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아침 공기와 함께 겨울이 찾아왔다. 연말과 크리스마스로 살짝 들뜬 분위기가 사뭇 낯설게 느껴진다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지난 몇 년간 연말 다운 연말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로나19라는 아주 큰 세계적 이슈가 발생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모든 분야가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큰 변화를 겪은 분야 중 하나가 생명 분야일 것이다. 세계를 뒤흔드는 새로운 감염병의 등장으로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시급해지면서 생명 및 제약 분야에 대한 관심은 더불어 늘어갔다. 흔히 취업이 잘 된다고 생각되는 전기, 화학, 기계 분야와 달리 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비교적 외면되어 왔던 생명 분야에게도 드디어 전성기가 오는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커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과대학 소속으로 의생명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던 나에게도, 어김없이 코로나가 일으킨 변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작게는 실내에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생활하게 되었고, 크게는 국내 및 해외 학회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더불어 대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인력에 대해서는 재택근무가 허용되기도 했고, 대부분의 연구 관련 회의가 화상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크고 작은 변화들 가운데 있어서 학위과정을 밟고 있던 학생이던 나에게 가장 무겁게 다가온 변화는 실험에 필요한 소모품들의 납품이 지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논문 리비전 과정에서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여 소모품을 주문했던 주변 동료들은 마감 기한에 맞춰 실험을 끝내기 위해 주변 연구실에서 소모품을 빌리려 발품을 팔기도 했다. 실험에 사용되는 소모품뿐만이 아니라 임상 시료로 연구하는 연구실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시료의 모집이 어려워지며 연구 계획이 미뤄지거나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졸업을 위해서 쉼 없이 달려온 대학원생들에게 있어서 코로나는 의도치 않은 쉼표를 만들었다.
코로나가 이렇게 부정적인 결과들만을 가지고 왔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코로나로 인해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생명 분야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얻게 된 혜택도 있었다. 코로나와 직접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생들의 연구 결과는 빠른 리뷰를 거쳐 코로나 이전보다 비교적 빠르게 게재되는 경우가 생겼다. 코로나와 관련된 논문들은 인용이 늘어나면서 인용 수가 빠르게 늘어나거나 관련 저널의 IF가 전반적으로 상향하는 결과도 생겼다. 일부 제약회사에서는 코로나 진단키트, 치료제, 백신 개발과 관련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해서 관련 연구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채용을 늘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들은 극히 일부에게만 일어난 일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코로나의 ‘혜택’을 받게 된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
문득, 이러한 상황들을 예상하고 연구분야를 선택했던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와 같은 특별한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5년 전에 활발하게 연구되던 분야가 지금도 그러할 것이라는 보장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많은 후배들이 연구분야를 결정하는 시기가 오면 자연스레 어떤 분야가 ‘핫’한 분야인지를 고민하고, 질문한다. 그 시기의 나도 역시 핫한 분야를 선택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기나긴 학위 과정을 시작하기로 결정 한 이상 그 선택이 최선의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를 겪으며 내가 배운 점이 있다면 미래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상황은 변화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지금 ‘유행’하는 연구 분야를 따라 전공 분야를 선택하는 것은 좋은 결정이 아닐 수 있다. 장기적으로 연구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보고 내가 가장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분야와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과학 분야의 대학원생들 중 하나였던 나에게 코로나는 다행스럽게도 긍정과 부정의 온화한 혼합으로 스쳐갔다. 실험 물품이 도착하지 않아 가슴 졸이던 순간도 있었고, 학회가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포스터 발표를 할 기회를 잃기도 하였지만, 가쁘게 달려오던 일상에 잠시나마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어쩌면 잠시 멈춰 섰던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진로를 충분히 고민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코로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4년이라는 시간을 코로나와 함께하며 나는 무사히 논문을 게재하고, 졸업 심사를 마치고, 해외에서 포닥 생활을 시작하여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의 종식이 과연 올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4년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모양으로. 그리고 세계는 지금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감염병에 대해 빠른 시간 내에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백신 및 치료제를 개발해 나가며 질병과 싸워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세계의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쌓아온 기반 기술들과 지식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언제든 제2의, 제3의 코로나는 다시 찾아올 수 있다. 혹시라도 제2의 코로나가 찾아오게 된다면 박사를 마친 지금의 나는 과거의 대학원생이었던 나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전심을 다해 연구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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