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해외 연구실에서, 특히 지도교수님이 타 연구실 수장들과 유난히 가까이 지내는 경우라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연구가 잘 안 되는 것도 힘들지만, 사람 때문에 소모되는 감정과 체력은 그보다 더 크다. 근래에는 그 별의별 일의 정점을 찍는 사건이 있었다. 내 능력이나 성격과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 연구실 최악의 ‘빌런’ 덕분에 하루아침에 타 대학 교수들 사이에서 내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심지어 나와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 없는 교수들마저 내 인사를 피했고, 어떤 분은 대놓고 받아주지 않으려 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변명을 해야 하나 싶은 기분. 이메일 한 통을 쓰면서도 ‘이 정도면 괜찮을까, 아니면 더 굽혀야 할까’를 지도교수님께 묻던 순간이 떠올라서, 더 억울하다 못해 화가 났었다. 물론 지금이야 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이렇게 또 이야기를 하지만, 정말 내 능력으로 이 답도 없는 이미지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는 하는 건가 싶어 며칠을 혼자 앓았었다.
내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걸 처음 실감한 건 2022년 가을, 한 학회에서였다. 우리 지도교수님과 꽤 친한 사이였고, 그 무렵부터 우리 연구실과 공동 연구를 시작했던 S 교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같은 학회에 참석하셨다. 나는 그 학회에 우리 연구실 사람 없이 혼자 왔던 터라, 이미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던 S 교수님 팀이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점심 자리에서 인사를 드렸는데, S 교수님은 잠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넌 뭔데?’ 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인 네덜란드어로 몇 마디 하더니 그대로 제자들을 데리고 다른 테이블로 가버렸다. 그 순간, 식당 안의 소음 속에서 나만 조용히 얼어붙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날은 정말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서 강연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하루를 보냈다. 몇 년 전, 내가 분석 프로토콜에 대해 여쭤본 메일이 혹시 심기를 건드렸던 건가, 그 사소한 일이 이렇게까지 이어진 건가 싶은 생각에 호텔방에서 혼자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그렇게 나는 오해를 풀 방법도 없었다. S 교수님이나 그 연구실 학생들을 통해 이유를 들을 길도 없었다. 억울함은 끝을 달렸지만, 곱씹어보니 내가 무슨 수를 쓴다 한들 이 교수가 나를 다시 좋게 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앞으로 저 교수와는 부딪힐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런데 억울함을 풀 기회는 언젠가 한 번은 오는 법이었다. 그게 2024년 여름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우리 연구실의 ‘빌런’이 문제였다. 그가 S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개발한 분석 패키지가 “이상하다, 버그가 있다”면서, 지도교수님을 붙잡고는 미팅을 잡아달라고 연일 징징거린 것이다. 당시에 나도 이 빌런이 불평 일색을 내놓고 있었던 분석 패키지를 사용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내 데이터를 넣어 결과를 뽑아낸 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맞는 해석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 상황을 알고 있던 교수님께서는 ‘너도 그럼 이 미팅에 들어와서 네 결과물을 보여드리고 조언을 얻어 볼래?’라고 하더라. 이 날 나는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이 날이야말로 내 실력으로 그 사람의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였다.
