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주간의 신입 사원 합숙 연수가 끝난 후, 본격적인 공장으로의 첫 출근 날은 얄궂게도 QA 업무의 꽃인, 외부기관 감사였다. 제약업은 규제 산업이다. 식약처의 허가 아래 국내에 유통되는 약들이 제조되고, 유통된다. 외국으로 수출되는 약들의 경우, 해당 국가의 허가기관에 인증을 받아야 한다. 나의 입사 첫날은 허가 기관 중 최고 위엄으로 불리는 FDA의 인증받는 날이었다.
한국어보다 더 자주 들리는 영어에,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모르겠던 사무실에 자리를 배정받아 앉았지만, 팀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자리를 비운 사람이 대부분이고, 분주하고 뛰어다니며, 며칠 집에 못 간 사람들 마냥 다크 서클이 내려앉은 팀원의 모습을 보는 순간 지금이라도 도망가기엔 늦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뭐 라도 돕고 싶은데 하나도 아는 게 없다. 가르쳐줘야 할 선임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일단 자리를 배정받아 앉았는데, 이 세상에서 나만 고립된 기분, 다들 바빠 보이는데 나만 혼자 이렇게 있어도 되나 싶은 눈치 보이는 숨 막히는 상황.

멀뚱멀뚱 서 있는 게 마치, 깍두기가 된 기분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하며 나의 첫 출근이 지나갔다.
실수의 연속, 배움의 연속
처음 신입사원은 모든 게 미숙하다. 한 번도 안 해보고 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회사원에 재능이 있으니, 그 길로 쭉 가길 바란다. (좋은 뜻은 아닌 것 같다) 같이 들어온 생산팀 입사동기는, 공정 제어기에 써티 값 입력해라는 반장님의 말을 보고 컴퓨터에 숫자 30을 입력했다가 난리가 난 적이 있다.
Certificate 줄여서 Certi, 인증서가 여러 개 있지만, Certificate of Analysis(COA) 제조사에서 시험한 결과 값을 넣어줘야 하는데, 용어 하나 익숙하지 않아 공정이 멈추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처음 입사하게 되면, 생소한 단어 그리고 모르는 줄임말 등 적응해야 할 것이 많지만, 눈치껏 유추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경우에는 뻔뻔해지는 게 필요하다. 나는 신입이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묻겠습니다 하는 마인드로, 써티값 입력해라고 했을 때는, “써티는 삼십 말씀하시는 건가요?” 라고 한번 되물었으면, 사람에 따라 웃거나 화냈을 것이고, 그런 다음에 써티가 뭔지 알려줄 것이고, 공정 중단까지는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입사 5년 차지만 나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당당하게 물어본다. 물론 이젠 넉살을 곁들인.
입사 이후로 처음 내가 맡은 일은 QA Oversight 업무였다. QA는 현장 GMP 준수를 위하여 내부 수시감사를 실시하고 현장개선활동을 실시하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생산 경력 10년 이상 되시는 분들을 지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 막막하고 답답한 일이지만, 신입에게는 현장을 배운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생산 현장에 대해 배우고 싶습니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여 철판 깔고 우리 팀 사무실보다 현장 사무실에 더 자주 출근하며 배웠다. 한 달 정도 같은 상황을 보고 있으면 슬슬 개선할 점이 보이며, 현장의 불편함도 보이게 되는데, 그때 QA팀 선배들에게 이건 왜 이렇게 하는지 물어보며, GMP에 대해 또 알게 되었다.
막상 QA로 입사했지만, 현장의 경험을 배운 그 신입사원의 기간은, 현재까지 QA 업무를 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 최근 GMP 트렌드는 Data Integrity이다. 이에 따라 회사에서도 해당 트렌드를 맞춰 새로운 업무들을 적용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 내가 그 업무 변경의 대상이 되었다. 전혀 해보지 못하고, 전공과 다른 IT 업무 및 통계 업무를 맡으면서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데, 팀 내 물어볼 곳이 전혀 없어서, 여러 강의를 찾아다니며, 구글 형님의 도움과, 타 부서 사람에게도 물어보며, 서버 관리, 코딩, 통계적 처리, 빅데이터 관리 방법 등을 배우고 있다.
회사는 이상하게 내가 잘하는 분야를 계속 시키지 않는데, 이것도 해봐 이것도 해봐 하면서 나를 성장시킨다. 최대한 자기의 성장에 회사를 이용해 먹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업무를 열심히 마무리한 뒤에 나는 내 자기소개서에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배우는데 두려움이 없고, 잘해 낼 자신이 있다고 적을 것이다.
최근에 심심한 사과라는 단어로 인하여 MZ 세대의 문해력 논란이 있는 것으로 들었다. 회사 생활하다 보면, 예의 있게 물어보는 것도 능력이다는 걸 느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스킬만큼 회사생활을 결정하는 것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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