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공학연구소에서 연구하는 노성훈입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단백질의 구조를 통해 생명현상을 해석합니다. 초저온전자현미경(Cryo-EM)이라는 기술로 단백질의 고해상도 3차원 구조를 해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초저온전자현미경은 생체 시료를 초저온 상태로 얼린 다음 전자현미경으로 사진을 찍는 연구 방법인데요. 바이러스 같은 것을 축구공 크기만큼 확대해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크게 단백질 항상성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단백질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3차원 구조를 만들고, 쓸모를 다했을 때는 어떻게 제거되는지까지 전 과정을 연구합니다. 그중에서도 단백질이 형성되는 과정 중의 구조에 관심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단백질 구조 연구에서는 생성이 끝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많이 봅니다. 형성 중인 단백질은 생물물리학적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주제였는데, 저희는 초저온전자현미경을 이용해 한 발짝 나아가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중간 단계의 구조를 해석하려고 합니다.
단백질 중에서도 노화와 질병에 관련한 단백질이 형성될 때의 구조를 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이 완전히 3차원 구조를 띈 채로 병을 유발하면 그 단계에서는 이미 해결하기 어려워집니다. 장기적으로는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이 완전히 접히기 전에 단백질을 제어해 질병을 예방하고자 합니다.
단백질의 중간 과정을 연구하는 방법
단백질이 선형으로 생성되었다가 3차원 구조로 접히는 과정을 접힘(folding) 과정이라고 합니다. 단백질은 무작위적으로 접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에너지 단계를 지납니다. 이를 접힘중간체(folding intermediation)라 하는데, 접힘 중간체 단계에서 실제 단백질의 기능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단백질의 접힘 과정은 짧게는 수십 ms 수준으로 진행되는데, 그 순간 안에 단백질이 완전한 3차원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3차원 구조가 완성된 후에는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접히는 과정을 포착해야 되기 때문에 고난도의 실험이 필요합니다. 단백질을 정제한 후 단백질이 접힘 과정이 발생하게 생화학적으로 유도하고, 그다음에 과정 자체를 초저온전자현미경으로 찍습니다. 이벤트가 발생한 이미지를 분석해서 진행 중인 접힘 과정을 추출해야 합니다. 정제된 단백질을 모두 분석한 후 사진을 형태별로 구분해 순서를 다시 끼워 맞추는 작업입니다.
그림 1. 초저온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한 튜불린(tubulin) 단백질이 TRiC/CCT샤페론 안에서 접히는 과정
구조생물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
한국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후 6년 간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회사 일도 즐거웠지만, 스스로 돌아봤을 때 조금 더 맞는 일을 찾고 싶어 연구자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서 다양한 분야를 찾아보았습니다. 천천히 늦게 가다 보니 다양한 분야를 보고 선택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구조생물학은 복잡하고 어려운 생물학이 아닌, 단백질 자체의 기능에 직관적으로 집중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특히 분자를 고해상도에서 시각화하는 접근 방법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단백질의 기능을 알아내기 위해 3차원 구조를 찾는 것입니다. 단백질의 구조는 기능을 위해 진화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사람이 타는 좌석, 바퀴, 엔진 등의 자동차의 구조가 자동차라는 기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전공을 공부하려 온 유학길에서 우연히 초저온전자현미경을 연구하시는 와 추 (Wah Chiu) 교수님의 세미나를 들었습니다. 그분의 연구에 깊이 감명을 받아 연구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초저온전자현미경이야말로 구조생물학 분야에서 다음 세대로 나아가는 방법이 되리라 확신했습니다. 전자 현미경 자체는 오랫동안 사용해 온 기술입니다. 생물학적 시료는 물론 반도체의 구조를 볼 때도 사용됩니다. 그렇지만 생체 시료는 물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초저온전자현미경은 생체 시료를 초저온 상태로 유지하면서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두 가지가 결합된 접근 방법이었습니다. -180℃의 초저온에서는 물 분자가 완전히 동결되어 전혀 움직일 수 없어서, 생체 시료를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실을 완성하는 과정
서울대학교에 임용되었을 때, 학교에서도 초저온전자현미경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고가여도 꼭 구비해 주겠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셨나 봐요. 처음에 바로 장비를 사기는 어려웠습니다. 장비를 하나하나 모아서 장만했습니다. 본부에서도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셨어요.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좋은, 세계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실험실의 가장 큰 역량은 단백질 구조를 잘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백질 구조를 해석하기 위한 파이프라인을 완전히 구축했고, 이러한 파이프라인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연구실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ibs의 김빛내리 교수님과 마이크로 RNA를 생산하는 인간 다이서 단백질의 구조를 초고해상도로 해석해서 네이처에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림 2. 초저온전자현미경으로 밝혀낸 다이서 단백질의 구조
