게다가 새로 생긴 기관이라면 예상할 수 있듯이, 각종 내부 규정, 시스템 및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기관장부터 말단직원까지, 야근에 휴일 근무까지 그야말로 비상근무를 하는 상황이다. 또한 기관의 예산을 쥐고 있는 정부 고위 관계자를 여럿 모시고 치르는 개원식 준비의 중요성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팀원들과 함께 얼마 안 남은 행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중, 나는 갑자기 어려운 문제 하나에 맞닥뜨린다. 기관장은 상황을 보고 받고, 사전 대처 미흡에 대해 나를 질책한다.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서는 일요일 근무가 불가피하다. 다행히 대부분의 직원이 동참하기로 한다. 연구행정가 Z, 한 사람만 빼고.
신입 사원인 연구행정가 Z는 좀 튀는 면이 있다. 패기 있게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말하는 품이 젊은이답다, 고 봐줄 수도 있으나, 다소 과한 면이 있다. 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요청한 일요일 근무를 거절한다. 말인즉슨 일요일엔 교회에 가야 한단다. 남다른 종교심을 가진 것일 수도 있으나, 내가 보기엔 지나친 이기심과 개인주의 성향의 발로다. 휴일에 누군들 회사에 나오고 싶겠나. 휴일에 회사 나오는 사람을, 개인 취미도 하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건 대단한 오해다. 사생활이 다 있지만 굳이 티 내지 않는 것이다. 휴일 근무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니, 대의를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이고, 또 그러는 것이 공동체 생활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휴일 근무에 대한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부서장은 휴일 근무로 수고한 부서원이 서운하지 않도록 나중에 근무 평가 고려, 수당이나 대체 휴무 챙겨주기 등 다양한 보상을, 알아서 챙겨주곤 한다. 예상치 못한 반응으로 당황한 나는 그에게, 그러냐고, 알았다고 했지만, 뒷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퉁명스러운 내 말투로 인해, 그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겠지만, 나도 그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를 한번 보라. 연구하랴, 행정 하랴, 행정만 하는 연구행정가보다 훨씬 더 바쁘지 않나. 평소 연구행정가와 업무적인 얘기를 나눈 후에는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은 데, 다 이유가 있다. 되도록 화를 가라앉히고, 긍정의 회로를 이성적으로 돌려본다. 연구자로서 연구행정을 배우고 알아간다는 이점도 있긴 하다.
나의 아빠는 연구행정을 업으로 삼는 직장인이다. 평소 성실하게 회사와 집을 오가며, 건강식을 즐기고, 저녁마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 그런 아빠이다 보니, 요즘의 나를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나는 마지막 남은 학기 학업과 진로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 졸업과 취업의 이중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 밥 먹고 나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운동이고 뭐고 휴대폰을 들고 침대로 직행한다. 체중이 좀 불기는 했지만, 나중에 마음먹고 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빠는 그런 내가 영 못마땅한가 보다. 아빠가 그냥 나를 믿어주면 좋겠다.
추운 겨울이 지나니 어김없이 따뜻한 봄이 찾아온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따뜻했던 겨울이 지나고, 추운 봄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에 참가한 군인에게, 실험실에서 연구하랴, 애매하게 떠맡은 행정 하랴, 피곤한 연구자에게, 부족한 부모와 함께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자식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를, 시 한 수를 선물한다.
봄 꽃
- 함민복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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