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벨기에는 박사과정 학생의 계약 연한이 꽤 엄격한 편이다. 유럽연합 시민권자는 최대 4년, 그 외의 경우에는 최대 5년까지 박사과정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다. 본인의 계약이 끝난 뒤 연장해 연구원으로 조금 더 연구실에 남을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지도교수에게 달려 있다. 보통은 박사과정 계약이 끝나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연장해, 그동안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논문을 투고한 다음 졸업 논문을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해당 학생의 근태, 업무 태도, 동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면 어떨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알아서 하라”는 말과 함께 계약 종료와 동시에 연구실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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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실 실전편] 29.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 빌런인 팀원 덕에 연좌제를 당해버렸다)**에서 우리 연구실의 정신 나간 친구, 빌런에 대해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일적으로도 이미 문제가 한가득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연구실에서 분란이 생길 때마다 이 빌런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저 포스트에서 다룬 일로만 끝났다면 참 평화로운 연구실이었을 텐데, 시간이 갈수록 이 빌런의 행태는 점점 더 답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수님께서는 중도 해고까지 고려하셨지만, 중도 해고는 오히려 이 빌런에게 떡밥을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벨기에는 박사생의 노동권이 정말 센 데다 노조까지 있는 나라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부당 해고’를 이유로 교수님을 고소할 수도 있었다. 법무팀을 통해 그렇게 되면 미친놈에게 돈과 시간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연구실에서는 차라리 계약 만료로 내보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일 정도였다.
기본적인 시간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거짓말을 너무도 당연하게 하는 순간, 이미 그는 신뢰를 잃은 뒤였다. 오전 11시 미팅에 가볍게 12시 30분에 나타나서는 지하철이 고장 났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일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하다 하다 2주간 아이가 아파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 놓고는, 실제로는 일본에 가서 휴가를 아주 야무지게 즐기고 계셨던 이 범인. 결국 다른 학교 사람이 이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봤다며 우리 교수님에게 메일로 문의하는 바람에 꼬리가 밟히게 됐었다. 이때 추궁하니 돌아온 대답이 또 가관이었다고 하는데, 전해 듣기로는 ‘와이프가 일본 사람인데 힘들어해서’라더니 일본에서 아니냐며 역으로 따져 물었다고 했었다.
과학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본인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가설을 세워 따라가야 하는지조차 모른다는 점이었다. “방법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같은 분석 파이프라인을 열댓 번 넘게 돌려, 연구 결론을 낼 수 없을 지경이라고 다른 팀원들이 불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학부 1학년 때 들어도 남을 수준의 일반 생물학 지식조차 없었고, 레퍼런스에 쓸 논문도 챗지피티로 돌려 피피티를 만들어오던 터라 아예 연구를 함께 진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 번째 문제는 미팅을 할 때마다 드러났다. 본인의 결과를 놓고 디스커션을 할 때, 교수님을 포함해 누군가 의견을 내는 순간 그것을 본인에 대한 공개적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였다. 실험 결과와 분석 결과가 맞지 않는다고 하면, 그는 늘 ‘실험한 애가 잘못했다’는 대답으로 남 탓부터 했다. 그뿐 아니라 누군가가 ‘그 결과는 이 논문에서 나온 거랑 다른데’라고 언급을 하면, 그 빌런은 그 논문이 잘못된 것이니 자기 결과가 맞다고 우겨대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이 친구 때문에 많은 교수님들이 질리신 탓에, 우리 과 전체에서 1년마다 하던 intermediate evaluation이 서면 평가로 바뀌었으니 말을 다 하지 않았을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메일로 누군가 업무 관련 질문을 하면 욕설이 섞인 협박성 이메일을 보내는 데도 아주 도가 터 있었다. 게다가 연구실 데이터를 저장하는 서버의 관리자 권한을 전산팀에서 온갖 거짓말로 받아낸 뒤, 일부 연구원들의 접근 권한을 차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터 무결성과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연구실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래서 어쩌라고’였다. 하다 하다 이런 일로 완장질을 하나 싶어 모두가 할 말을 잃었던 적도 있었다. 심지어 온갖 피해망상에 찌들어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고 연구실 사람들과 교수님을 모두 인사팀에 고발하기까지 했으니, 뭐 설명이 더 필요할까. 결국 교수님은 이 빌런을 불러 ‘내가 치고 있으니 꼭 날 다시 인사팀에 고발해라’라고 하셨었다.
