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큰 연구실, 그러니까 빅랩에서 일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원도 많고 교수님도 역량이 뛰어나니 좋겠다”라고 말한다. 사실 규모가 큰 연구실에서 일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구비 때문에 전전긍긍할 일도 없고 다양한 기기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구와 관련해서는 꽤 풍족한 환경에서 이것저것 배울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심지어 새로운 기술이나 장비가 나오면, 역으로 회사들에서 가장 먼저 우리 연구실에서 데모를 해 주고 싶다며 연락이 오기도 한다. 손을 대지 않고도 코를 풀다 못해 머리까지 정리되는 듯한 이런 장점은 분명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연구실에서 일하며 느끼는 가장 큰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래도 연구실에 사람이 많다 보니, 교수님이 모두를 같은 정도의 관심으로 지도하기는 어렵다. 물론 단순히 우선순위를 두고 누구를 더 많이, 덜 봐주느냐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단점은 단순히 지도를 덜 받는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거느린 연구실에서는 각자의 역량과 노력의 정도가 자연스럽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노력이 교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한 사람의 커리어는 소리 없이 스근하게 묻혀버린다. 마치 개구리를 물에 넣고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천천히 죽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연구실에서 처음부터 대놓고 그렇게 차별을 두지는 않는다. 사실 판도라의 상자는 열기 전까지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법이다. 연구실에서는 보통 처음 1년 정도는 최대한 지도를 해 주는 편인데, 이 과정에서 연구자는 자연스럽게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교수님과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아 연구를 발전시켜 나가는 경우, 그리고 ‘왜 얘는 피드백을 줘도 반영을 안 해서 연구가 앞으로 나가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경우다. 물론 전자에 속한다면 교수님은 최대한 많은 인풋을 주려고 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학회부터 외부 미팅까지 야무지게 데리고 다니며 얼굴 도장을 찍게 해 준다. 하지만 후자라면, 명시적으로 선언되지는 않지만 교수님은 점점 결과물에 대해 제대로 된 피드백을 주지 않기 시작한다.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에너지 안에서, 이 사람에게 이만큼 투자를 하는 게 과연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인지에 대해 교수님이 계산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결국 후자로 분류되고 나면, 교수님은 다른 동료의 프로젝트 결과가 좋아서 논문을 써야 한다거나, 이제 막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학생의 연구계획서를 봐줘야 한다는 등, 타인이 들어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며 디스커션을 미루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반성을 하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그룹을 탈출할 기회가 생기지만, 여기서조차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끝없는 자이로드롭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만 이제 다시 올라가는 일은 없고, 끝없이 떨어지기만 하는 자이로드롭이다.

연구실에는 그리스에서 박사를 하기 위해 벨기에로 건너온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늘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꽤나 강한 사람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친구의 경우에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그런 느낌.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인간이고, 너희의 피드백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항상 보였었다. 교수님이 미팅 중에 이 친구에게 피드백을 주면 그건 조언이 아니라 싸움을 시작하자는 신호로 받아들여졌었다. 디스커션이라기보다는 로마 제국의 검투사 경기를 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다른 동료들이 결과물에 대해 의견을 내도, 어떻게든 본인이 맞다는 걸 끝까지 점철시켜야 그날의 미팅이 끝났다. 문제는 그렇게까지 방어하던 결과물이 실제로는 이마를 짚게 만들다 못해, 연구비가 아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는 것이다. 한 번은 도저히 소생이 불가능한 수준의 데이터를 만들어 놓고는, 본인과 함께 일하던 보조연구원과 데이터 생산을 담당한 퍼실리티 탓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은 아무 말 없이 마른세수만 하고 계셨는데, 아마 그날 이후로 이 친구는 교수님께 소위 말하는 손절을 당하게 된 것 같다. 교수님은 대놓고 더 이상 이 친구에게 피드백을 주는 게 의미가 없다는 듯한 태도로 이 친구를 대하기 시작했다. 팀 미팅에서도 이 친구가 발표를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 발표부터 듣자며 대놓고 순서를 뒤로 미루곤 했다. 그렇게 남은 박사 계약 기간이 3년이었는데, 그동안 이 친구가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았겠는가. 결국 학회 참석을 한 번 해 보지도 못한 채, 진행하던 논문도 교수님 입장에서는 여기다 낼 바에는 논문 안 내고 만다 했던 저널에 거의 버리듯이 투고하는 것으로 그녀는 연구실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사실 이렇게 연구실을 떠난 뒤에, 좋은 연구실을 만나서 다시 성장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실에서는 누군가 면접을 보러 오면 레퍼런스 체크를 하지 않는가. 이 친구가 나간 뒤에도 레퍼런스 체크 연락이 꽤 왔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교수님은 지난 4년 동안 이 친구가 연구실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꽤 상세하게 이야기하셨다고 했다. 나를 비롯해 이 친구와 함께 일했던 인원들에게도, 혹시 이 친구의 레퍼런스 체크 관련 연락이 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교수님이 직접 말해 주셨다. 결국 다른 연구실에 있던 그리스 사람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이 친구는 지금도 아웃소싱 에이전시를 끼고 작은 회사들을 옮겨 다니며 벨기에에 체류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본인은 끝까지, 언제부터 어디서 잘못된 건지 몰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규모가 큰 연구실, 소위 빅랩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한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자원은 풍족하지만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기회는 많지만 그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선은 공식적으로 그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이제 끝이라는 것을 말해 주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그 침묵이 생각보다 많은 걸 말해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빅랩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필요하다면 스스로를 꺾을 줄 아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물이 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로 가라앉아 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