연구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
연구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연구란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는데, 제가 하는 연구는 항상 고통스럽고 치열했던 것 같습니다. 연구를 하면서 좋았던 기억보다는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훨씬 많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 중에 어떻게 한 번씩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큰 에너지가 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초저온전자현미경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하고 제가 첫 번째 사진을 찍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때가 미국에서는 11월 말 추수감사절이었는데, 아무도 전자현미경을 쓰지 않는 한밤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교수가 된 후에는 학생들이 연구하는 연구자 동료로서 느껴질 때 가장 기쁩니다. 학생들이 어떨 땐 미숙하고 애들 같은데, 어떨 때는 뛰어난 연구자로서 역량이 보입니다. 우리 연구실 학생들은 연구에 집중해서 중요한 결과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두가 양질의 데이터를 생산하며 중요한 연구를 원활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포스닥 연구원에게 모두 고맙습니다.
SUHF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제안서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너무 서두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SUHF가 신진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연구비이기 때문에 빨리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주변에서도 그런 압박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제에 선정되고 연구비를 받는 것을 떠나서, SUHF의 평가 시스템을 제대로 즐겨보려면 제대로 된 평가 계획서를 준비해야 합니다.
성숙하지 않은 아이디어,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을 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로 계획서나 제안서를 서둘러 내기보다는 시간을 들여서, 실험실도 세팅도 어느 정도 끝난 후 도전적인 과제를 만들어 평가를 받는 것이 시스템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후배 기수의 펠로 교수님들은 실제로 너무 잘하고 계시고,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는 SUHF의 네트워크나 서로에 대한 피어 프레셔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연구자들이 모여서 서로 네트워킹하면서, 압박감 자체를 즐기고 자기의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펠로 관계를 이루길 바랍니다.
졸업 소감과 앞으로의 각오
연구할 때 가장 큰 힘은 자기만족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이라 생각합니다. 연구는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선택한 일입니다. 즐기지는 못합니다. 연구는 일입니다. 일이니까 잘하고 싶습니다.
SUHF를 통해서 신진 연구자로서 치열하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신진연구자 연구지원 프로그램에 자체에 감사합니다. 두 번째로 지치지 않고 격려하며 나아가게 해 준 동료 SUHF Fellow께 감사합니다. 세 번째로 연구자를 높게 대우해 준 재단 사무국 분들도 고맙습니다. SUHF의 지원을 받은 5년 동안 저의 가치를 스스로 재평가했고, 주목받는 중견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SUHF의 핵심 가치는 새롭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라는 것인데, 그런 연구를 하는 데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앞으로가 걱정은 됩니다.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영원한 SUHF 펠로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며 영광스럽게 나아가겠습니다.
Gestaut, D., Zhao, Y., Park, J., Ma, B., Leitner, A., Collier, M., Pintilie, G., Roh, S. H., Chiu, W., & Frydman, J. (2022). Structural visualization of the tubulin folding pathway directed by human chaperonin TRiC/CCT. Cell, 185(25), 4770–4787.e20. Lee, YY., Lee, H., Kim, H. et al. Structure of the human DICER–pre-miRNA complex in a dicing state. Nature 615, 331–338 (2023). 기초과학연구원 보도자료, RNA 유전자 치료제 개발 새 가능성 열었다, 보도일 2023-02-23,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511/selectBoardArticle.do?nttId=22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