이 모든 난리의 결말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앞에서 말했듯, 2025년 말 계약 만료를 사유로 해고되는 엔딩이 났다. 연구교수님을 통해 들어보니 교수님께서는 이미 지난해 10월 초 이 빌런을 불러 “나는 너를 연말에 내보낼 것이지만, 졸업 논문은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통보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미팅에 들어올 필요도 없고, 굳이 연구를 할 필요도 없으며, 다른 박사생과 함께 진행하던 논문에서도 손을 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물론 그날 연구실 전담 행정원 선생님에게 부당하지 않냐며 한 시간 가까이 따졌다는데, 그렇다고 4년간 쌓아온 답 없는 이미지가 바뀌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빌런은 당연히 계약이 연장되고, 문제없이 디펜스를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멀리서 본 희극의 클라이맥스였다. 그렇게 모든 권한을 뺏긴 11월부터 그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웃긴 건 본인이 퇴사를 하니 연구실 사람들이 다른 동료들에게도 그랬듯,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선물을 해 줄 것이라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나마 말을 걸어주는 같은 오피스 벨기에인 여학생에게 ‘뭐 들은 거 없냐’고 물어봤다던데, 이걸 들은 연구실원 모두는 기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빌런이 하나 잊은 게 있었다. 우리 교수님은 본인 눈 밖에 나면 아주 커리어까지 세세하게 망쳐 놓는다는 데 있다. 아예 과학계에는 다시 발을 붙일 수 없게 만든다는 전설이 있고, 실제로 연구실이 20년간 운영되면서 그렇게 과학계를 반강제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네 명 정도 있다고 구전되어 왔었다. 첫 번째 이무기는 아예 과학계를 떠나 보험회사에서 판촉을 하고 있다고 들었고, 다른 이무기는 결국 박사 학위를 받지 못 한 채로 컴퓨터공학과를 다시 전공해 프로그래머가 됐다고 했다. 듣자 하니 박사생이면 졸업을 할 수도 없게 만들고, 박사 후 연구원 신분이라면 아예 대기업이나 메이저 회사들로는 이직을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고.
그렇게 이 빌런이 다섯 번째 이무기가 되었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 연구실 테크니션 한 명이 퇴근길에 이 빌런을 브뤼셀 시내 기차역에서 만났다며,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무도 뻔뻔하게 인사를 하며 테크니션에게 안부를 물었다고 하는데, 테크니션은 안부를 전한 뒤 ‘넌 그래서 뭐 하고 사냐’고 되물었단다. 듣자 하니 벨기에를 포함한 주변국까지 백 곳이 넘는 기관에 보조연구원이나 퍼실리티 근무자 등 석사 학위 소지자를 뽑는 자리에 지원했지만, 한 군데도 서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푸념 섞인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교수님께 졸업 논문을 논의드리고자 했으나 메일을 전혀 확인하지 않으시고, 연구실에 와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해도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매우 착잡하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연구실 테크니션이 다시 ‘그럼 벨기에에서 뭐 해?’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중고차 딜러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먹고살아야 하는데 모아 둔 저축은 없고 식솔은 둘이나 있어, 결국 구직 비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이 빌런이 연구실에 와서 이것저것 묻던 영업사원들에게 모진 말을 퍼부으며 ‘모자라서 저런 일을 한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곤 했다는 점이다. 정작 본인이 그 처지가 되었으니, 어떨까 싶었다.
가까이서 겪은 사람들에게는 재난 같았던 4년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 시간이,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의 미래가 조용히 접히는 과정을 지켜본 희극으로나마 덮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빌런은 마지막까지도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연구실은 물론 교수님도 이미 오래전에 결론을 내려두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더 덧붙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결말은, 지난 4년 동안 연구실 사람들이 모두 예상하고 있던 가장 자연스러운 엔딩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