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연구비 체계는 조금 독특하다. 한국의 ‘한국연구재단’과 상응하는 기관이 프랑스어권 연방정부 (Fonds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와 네덜란드어권 연방정부 (Wetenschap Research Foundation)에 마련이 되어 있다. 하나 재미난 점이라면 연구 시설이나 대학이 어느 연방정부의 법을 적용받는가에 따라서 연구비를 신청할 수 있는 기관이 다르다는 거다. 나의 경우에는 대학이 브뤼셀 소재이지만 프랑스어권 연방정부의 교육법을 따른다. 따라서 나는 프랑스어권 연방정부의 연구비를 수주할 수는 있으나, 네덜란드어권 연방정부의 연구비는 자격 조건에서 미달이 된다. 그 외에도 유럽연합 회원국인 관계로 유럽연합 산하에 있는 European Research Council (ERC)에서 주관하는 연구비 또한 선발이 되면 수주할 수 있게 된다. 그 외에도 일반 시민들 혹은 기업의 기부금으로 운영이 되는 연구비 재단 또한 꽤 많은 편인데, 이런 경우에는 특정 주제를 다루는 연구에 대한 지원을 해 주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나의 경우에는 박사과정생 자격으로 4년간 연구비를 수주했는데, 수주 기관이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연구 재단이었다. 벨기에 프랑스어권 공영 방송국인 RTL Belgium과 프랑스어권 연방정부의 연구재단의 공동 주도로 1989년에 시작된 암 연구 기금 재단인 텔레비(Télévie)가 이 감사하게도 내 연구에 필요한 비용과 4년 간의 인건비를 부담해 준 셈이 됐다. 이 연구 재단은 소아 백혈병을 포함한 혈액암을 비롯하여 성인 암 연구 분야에서의 진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연구를 지원하고, 매년 많은 수의 박사생을 선발해 인건비와 연구비를 지원해준다. 실제로 1989년에 연구비 지급을 시작한 이래, 35년 동안 약 3000명에 달하는 과학자를 지원하며 벨기에의 암 연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재단이다.
해당 재단의 경우, 외부에서 들어오는 기부금이 곧 암 연구에 필요한 연구비가 된다.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곤 하는데, 이 중 매년 진행되는 두 번의 캠페인이 가장 크다. 첫 번째는 연례 텔레톤 주말 방송이고, 두 번째는 매년 5월에 리에주 (Liège) 소재의 엑스포에서 열리는 Grande soirée de clôture다. 두 번의 행사 모두 공영 방송국인 RTL TV I를 통해 생중계되고, 라디오 및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도 중계가 된다. 그리고 텔레비 재단에서 연구비를 받고 있거나 이미 받았던 연구원들은 초대장을 받아 해당 행사에 참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해당 행사의 가장 큰 목적은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연구 결과로 치료에 성공한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해 인터뷰를 하며 연구비가 실제로 의미 있는 곳에 쓰인다는 것을 어필하며 기부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해 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연구자들이 실제로 연구비를 기부를 해 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있는데, 연구자 입장에서는 현재 수주하고 있는 연구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된다.
나의 경우에는 연구비 수주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덕분에 연구비를 수주하지만 한 번도 재단의 행사에 가 볼 일이 없겠다 싶었다. 다행히 2022년 초에 규제가 다소 수그러들었고, 재단 측에서는 Grande soirée de clôture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당시의 나는 ‘설마 뭐가 있겠나’와 ‘친한 동료들 가니까 같이 가야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이 날 행사가 끝나고 나서 나는 내 연구와 내가 받고 있는 연구비에 대해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당시의 주제는 ‘우리의 영웅’이었다. 뭔가 이렇게 비행기를 태워줘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등록 데스크에 도착하니 하얀 랩코트와 재단 로고를 배지로 만들어 나눠주고 있었는데, 실험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해당 랩코트를 준다고 했다. 다만 연구자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행사 동안 랩코트를 입고 있으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어색한 건 덤. 그리고 들어가면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고, 동료들과 신난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어린 자매를 데리고 온 어른 분들이 우리에게 어느 연구실에서 무슨 연구를 하냐고 물어봤다. 각자의 연구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니, 어른 분들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야. 할머니가 아프셨지? 이 분들이 이유를 찾고, 의사 선생님들이 치료를 할 수 있는 거야’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좀 생각이 많아졌었다.
그리고 실제로 기부를 해 주신 분들 중 일부와 만나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우리 연구실의 연구 교수님을 아는 분들이라고 했고, 매년 꾸준히 기부를 해 주시고 계시는 분들이라고 했다. 실제로 들어보니 암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분들이 해당 재단에 기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다른 환자들의 가족에게는 같이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오래가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연구를 할 수 있고, 내가 박사과정을 하면서 생활이 어렵지 않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기부를 하고 연구비를 모금해 주는 사람들은 그 정도만 생각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기부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연구비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알게 되니 조금이나마 사명감을 갖게 된 건 덤인 것 같다.
해당 행사가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가 된다고 했는데, 이 날도 하나의 이벤트가 있었다. 방송국 스태프들이 급하게 몇 명이 필요하다 했는데, 이 날 모여서 대화를 하고 있던 나와 내 동료들에게 와서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말만 안 하면 된다 하니까 가방과 핸드폰을 잠시 다른 스태프에게 맡겨놓고 오라고 하더니, 저렇게 배치를 해 놓고는 한국 음악 방송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지미집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고 동료들이 말해줬다.
그리고 몇 번이나 더 무대에 올라가야 했는데, 그나마 나머지는 연구비를 받는 연구원들이 모두 다 올라가서 홍보대사로 온 가수들 뒤편에 서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묻어가야지 했다가, 키가 작다는 이유로 앞으로 나오게 됐다. 그리고 동료가 ‘너 방송 나왔는데 얼굴 크게 잡혔다’고 보내준 스크린샷은 덤.
지금은 박사생으로 맺을 수 있는 계약 연한이 지나 더 이상 그 연구비를 수주하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alumni라는 이름으로 해당 행사에 오라는 초대장을 여전히 받는다. 최근 2년 간은 바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일이 많아 참석이 어려웠는데 내년에는 한 번 가보는 게 좋겠다 싶다. 슬슬 논문에 목을 매는 이 시점에, 내가 누구에게서 연구비를 받아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시 상기를 해 볼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