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splash의 Andrea Tummons 미군 부대 복무 시절, 친하게 지내던 미군 병사가 내게 물어본다. 내가 만난 한국 병사는, 모두 대학에 다니다가 휴학하고 군대에 왔다고 한다. 한국인은 어째서 모두 대학에 진학하는가. 참 신기하다. 고교 졸업 후 많이들 대학에 가긴 하지만 안 가는 경우도 있다. 나의 어설픈 영어 탓인지, 어째 그를 쉽게 납득시키지 못한다. 그는 공병 포클레인 운전사로서, 자기보다 이 기계 운전을 더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자랑한다. 비슷한 또래건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나와 달리, 그는 안정감이 있고, 자기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 모습이 생소하여, 나는 언뜻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인이 한국 대학의 특수성을, 한국인이 미국인의 직업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상적인 이해 너머, 또 다른 차원의 이해가 필요하다.
토요일 오전 근무, 정확히 말하자면 토요일 오전 근무 후 직장 상사와 함께 점심 식사 및 산책까지 같이하고, 사무실로 복귀하여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던 시절. 신입 연구행정가인 나는 어느 날 갑자기 특별팀에 차출된다. 내가 속한 조직은 신설 공공기관인데, 갓 부임한 기관장은 새로운 출발과 도약을 꿈꾸며, 지체 높은 분들을 모시고 개원식을 개최하기로 하고, 나를 포함한 각 부서 인원을 차출하여 전담 조직을 구성한 것이다. 팀장인 연구자 A가, 토요일 퇴근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나를, 갑자기 호출한다. 이러저러한 중요한 일이 아직 마무리 안 됐고, 신속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또 남아 있으니, 내일 나와서 같이 일합시다. 이건 뭐지. 나는 그의 기습적인 말에 당황한다. 한주 내내 이 정도 열심히 일했으면 됐지. 유일하게 하루 쉬는 날인데 회사에 나오라니, 말도 안 돼. 이건 아니지.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가슴은 요동치고, 얼굴은 벌게진 채, 용기를 내어 입을 뗀다. 나오는 말에 떨림이 심하다. 팀장님, 저,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 합니다. 마치 영화 <불의 전차>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 같다. 일요일엔 뛰지 않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종교적인 이유는 10% 정도였을 것이다. 그저 쉬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소중한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나만 제외하고 나머지 팀원은 모두 일요일에 출근한다. 월요일, 내 몫까지 일하느라 더 힘들었는지, 피곤해 보이는 동료들 앞에서 나는 얼굴을 들 수 없다. 평소보다 더 무거운 사무실 분위기, 나는 여전히 내게 닥친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이와 동시에 내가 이해받지 못한다, 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을 이해하고 어떻게 이해받아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을 이해받아야 하나. 우선 ‘이해’의 여러 의미를 구별해 보기로 한다.
엄마는 내가 ①이해할 수(깨달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언제나 나를 ②이해(공감하고 수용)해 주는데, 나는 이를 사랑이라고 ③이해(해석)한다. 엄마와 나는 ④이해(득실)관계를 초월한 사이다.*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가지며,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입자는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중첩’).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쪽을 측정하면 즉시 다른 쪽의 상태가 결정된다( ‘얽힘’). 양자역학의 이러한 특징과 이를 이용하여 기존의 슈퍼컴퓨터로 수년이 걸릴 복잡한 계산을 단 몇 분 만에 해결한다는 양자 컴퓨팅 기술.... ①이해한 듯하면서도 제대로 ①이해한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래도 과학 이론은 붙들고 ①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치가 있으나, ①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인간을 두고 ①이해에만 매달리는 것은 패착이다. 명확한 설명이 가능한 고전 역학의 세계에만 있던 물리학자가, 인간의 행동 같은, 난해하고 복잡한 현실 세계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발견한 것이 양자역학 이론 아닐까. 연구자 A는 회식 자리마다, 그 일화를 꺼내어, 사람들 앞에서 나를 곤혹게 한다. 나도 그를 ①이해 못 하지만, 그도 끝까지 나를 ①이해하지 못한다. ①번 이성적인 이해의 한계다.
명백한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있는 인과관계 사건이면 ①이해하기 쉬우련만, 우연 혹은 제3의 원인이 있는 상관관계 사건은 ①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어떠한 보상 제시도 없이 휴일을 반납하라는 연구자 A의 지시를 ①이해할 수 없어 따르지 않고, 그는 나의 거부 반응을 ①이해할 수 없어, 어이가 없다. 둘 다 스트레스받기는 매한가지다. 이해하다의 사전적 정의 ②번, 남의 사정과 처지를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다, 는 감성적인 이해다. 쉼의 자유 침해에 대한 절망감, 휴일에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 짜증 등 다양한 감정이 올라오는 나를 ②이해해 본다. ②번 이해는 ①번 이해와 독립적이다. ①이해할 수 없어도 ②이해해 볼 순 있는 것이다. 남을 ②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②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이는 곧 나를 위한 일이다.
내가 먼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어려움에 부닥친 남을 도울 수 있고, 나를 먼저 ②이해하여야, 남의 사정과 처지도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다. 순서가 중요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학력 지상주의자, 직업에 귀천이 있다, 고 은연중 믿는 사람이다. 고졸 학력의 미군 병사 앞에서 나는 우쭐대는 마음으로 대학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그를 ①이해하기는커녕, 그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의 직업을, 그의 삶을 몰래 얕본다. 혹 집안이 가난했을지, 부모를 일찍 여의었을지, 학문의 길을 원했지만 포기했을지, 타고난 기계조작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있었을지, 기술을 배워 직업군인이 되어야만 했던 사정 등 그를 ②이해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나는 또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 휴일에도 부지런히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일 중심의 사람, 타인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에는 민감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다. 아마 연구자 A는 기관장 보고에서, 일의 진척 상황이 더딘 것에 대한 질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성취욕과 출세욕이 강한 사람이어서 일할 때 다소 성급하고, 물불을 안 가리는 스타일이다. 신입사원 길들이기 차원에서 일요일 출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개인적인 취미가 딱히 없어, 휴일에 집에 있어 봐야 심심하니, 주말에 회사에 나오는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그도 불쌍한 사람이다. 피식 웃음이 나오며, 그를 조금이나마 ②이해해 본다. ②이해받기보다는 ②이해하며....**
체중이 불어나 급기야 혈액검사에서 일부 이상 수치를 보인 아이가, 계속해서 과도하게 당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도무지 운동은 하지 않는다. 얘는 왜 저러나. 내가 잘못 키웠나. 지켜보는 부모는 괴롭다. 인생에서 인과관계로 일어나는 일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그래도 절반은 되어야, 인생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부류의 상관관계 일들로 가득하다. 이럴 땐 원인을 찾느라고 고심해 봐야, 고달프기만 하니, ①번 이해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②번 이해로 넘어가 보는 것이 좋다. 고작 해결책이 그건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달리 더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공감과 수용이라는 ②이해의 영역, 소통을 바라는 연구자와 연구행정가가 한번 신경 써 볼만한 일이다.
※ 참고
* 네이버 국어사전
**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