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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유난히 화창하고 밝은 날, 한없이 편안한 마음이면 좋으련만, 미미하게 꺼림칙한 기운이 함께 섞이는 까닭은 뭘까. 아무리 귀여운 아이라 할지라도 시간 앞엔 어쩔 수 없어, 청소년, 청년 그리고 장년을 거쳐 곧 인생의 말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인생의 법칙만큼이나, 그것은 당연할까. 분명 읽었으나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처럼, 인생사, 좋은 일만 바랄 수는 없다, 는 걸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성과에 대한 칭찬과 보상으로 함박웃음을 짓다가도, 곧 들이닥칠 난해한 업무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마음이 불안해지는 일이 다반사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 불안하고 두렵겠냐만, 스트레스 상황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면, 감정은 가슴속에서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이때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곧잘 짜증이나 화로, 급기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까지 발전하여 인간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이러한 감정을 쉽게 놓쳐버릴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누군가 나를 나무랄 때다.
모든 감정의 뿌리가 되는 두려움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움츠림은 자신을 방어하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이다. 우선 감정이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프로세스를 이해해 본다. 겁이 많은 연구행정가로서 나는, 일 처리를 할 때, 철저히 데드라인을 지키며, 되도록 미리미리 하는 편이다. 그날도 모든 준비를 해두었다고 생각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들어간 회의. 마음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겉모습만 봐도, 상당히 높은 몸가짐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연구자 A. 그의 말을 들어보면, 자기 자신으로만 가득 찬 그의 마음가짐의 각별함 또한 알 수 있다. 갑자기 그가 나를 책잡는다. 몰랐다, 로 시작해서 한참 말이 이어지는데, 뒤의 내용은 그리 중요치 않다. 이미 나는, 그의, 몰랐다, 는 선언에, 몸을 움츠리고, 머릿속으로 방어 태세에 돌입한다. 이메일을 통해 해당 내용을 분명히 공지했건만 어찌 그리 당당하게 몰랐다고 할 수 있나. 이메일을 받았으나 보지 못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의 잘못 아닌가. 순간 당황하여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두려움, 불안, 짜증, 화 등 복잡한 감정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억울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다. 분명히 그때 이메일로 공지했습니다. 이메일을 확인 안 하시고 몰랐다고만 하시면 어떡합니까. 이미 합리적인 판단은 물 건너가고, 얼굴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는 나의 항변은 시원치 않고, 효과도 없다. 오히려 반격의 파도만 거세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이 오는데 어떻게 일일이 전부 체크합니까, 놓칠 수도 있지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연구자 B도 나랑 똑같이 모르고 있던데요. 옆 동료도 몰랐다니, 그런 논리가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뒷받침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대목에서 나는 몸서리를 친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나의 잘못된 일 처리로 인해 자신이 불이익을 받은 것은 대단히 억울한 일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나는, 그의 넘사벽 수준의 철벽 주장 앞에 힘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좌절한다. 잘 못 끼워진 첫 단추는 무엇일까. 더듬더듬 올라가 본다. 사달의 시작은 감정이다.
멀쩡한 공지에 대해, 누군가 몰랐다, 는 반응은 어떠한 조직공동체에서건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당하면 공지를 한 당사자는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다. 미래 대비는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둑을 복기하는 이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서운 성격의 그가 몰랐다니, 어쩐지 이번엔 나한테 승산이 없겠는걸(두려움), 몰랐다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네. 파장이 더 커지면 어쩌지(불안), 분명히 공지했는데, 억울해서 말이 다 안 나오네. 아 신경질 나(짜증),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 게 말이 돼, 와 진짜 열받네(화). 스멀스멀 올라와 펼쳐진 감정 그대로에 머문다. 감정을 억압하고 괜찮은 척 연기하는 것도 금물이다. 어색한 침묵과 표정 연기는 감춘 것을 더 잘 드러낸다. 그래, 또 짜증이 나고 불안이 올라오는 거지. 감정을 알아채고 그대로 수용할 때 비로소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의 길이 열린다. 내가 한 일을 누가 비난할 때, 짜증 나고 화나는 건 당연해. 그래도 여기서 바로 대거리를 하는 건 효과가 없지. 달리 불만이 없는 다른 많은 연구자를 봐. 난 일을 제대로 처리한 게 맞아. 그는 좀 유별난 사람이잖아. 내가 감안해야 할 부분이야.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며 최대한 신사적으로 대응하려 노력한다. 공지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하시니, 제가 좀 당황스럽긴 한데요, 앞으론, 시간 간격을 두고 이메일을 재발송한다든지, 게시판, 카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 번 더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감정-생각 프로세스를 거친 말 한마디는, 천 냥 빚을 갚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회의 석상. 연구자 B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좀 더 ‘일찍’ 공지했어야 한다고, 담당 연구행정가 A를 나무란다. 연구행정의 책임자인 나도 면피할 수 없다. 담당자를 나무랐지만 이건 나를 비난한 것이나 다름없어. 나는 연습했던 것은 까맣게 잊고, 썩은 표정을 지으며, 알겠다고, 다음부턴 유의하겠다고 퉁명스럽게 답변한다. 누가 봐도 불만스러운 말투다. 가시 돋친 말의 설전이 이어진다. 상처를 입으면 공격적으로 되는 것은 본성 아닌가. 그 정도면 적당히 사전에 공지한 것인데, 참 억울하네. 도대체 어느 정도가 ‘적당’하고, ‘일찍’인가, 자기가 정한 기준을 원칙인 양 들이대는 것이 말이 되나, 짜증 나서 원. 이러다가 기관장이 그의 편을 들어서 내게 책임을 물으면 어쩌지, 좀 불안한걸. 복잡한 감정을 다 놓쳐버린다. 이번 공지가 약간 늦었지만, 여러 가지 검토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또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지적하신 부분도 유의하겠습니다.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우니, 그제야 그때 하면 좋았을 말이 생각난다. 도대체 그런 상황에서 침착한 대응이란 게 가능하긴 한 건가, 회의감이 엄습한다. 연습은 원래 반복이 필수일 테지. 자면서 감정의 파도를 멋지게 올라타는 서퍼가 되는 꿈을 꾼다.
‘모름’을 원하지 않은 연구자 A와 ‘일찍’을 원한 연구자 B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여유 있게, 제대로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상대를 나무란 것이 아닐까. 그것은 바로, 나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는 비난, 즉, 자기 좀 도와달라는, 왜곡된 방식의 부탁일 뿐일까*.
원활한 정서 조절 능력을 갖춘 사람만 있다면, 갈등 없는 이상적인 조직 생활이 가능하겠으나, 그 또한 비현실적이자 비인간적이다. 부족한 사람이 모였지만, 같은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고, 서로 보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조직. 공명하고 반향함이 있는 조직, 인간적인 매력과 신뢰감이 느껴지는 조직, 연구자와 연구행정가가 소통할 때 만들어지는 모습임을 믿는다.
※ 참고
* 박재연 소장, https://www.youtube.com/shorts/hdNTiIV9x2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