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 산하 슬론 케터링 연구소에서 조직 재생을 연구하는 이주현입니다. 우리 실험실은 폐에 존재하는 줄기세포가 주변 세포들과 함께 폐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손상 시 어떻게 재생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러한 재생 기작이 잘못 작동할 경우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세포의 관점에서 바라본 폐
폐는 생명과 직결되어 있으면서 매일 손상받는 기관입니다. 숨을 쉴 때마다 병원균과 오염물질이 공기와 혈액을 통해 직접 폐에 노출됩니다. 보호 작용이 있어야 하겠지요. 우리 연구실은 폐가 어떻게 손상되고, 손상된 세포가 어떻게 재생되어 대체되는지 폐의 보호작용이 켜지고 꺼지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폐는 구조적으로도 특이해서 기관(trachea)이라는 공기가 지나는 통로가 있고, 기관이 나뉘어 기관지(bronchus)와 세기관지(bronchiole)가 되고, 세기관지는 폐포(alveoli)를 형성합니다. 이처럼 통로가 연결되어 있는데도, 각 통로를 구성하는 세포의 종류는 모두 다르고, 이들을 만들어내는 줄기세포도 각각 따로 존재합니다. 폐의 위쪽 줄기세포와 아래쪽 줄기세포가 달라요. 다른 기관들이 하나의 줄기세포가 다양한 세포를 모두 만드는 반면, 폐는 각기 다른 줄기세포들이 각각의 장소에서 다양한 신호에 반응해 폐를 유지합니다.
놀랍게도 폐는 손상이 없을 때 세포의 교체 주기가 느려요. 전반적으로 세포가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가, 손상이 생기면 줄기세포가 빠르게 활성화되어 재생을 시작해요. 조용히 항상성을 유지하던 세포들이 손상이 생겼을 때 어떻게 활성화해서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는지 그 기작을 찾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폐를 포함한 다양한 기관에서 상피세포들이 가소성이 생긴다고 얘기합니다. 줄기세포가 아닌 세포가 가소성을 얻어서 줄기세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세포가 어떻게 가소성을 얻어 줄기세포 역할을 하는지 활발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경배과학재단에 제안한 연구 주제가 바로 폐 세포의 가소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손상받지 않고 조용히 있던 세포가 손상 이후 어떻게 활성화되어 재생을 유도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러다 이 과정에서 주변 세포들, 특히나 면역세포가 세포의 활성화와 상태 전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활성화한 세포들은 하나의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세포 상태를 거쳐 재생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세포의 상태를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따라서 성공적인 재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비정상적인 회복을 통해 질병으로 전환되기도 한다는 단서를 얻었습니다.
최근에는 단일 세포 기술과 공간전사체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을 활용해 폐 세포의 상태가 시공간적으로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폐 조직 내에서 줄기세포와 이들을 둘러싼 미세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질병의 경과를 결정짓는지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폐 섬유화증의 초기 병인과 진행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이 질환은 현재까지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환자 간 표현형도 달라서 치료 타겟을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만성 염증을 조절하거나 섬유아세포를 억제하는 접근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폐 상피세포의 재생 실패가 섬유화증의 시작점일 수 있다는 인석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재생 실패가 어떻게 유도되고, 이 과정에서 줄기세포와 면역세포 등 주변 세포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세포 상태 조절의 실패와 미세환경 변화가 폐암의 초기 발생 기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상적인 재생 경로에서 벗어난 세포들이 가역적인 상태 전이를 반복하며 결국 종양화되는 과정을 최근 관찰하였고, 재생과 병의 경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폐암의 조기 진단 및 예방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림 1. 실험실에서 관찰한 폐포의 재생 과정
어떻게 폐 줄기세포 연구를 하게 되었나요?
