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논문을 작성한다는 이야기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비단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일반 바이오 관련 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무적인 관점에서 단순히 '물건이나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측면만 따져본다면, 논문 작성이 큰 실익이 없거나 오히려 순손실밖에 되지 않는 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고가의 시약과 분석 장비, 그리고 석사급 이상이거나 연구실 벤치에서 10년 넘게 잔뼈가 굵은 숙련된 연구원들의 인건비, 여기에 연구 실패 시 떠안아야 할 막대한 기회비용까지 감안해 본다면 "자사 제품을 개발하기에도 빠듯한 마당에 왜 굳이 논문까지 써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차라리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까지는 당장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수월한 DNA나 단백질 정량 분석(Protein assay) 용역을 수행하며 유지해 나가거나, 신약 개발은 당장 미뤄두고 체내 단순 기능성 제품이나 제네릭(복제약) 제조에 집중하면서 적당한 공장을 갖추고 영업 인력을 가동해 수익을 창출하는 편이 본인의 경제 사정과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훨씬 현실적인 선택지로 보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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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향 감각 자체가 결코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손에 잡히는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연구에 실패한다면, 본인의 정신건강은 물론 수년간 쌓아온 경력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는 가혹한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심장에 무리가 갈 만큼 피가 마르는 압박 속에서, 지속적으로 정부 지원금이나 투자금에만 의존하며 막연한 '대박 연구'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단기간에 수익을 만들어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바이오 스타트업은 왜 논문이라는 수단을 놓지 말아야 할까요? 그리고 대학이나 국책연구소에서 발표하는 논문과 기업의 논문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달라야 하는 것일까요?
저 역시 대학 연구실에 오랜 기간 몸담아 보았습니다만, 대학에서 작성하는 논문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학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일종의 장기 투자에 가깝습니다. 대다수의 의생명과학 대학원생은 학위 과정 동안 장학금을 지원받으며, 당장 자신의 경력에 실질적인 보탬이 될지, 혹은 인류 사회에 즉각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기초 연구를 수행하며 스스로를 훈련합니다. 즉, 당장의 실용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학문적 탐구 가치가 인정되고 학위를 취득해 졸업할 수만 있다면, 국가는 기꺼이 연구비를 지원해 가며 인재를 키워냅니다.
하지만 기업체에서 논문이 지니는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시중의 수많은 미디어에는 만병통치약을 자처하는 온갖 과장·허위 광고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광고를 접하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떻게 저런 주장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저것이 통할까" 의구심을 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어느 학술 논문에 입증된 세계 최고 수준의 건강기능식품"이라는 문구에 현혹되곤 합니다. 정작 해당 기업이 직접 수행한 실험 데이터도 아닌 외부 연구 결과를 인용했음에도 말입니다.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 소비자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SCI급 학술지에 실렸으니 믿을 만하다", "유명 대학 교수진의 연구 결과이니 효능이 확실할 것이다"라며 손쉽게 설득당합니다. 그 논문의 실제 피인용지수(Impact Factor)가 얼마인지, 논문의 구체적인 데이터가 무엇인지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생성형 AI나 번역기를 통해 몇 줄 요약문만 훑어본 채 '이 정도면 검증되었다'라고 넘겨버리는 것이 냉혹한 대중의 시선입니다.
저 역시 학회에 참석해 기업체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엄이나 식사 자리를 둘러보곤 합니다. 그곳에 가보면 세계적인 석학들이 해당 제약사의 제품 효능을 공개적으로 조명하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는 거대 기업들이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선제적으로 지원하고, 그 연구 결과에 따라 자사 제품의 우수성이 타사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입증하여 강력한 영업적 무기로 활용하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나 일라이 릴리(Eli Lilly) 같은 글로벌 빅파마들이 구사하는 전형적인 학술 마케팅 방식입니다.
물론 자금력과 마케팅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국내 스타트업이 거액의 연구비를 외부 연구자에게 위탁하거나, 학회 현장에서 대규모 식사 자리를 제공하며 화려한 부스를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국내 학회장에 가보면 수많은 중소기업 부스가 단순 판촉 기념품을 배포하는 장소로 전락해 독자적인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들 부스의 대다수가 "우리 제품이 좋다", "어느 병원, 어느 기관에서 도입해 쓰고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역학적 조사 데이터나 체계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인 마케팅 수단은 될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당 제품이 의학적·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데에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매출을 일으키지 못해 사업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회사가 지닌 본질적인 기술 역량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핵심 사업에 대한 독보적인 기술적 우위를 구축해야 마땅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대기업에 종속되어 근근이 물량을 받아내는 단순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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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바이오 스타트업은 어떤 방식으로 논문을 다루어야 할까요? 그 핵심은 "핵심 기술을 철저히 감추면서도, 회사의 연구개발 역량을 대외적으로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전략"에 있습니다. 대다수 기업이 그러하듯, 보유한 기술이 탁월할수록 창업자는 이를 투자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투자금을 유치하고자 합니다. 특히 연구원 출신 창업자일수록 수년간 피땀 흘려 매진한 연구 성과를 학계와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강합니다.
그러나 이는 대학이나 비영리 연구소에 머물 때의 이야기입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주력 파이프라인의 핵심 기술이 아니라, 연구 궤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실패한 연구와 방법론적 탐색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논문을 작성해야 합니다.
신약이나 플랫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연구팀은 하나의 큰 줄기만을 따라갈 수 없으며, 수시로 방법론을 수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직면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방법론을 전환하기 전에 겪었던 시행착오와 기술적 실패의 과정, 그리고 이를 증명한 결괏값들을 구조화하여 학술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연구진은 이 정도로 높은 난도의 기술적 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규명해 낼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학계와 시장에 공인받는 것입니다.
반면 성공 궤도에 오른 핵심 연구 결과물은 특허(Patent)를 중심으로 권리를 확보하되, 이 역시 큰 맥락 위주로 청구항을 방어해야 합니다. 실질적인 제조 공정과 세부 노하우는 절대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기업 비밀(Trade Secret)로 철저히 잠가두어야 합니다. 동시에 사내 연구 인력에 대한 비밀유지계약(NDA)을 빈틈없이 강화하여, 향후 핵심 인력이 이탈하더라도 회사의 원천 기술이 흔들리지 않도록 원천 차단해야 합니다.
이는 결코 임상시험계획(IRB)에 제출한 연구 계획이나 데이터를 임의로 왜곡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연구 윤리와 결과의 무결성을 철저히 지키되, 세부 노하우를 방어하면서 대외적인 연구 실적을 축적해 나가는 고도의 지적재산권 방어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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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회사의 원천 기술을 철저히 보호하면서도 대외적으로 기술적 권위를 획득하는 일은 대단히 정교하고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바이오 스타트업이 논문을 써야 하는 존재 이유와 생존의 당위성이 성립합니다. 비록 논문을 작성하고 출판하는 과정이 연구진에게는 큰 부담이자 견디기 힘든 고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 유통·용역 중심 기업이 아닌 진정한 '연구 중심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수 관문입니다. 설령 스타트업이 실패하더라도 창업자와 연구진의 전문 경력을 지켜내는 자산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회사가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창업자의 머릿속에 최우선 순위로 새겨두어야 할 전략적 결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