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splash의 Round Icons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젊은 사람은,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옛 시절엔 정보를 독점한 자가 이를 과시하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딱하게도 그 시절 습성을 못 버려, 자신만 아는 것이라 착각하고, 정보를 꼭 움켜쥐고 젠체하는 이가 있다. 그곳은 내가 가봤는데, 하며 하는 여행 자랑, 그 현인은 이러한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하며 하는 지식 자랑 등 그의 말에서 무언가 허술한 점이 느껴질 때면, 나는 잠시 핸드폰을 꺼낸다. 터치 몇 번으로, 그가 말한 것에 대한 정확하고 광범위한 정보를 얻고, 그 말의 진위를 검증한다. 검증 결과, 그가 여성으로 언급한 현인은 실제 남성임을 알고 실소한다. 여행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상세하고 생생한 여행 정보를 동영상과 함께 얻고 간접경험 후 내 취향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더 이상 정보와 지식 자체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바야흐로 정보 공개의 시대, 정보를 독점하는 자가 아닌, 정보를 공개하는 자가 힘을 얻는다.
대외비로 하는 것은 큰 노력이 필요 없지만,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자신이 가진 정보를 포기함으로써, 초래될 결핍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고, 앞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여 만회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현재 가진 돈을 포기(투자)하여 미래에 더 큰돈을 버는 원리와도 같다. 또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해당 정보에 대한 자신의 통제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소유 욕구와 통제 욕구는 의외로 강한 것이어서, 사람은 물질이나 타인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거나,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하려 든다.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묻고 답을 들고 싶은 이유다. 반면 과학의 진보는 정보 공개를 발판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인간 유전자를 찾아내어 발견한 것은 특허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담한 과학자는 이러한 일에 매달리고 헌신하여 유용한 인간 유전자 정보를 공개한다. 연구자는 이를 기반으로 연구하여, 유전자의 구조나 기능을 밝혀냄으로써, 계속해서 진보를 이뤄내는 것이다. 정보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가 용감한 자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
2009년. 스마트폰이 상용화되기 전이자, 인터넷도 그리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미국 선진 연구 기관에 행정 분야 단기 연수를 가기 위해 정보를 모으는 중이다. 특히 연수를 승인하고 나를 받아줄 핵심 관계자와의 이메일 수발신으로 인해 매우 분주하다. 애석하게도 여러 곳으로부터 연수를 거절하는 내용의 답신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는 와중에, 연구자 A는 대놓고 자신이 그쪽에 확실한 정보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니,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해주면, 일사천리로 나를 미국에 보내주겠다고 한다. a를 하면 b를 주겠다, 는 조건부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낫다. 받아들이지 않아서 보는 손해보다 그 불확실성과 사기 가능성을 떠안고 받아들일 때 입을 수 있는 피해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유불리를 떠나, 그러한 조건부 거래가 판치는 인간관계는 바람직하지도, 오래가지도 못한다. 나는 정보 선점자인 연구자 A의 제안을 거절하고,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길을 뚫고 목표지에 안착한다. 통하는 길은 분명 여럿이다. 잘 보이지 않지만, 찾으면 찾아진다. 이내 나와 연구자 A의 정보 격차는 자연 해소된다.
연구자 A와는 대조적으로, 연구자 B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알짜 정보를 내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 봐야 하는지, 차량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지역 소식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등 나는 그가 말한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열심히 메모한다. www로 시작하는 유용한 인터넷 주소 리스트가 정보가 되던 시절. 스스럼이 없이 내게 정보를 제공하고 자문해 준 그의 배려가 고마워, 지금껏 그와의 원활한 소통은 물론, 업무 협조 관계는 매우 공고하다.
공유는 정보만 아니라, 의견이나 감정 따위를 나누는 것도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나누지 않는데, 제 생각이나 느낌을 나눌 리 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정보에 대해 폐쇄적인 연구자 C는 도무지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다. 의사결정권자로서 부하 직원에게 필요한 의견을 말해주어야 할 때조차 입을 다문다.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업무 기한이 다가오는데 같이 침묵하며 버틸 수도 없는 노릇, 나는 하릴없이 불완전한 의견을 발설하고 일을 진행한다. 그럭저럭 성과는 났지만, 미진한 부분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며, 나는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다. 반면 정보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진 연구자 D는 자신이 관리자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적극적인 정보 공개 정책을 편다. 그렇게 쌓아 놓기만 하면 똥 됩니다. 축적한 연구 자원을 연구자에게 적극적으로 분양하도록 지시한다. 기술이전을 하지 않고 특허를 유지하느라 비용만 들이면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특허정보를 기업에 적극 공개하고 어필하여 상용화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그의 화법은 화통하고, 의견은 명쾌하다. 자신의 확고한 의견을 기반으로 내리는 의사결정에 망설임이 없다. 보조를 맞추는 연구행정가도 거침없이 업무를 추진한다. 공유하는 자의 시선은 미래를 향한다. 앞으로 나가는 일은, 어쨌든 신나는 일이다.
미국 연수 중 참가한 대규모 콘퍼런스. 연구자가 모여 빅데이터를 어떻게 구축하고 공개할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다. 기조연설자 중 한 명이 관련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이건만, 그런 그가 과학 콘퍼런스에서 연설하는 것이, 내게는 매우 낯설다. 그는 과학을 잘 이해하진 못하지만, 이러한 연구가 자신과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치료법 개발도 촉진하게 될 것이므로, 요사이 우울함이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어 기분이 좋아졌다, 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자리에 모인 연구자는 진지하게 경청한다. 연구행정가인 나 또한 어려운 과학용어가 없는 일반인의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자신의 연구 결과물의 최종 수혜자가 될 사람의 말을 듣는 연구자의 심정은 어떨까. 감정의 공유는 큰 파장을 일으킨다. 청중은 연설이 끝나고 내려오는 그를 둘러싸고 유난히 큰 박수를 보내며, 진심으로 화답한다.
데이터 과학은 공유하고 연결접속하는 리좀의 형태를 띨 때 강력해진다. 연구와 연구행정 또한 연결하고 결속할 때 시너지 효과를 낸다. 정보, 의견과 감정을 기꺼이 나누고 접촉하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관계, 연구자와 연구행정가가 모색할 상생의 길이다.
※ 참고
* <천개의 고원>,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2001, 새물결출판사, p46
** (리좀이란, 구글 AI 답변) 리좀(Rhizome)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철학적 개념으로, 중심이 위계 없이 수평적으로 연결, 확장되는 땅속줄기 식물(연, 잔디 등) 구조를 의미합니다. 수직적이고 이원론적인 ‘수목형’ 사고와 달리, 어디서든 접속 가능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방적, 복수적 네트워크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