미팅은 오전 10시에 온라인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역시나, 우리 연구실의 최악 빌런은 대놓고 온라인 미팅에 지각을 했다. 그 사이 S 교수님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고, “미팅을 요청한 사람이 왜 늦게 오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한 10분을 기다리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결국 나는 먼저 내 프로젝트와 결과물을 S 교수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됐다. 샘플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결과물을 보여드리면서, ‘내가 분석하고 있는 샘플의 경우에는 documentation에서 다룬 샘플과 완전히 다르고, intermediate populations가 여럿 있어서 이 부분을 어떻게 연관 지어 해석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조언을 얻고 싶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S 교수는 내 프레젠테이션의 초반에서는 어떻게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어 지적을 해 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연구실 미팅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작정한 채로 크리틱을 날리는 교수님보다 더 날이 퍼렇게 서 있었다. 그러나 발표가 후반부로 갈수록 표정이 달라졌다. 플란더스 사람 특유의 감탄사가 하나둘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발표가 끝나고 S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논문이 나오면 꼭 나에게 알려줘. 너무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아. 우리 툴을 이렇게 써 주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 연구실의 빌런은 본인이 요청한 미팅에서조차 빌런 그 자체였다.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제대로 해 오지 않은 데다, 30분 내내 그 패키지를 만든 학생들 탓만 했다. 우리 연구실 지도교수뿐 아니라,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미팅을 해 주는 S 교수 입장에서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S 교수가 만든 다른 패키지를 사용해 놓고도, 뻔뻔하게 본인이 짠 인하우스 코드라고 주장하기까지. 결국 S 교수는 ‘너 영어는 알아듣긴 하는 거야? 왜 자꾸 뭐 거짓말을 해? 왜 숨겨?’라며 이 빌런을 몰아세웠다. 뭐 또 빌런은 당연하게도 핑계 일색을 하다가 S 교수에게 팩트폭행을 당했고, 결국 지도교수님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끄고 조용히 ‘런’을 쳤다. 남은 건 분노한 S 교수뿐이었고, 들어줄 가치도 없으니 멋대로 하고, 시간 낭비했으니까 미팅을 그만하자 하더니 그대로 줌 세션에서 나가버리셨다.
나는 S 교수에게서 칭찬을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S 교수가 소속된 대학의 교수인 친구와 식사를 하다가, 뜻밖에 내가 왜 빌런 팀원 덕에 말 같지도 않은 ‘연좌제’를 당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듣자 하니 아주 가관이라고도 말이 안 나올 지경인 상황이라, 그날 나는 와인을 몇 잔 내리 들이켰다. 우리 연구실과 S 교수의 연구실을 포함해 총 네 개의 연구실이 참여하는 공동 연구에는 저 빌런만이 우리 연구실에서 생명정보학자로서 참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여기저기 사람을 가리지 않고 아주 무례하게 굴었다는 거다. 그리고 무언가 연구가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매번 실험하는 사람 핑계를 대거나 본인에게 조언을 준 사람의 핑계를 대며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뿐 아니라, 공동 연구를 하는 다른 팀이 짜 놓은 코드를 쓱 긁어다가, 자기가 짠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다닌 것도 덤. 결국 교수들과 시니어 포닥들이 이 빌런만을 보고, 우리 연구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저럴 거라고 판단을 했다는 거다. 현실은 교수님도 포기를 했다는 건데, 교수님이 공개적으로 말을 안 해서 모르는 걸까 싶었다.
하여튼 그날은 정말 머리끝까지 취했다. 역시 술은 기분 좋을 때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마시는 게 더 달달한 법이다. 그날 어떻게 혼자 알아서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서 집에 왔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말 내내 숙취에 죽어 있다가, 월요일에 기적처럼 정신을 차리고 출근을 했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S 교수가 메일을 아침 일찍 보낸 게 있길래 뭐지 했는데, 제목이 ‘사과를 하고 싶다’라서 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메일 내용은 이랬다.
“너희 연구실에서 정말 바닥을 찍는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거라고 오해했다. 그래서 네가 실력이 없는데 운 좋게 그 연구실에 있다고 생각해서 너무 막 대했던 것 같다. 내가 편견을 갖고 멋대로 판단해서 미안하다. 특히 그 학회에서, 교수로서 그리고 동료 연구자로서 그러면 안 됐는데 너무 미안하다. 앞으로 볼 일이 있다면 좋은 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때 발표한 논문이 잘 되기를 바란다.”
메일을 읽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이 연좌제의 늪이 끝이구나 싶어서. 그리고 억울함이 풀리는 데에 실력도, 운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런데 웃긴 건, S 교수의 편견을 깬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연구실의 빌런이었다는 거다. 빌런은 끝까지 빌런이었지만, 그 덕에 나는 억울함을 풀었다. 인생 참, 어디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