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업보라는 게 실제로 존재를 한다는 걸 굳게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종종 이전의 포스트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래도 여러 국가에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연구실로 흘러 들어오게 되다 보니, 한 번씩 곱지 못하게 미친 사람들이 흘러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멍청하게 여럿에게 기싸움을 벌였다가, 말년에 모두에게 소위 말하는 손절을 당하게 된 박사생의 이야기다.
스페인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하면서, 내내 1등을 했다고 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런데다 좋은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서인지, 자신이 뭘 하든 간에 누구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진 여학생이었다. 실제로 우리 연구실에 처음 채용이 되었을 때만 해도, 이 사람은 모두가 자신감 넘치고 똑똑한 박사생이라는 평을 했었다. 하지만 그 확신이 너무 커진 나머지, 그리고 과학에 대한 투자가 비교적 적은 국가에서 뱀의 머리였던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박사 과정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언제나 사람들 위에 있어야 한다고 확신을 갖기 시작한 게 말년의 카르마를 가지고 오게 된다.
그녀는 항상 동료들의 급을 나누었다. 자기가 필요할 수도 있을 사람, 자기가 정말 필요한 사람, 그리고 자기편이 될 일이 없는 사람이 그 분류였다.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했지만,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르거나 자신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했다. 대놓고 싸우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옮기고, 관계를 갈라놓고, 상대를 서서히 고립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연구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정신적으로 지쳐서 이 사람이 떨어지게 만들면, 본인 편인 사람을 연구에 넣어 달라 해서 자신만의 벌집을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약간 누군가 한 사람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어야 자신의 위치가 더욱 단단해진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쉽게 말해, 요새 중학생들도 안 할 짓을 하고 다니네의 표본이었던 것.
하지만 그녀가 박사 과정의 마지막 논문을 준비하던 시기, 결국 이런 행동의 업보를 제대로 맞게 됐다. 본인이 통계는 물론 시퀀싱 데이터를 아예 분석하지 못하는 탓에, 그 논문에는 결국 여러 명의 공동 1 저자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공동 제1저자란 원칙적으로 논문에 비슷한 수준으로 기여한 연구자들을 의미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자신의 이름이 공동 제1저자 중 가장 먼저 적혀 있으니, 자신이 사실상 대장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 논문을 함께 완성하는 동료들에게 일을 협의하기보다 분배했고, 끊임없이 ‘내 일’과 ‘네 일’을 구분했다. 다른 공동 저자들이 의견을 내면 조율하기보다는 지시하려 했다. 특히나 논문의 진행 상황이나 프로젝트 상의 문제점을 정작 공동 저자들과는 공유하지 않았고, 한참 동안 정보를 쥐고 있다가 하청을 주듯 필요한 일만 던져주었다.
결국 공동 제1저자 중 한 사람이 메일을 이용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함께 논문을 쓰는 사람을 부하처럼 대하는 방식이 불편하다고, 연구 진행에 필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 익숙한 방식을 택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나 논지를 흐리기 위해, 사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말들까지 사람들에게 퍼트리기 시작했다. 문제를 제기한 이 사람이 누구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느니, 자기에 대해서 뒷담화를 하는데 어떻게 믿냐느니와 같은 소리를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점점 팀 안에서 고립되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까지 나빠져서 병가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상대의 버릇을 고쳐야 해서 그랬으니, 꼬리 내리고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동료가 아니라 길들여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처럼 조용히 끝나지 않았다. 문제를 겪던 사람과 오피스를 같이 쓰는 동료들이 전체 미팅에서 이 일에 대해 공식적인 항의를 하기로 한 것. 가능하다면 개인적인 갈등으로 두는 게 맞지 싶었다가, 이렇게 두었다가는 다른 팀에도 이 박사생이 영향을 안 줄 리가 없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이들은 공동 저자들이 그동안 주고받은 이메일과 대화 기록, 다른 동료들에게서 얻은 정보들을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누가 언제 어떤 정보를 요청했는지, 그 요청이 어떻게 묵살되었는지, 논문의 진행 상황이 누구에게만 공유되지 않았는지, 뒤에서 어떤 말이 전달되었는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미스 스페인이 누구인가. 그녀는 자신이 먼저 공격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상대가 먼저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방어했을 뿐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메시지와 메일들은 매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폭로 덕분에, 지도 교수와 행정 담당자는 연구실 차원의 조사를 시작했다. 현재 연구실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미 그만둔 사람들에게도 연락해 당시의 일을 물었다. 놀랍지도 않겠지만, 이 과정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녀에게 따돌림을 당했다고 느낀 사람, 중요한 정보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된 사람, 그녀와 일한 뒤 연구실을 떠나면서까지 분노를 삭이지 못한 테크니션들이 있었다. 한 사람과의 단순한 성격 차이로 설명하기에는 같은 패턴을 경험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연구실 전체는 그제야 작은 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했던 방식들이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몇은 문제를 제기했던, 그리고 그렇게 배제되었던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으로 잘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코드 네임으로 이 스페인 학생을 ‘여왕벌’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여왕벌은 박사 학위를 받고 나가는 날이 오게 되었다.
이 스페인 여학생은 항상 그랬다. 본인의 졸업은 정말 화려할 것이라고. 본인의 편이 이렇게나 많았으니 당연한 처사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졸업의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그녀의 디펜스를 축하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서른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아득바득 우겨서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강의실을 예약했는데, 그 강의실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디펜스가 끝난 뒤 마지막 저녁을 함께하겠다는 사람도 열 명 남짓이었다. 예전에는 그녀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졸업 이후, 다른 건물에서 일하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퍼졌다. 그냥 이 여학생과 이름이 엮이는 것 자체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라는 이야기가 다른 건물에서 돌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리고 졸업 한 지 약 세 달 정도 되었으나, 실제로 이 스페인 여학생이 떠난 후에도 연락을 이어가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작은 싸움에서 여러 번 이겼고, 이 상황들이 본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죄책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뱀의 머리에서 내려와 본 적이 없으니 눈에 뵈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매번 남의 마음에 칼을 찌르면서, 유종의 미라는 것을 결국 업보로 채우게 되었다는 게 참 씁쓸하면서도 통쾌할 수가 없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축하해 줄 사람조차 남기지 못하는 식으로, 가장 초라한 패배를 안고 연구실을 떠났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연구실의 불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올해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시작할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매우 곤란해진다는 것을 설명하는 교육 자료에 사용이 됐다.
유종의 미는 잘 거두어야 본전이라는 걸 이 여학생은 이 일들을 통해 이해했을까. 아니면 그저 다른 뱀의 무리에게 물렸다고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