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글은 정확한 지식이나 권고를 드리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실/강의실에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일에 매진하시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잠깐의 피식~하는 웃음 혹은 잠깐의 생각,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면(3초 이상)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뇌세포가 안 좋아지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곧 3월입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날짜를 기준으로 말입니다.) 학부생들은 3월 2일을 기준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지만, 대학원 연구실들은, 아마도 신입생들이 이미 출근을 시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온 지 오래되어서 혹시 요즘의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했다면 죄송합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신입생이라면, 이 글이 여러분의 실험실 생활에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니 살펴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제가 포닥으로 새롭게 출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실험실의 유일한 포닥이자, 막내로서(실험실 합류 순서로), 하늘 같으신 대학원생 선배님들의(?) 지도편달을 받으며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우리 실험실에 중국인 학생이 있었는데, 이 학생은(이하 C군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집에 잘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빨리 업무를 익혀야 했기 때문에 집에 늦게 가던 시절입니다. 당시 제 업무는 화학합성이 핵심이었고, C군은 대장균을 이용한 실험을 했기 때문에 서로 일이 연관되지는 않았지만, 늦은 시간에는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할 때도 있어서,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서먹했지만, 서서히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의 이전 연구실에서, 중국 학생들과의 좋았던 경험이 있어서, C군에게 큰 경계심이 없었고, 그냥 잡다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C군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 세계 학교의 랭킹과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C군이 말하길 다수의 중국 대학들이 세계 대학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 결과들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내심 놀랐습니다. 중국 대학들의 약진이 생각보다 빠르다고 생각했고, 이는 곧 중국의 학문적 성장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C군이, 당시 뉴스의 주제 중, 한반도의 THAAD(사드) 배치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정치이야기는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연관이 있지만, 역사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복잡한 관계에 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군은, 왜 사드를 배치해서 한국이 중국을 견제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하기를, 사드의 주된 목적은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화이지 주변국들에 대한 견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견해와 완전히 일치하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적절한 대답이라고 여겼습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학교의 평등기회 사무국(Office of Equal Opportunity)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곳은 인종, 성별, 장애, 출신 등과 관련하여, 부당한 차별이나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느낄 때 신고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저와 관련된 신고가 들어와 있는데, 시간을 내어 평등기회 사무국에 방문해 달라고 합니다. 저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지도교수님께 보고를 했습니다. 나는 오랜 시간을 미국 대학에서 일을 했지만, 늘 실험실에서 일만 할 줄 알았지, 평등기회 사무국이 뭐 하는 곳이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고를 받은 지도교수님은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면서, 혹시 제가 다른 실험실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하지는 않았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 질문에 매우 당황했고, 교수님도 미안해하시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의아해했습니다. 일단은 제가 사무국에 방문해서, 무슨 일인지 파악한 후에 다시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그제야 저도 큰일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잘 아는 미국인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대답에 따르면,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만일 어떤 개인이, 자신의 자유와 평등과 관련된 권리가 침해를 당했다고 여겨질 때 신고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학교뿐만 아니라 기업들에도 다 있는 기관이고, 만일 사실이 확인되면 지목된 대상자는 퇴사처리 및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고, 만일 양측의 주장이 대립될 경우, 다른 이유를 들어, 양측을 모두 해고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해 주면서, 제가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평등기회 사무국을 찾아가니, 어떤 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있고, 그 반대편에 앉으라고 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신고된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인종적 차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특정 국가를 비난하고, 그 출신의 사람들을 차별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나를 이렇게 모함하는가?'라는 생각에 뇌가 정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는 말이 생각나서 얼른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 직원이 하는 말들을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듣던 중, 신고자가 우리 연구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우리 연구실 사람들만 알고 있는 제 호칭을, 일종의 별명과 같은, 사무국 직원이 사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인데, 사무국에서는 신고자의 보호를 명목으로 신고자를 특정할만한 내용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실체가 없는 비난에 의해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고자가 같은 실험실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특정 국가의 비난 및 민족의 비난이라면, C군이 용의 선상에 주목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근거로 보다 적극적으로 반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치자, 내가 어느 나라와 민족을 차별했는지 조차도 모르고 유죄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사무국 직원은, 신고자의 신원이 특정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는 말해 줄 수 없다고 하고, 저 역시, 내가 알지도 못하는 국가와 민족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내가 불이익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로 대립하다가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C군이 신고했죠?"
순간 직원의 얼굴이 굳어졌고, 저는 그 근거를 설명을 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대해 접수된 불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 연구실 사람들만 아는 나의 호칭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부자라고 생각을 했고, 우리 연구실에는 5-6개국의 학생이 있는데, 최근 내가 나눈 대화 중, 문제가 될 만한 국가는 중국 밖에 없었으니 C군이 신고한 것 같다."라고 말하자, 직원은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한 뒤, 직원이 설명한 불만 접수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이어갔습니다. ('커다란 관점으로 보면, 사드는 동맹인 한국과 미국의 일이고, 또 이와 관련된 주변국들의 이견이 있다. 그런데 지금, 사드를 주제로, 주변국 출신의 학생이 한국인인 나를 신고해서, 나는 여기에서 미국인인 당신에게 조사를 받고 있다. 다소 아이러니하지 않은가?'라고 물었고, 이를 들은 직원이 매우 당황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리고 나의 반박에 대한 증거자료는, 내가 실험실에 돌아가서 바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제 습관이 도움이 되었는데, 보통 미국에서는 미팅을 마치고 나면, 그 미팅에서 나눈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확인차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이것을 이전에 배워서 늘 실행하는데, C군과 이야기를 나눈 그날도 그 친구에게 이메일로 보낸 기록이 있었고, 그 날의 우리의 대화는 단순한 뉴스에 대한 것이었지, 차별과 비난의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확신했습니다. 기억은 흐려지지만, 기록은 남는다는 것을.
자, 이제 반격의 시간입니다. 사무국에서 돌아오니, 지도교수님이 바로 호출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나는 이차저차 내용을 이야기했고, 불같은 성격의 지도교수님은 바로 C를 호출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시면, 교수님도 신고되어 사무국에 출두해야 한다고 하니,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계신 듯했습니다. 교수님의 논리는, 만일 C군이 실험실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불편함을 느꼈다면, 사무국에 신고하기 전에, 실험실의 1차 책임자인 교수, 자신에게 알리는 것이 순서인데,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괘씸하다고 여기신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교수님의 화는 컸고, 제게 절대로 이에 대해 실험실에서 언급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도 이후 다시 사무국에 찾아가서 제가 소명한 사실들을 모두 확인했고, 사무국의 직원에게 나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내가 어떻게 C군에게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까를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자칫 잘못하면 보복으로 간주될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조언은, 절대로 C군과 말을 섞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자, 이제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 하는 실험실에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예기치 않는 오해와 시기, 질투가 생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실험실입니다. 그러니 가급적 실험실에서는 실험만 하시길 추천드립니다. 혹은 다양한 사람과 두루두루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라고 너무 쉽게 믿지 말고, 다양한 사람들과 그에 걸맞은 거리 조절을 실천하시길 권합니다. 사람을 완전히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해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계에는 여유를, 말에는 신중함을 더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