줄기세포 연구를 하게 된 건 우연이예요. 박사 과정 때 처음 맡은 프로젝트가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는 유전자의 결합 파트너를 찾는 일이었어요. 결합 파트너 중에 하나가 줄기세포를 조절하는 단백질이었고요. 그렇게 줄기세포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졸업하면서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하고 싶고, 특히 질병과 연관된 줄기세포의 역할에 관심이 많아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떤 조직의 줄기세포를 연구할지 고민하던 중, 주요 기관이지만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이루어진 분야를 찾게 되었고, 그렇게 폐 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버드대에서 폐줄기세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질환을 제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병든 상태만이 아니라 폐의 항상성이 평소에 어떻게 유지되는지, 그리고 손상 후 어떤 재생 기작이 작동하는지를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 연구 방향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생물학은 인간의 세포로
연구실을 시작할 즈음 인간 생물학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어요. 과거에는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연구하기 위해 동물 모델을 많이 사용했는데, 단일 세포 수준에서의 인간 데이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동물 모델과 실제 인간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연구하는 폐는 구조적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고, 세포 종류도 다양합니다. 인간과 생쥐 모두 유사한 세포를 갖고 있지만, 세포의 위치나 분포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줄기 세포라도 기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느끼며 인간 조직 기반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그 결과 폐 줄기세포 유래 오가노이드를 개발하고 연구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오가노이드는 장기에서 유래한 줄기세포를 3차원 환경에서 배양해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모사하는 ‘미니장기’ 모델입니다. 하나의 줄기세포로부터 다양한 상피세포가 자가 조직화되며, 실제 인간 폐 조직의 복잡성을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연구 도구로 떠오르고 있어요. 시 시스템을 활용하면 인간 특이적 세포 기증과 질환 기전을 더 정밀하게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림 2. 폐 오가노이드
오가노이드로 재현하는 인간의 폐
우리 실험실은 의료기관 내에 위치해 있어 환자 샘플을 받기 좋아요. 다양한 폐 질환 환자의 조직 샘플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하고 배양하여, 인간의 폐의 구조와 기능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특히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환자 폐에서 발생한 손상이나 질병 상태를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폐암이나 섬유화증(fibrosis) 환자의 조직으로 만든 오가노이드를 분석해 보면, 실제 환자 샘플에서 관찰되는 상피세포의 표현형이 많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생쥐의 폐에 손상을 주고 줄기세포에 표지를 달아 세포의 분화를 추적하는 lineage tracing 연구를 수행했고, 해당 줄기세포를 분리하여 오가노이드로 배양한 결과와 비교했을 때, 생체 내와 실험실 환경에서 유사한 세포 변화 양상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통해 생체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실험실에서도 어느 정도 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물론 현재의 오가노이드는 상피세포로만 이루어진 구조이기 때문에, 생체의 모든 면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폐는 주변 세포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거든요. 면역 세포의 활성화 기작도 중요하고 주변에 있는 섬유아세포나 다른 상피세포와의 상호 조절 작용에 의해서도 폐가 유지됩니다. 이 따라 우리 연구실을 포함한 여러 연구팀이 다양한 세포를 함께 배양해 더 복잡한 조직 구조를 구현하는 오가노이드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림 3. 오가노이드 형성 과정
연구하는 삶의 궤적
흔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사 과정까지 한국에서 마친 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미국 보스턴에서 포스닥 연구를 했고, 그 이후에는 연고도 없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독립 실험실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뉴욕 슬론 케터링 연구소에 오게 되었죠.
남들과 조금은 다른 커리어 경로를 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저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요. 새로움에서 오는 설렘이 두려움보다는 훨씬 컸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다른 나라로 옮기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닙니다.
보스턴에서 폐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하면서 점점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 졌고, 포스닥을 마친 후 제 연구실을 시작하려고 하니까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요. 줄기세포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유럽에서 가장 큰 줄기세포 연구소인 케임브리지에 가야겠다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 줄기세포 연구소는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28개 팀이 있고, 발생 줄기세포부터 성체 줄기세포, 재생의학까지 매우 다양한 맥락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소장이셨던 오스틴 스미스 교수님은 40년 가까이 ‘다능성 (pluripotency)’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를 이끌어온 분으로, 그분의 연구 여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깊이 있는 학문적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 또한 저에게는 중요한 동기였습니다. 지금은 제 과학적 멘토이자, 제 연구 여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임브리지에서 7년 반 정도 있으며, 연구자로서의 기반을 잘 다질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깊이 있게 탐구하는 방식을 배웠고, 이는 제 연구 철학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얻은 지식을 세상에 적용해보고 싶고, 한 단계 더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또한 빠르게 발전하는 첨단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는 병원과 연구소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인간 조직 샘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시작한 SUHF 프로젝트를 더 실제적인 환경에서 확장하고, 동시에 제 연구 커리어에도 도전하고자, 어쩌면 조금은 무모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단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SUHF가 저를 최대한 지원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제가 가진 연구의 방향성과 목표를 놓지 않고, 더 넓은 무대에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연구실 이모저모
처음 연구실을 시작했을 때는 운영하는 게 어려웠어요. PI 가 처음이잖아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능숙해질 줄 알았는데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은 늘 새롭고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서로 다른 성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각기 다른 레벨에서 소통하고 같이 일해 나가는 경험은 PI가 되어 처음 마주한 도전이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랩원의 성향과 원하는 진로, 프로젝트의 특성과 속도에 따라 실험실 운영 방식도 유연하게 바뀌었어요. 매주 미팅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연구방향을 의논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에도 관심 있는 연구 주제가 같기에 우리는 하나의 팀으로 일하고 있어요. 우리 연구실은 줄기세포를 중심으로 폐 재생과 질병을 연구하기에, 실험실의 박사과정 학생도 포스닥도 모두 같은 과학적 질문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죠.
가끔은 제가 저 나이 때는 저렇게 못했던 것 같은데, 랩 친구들이 해내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고 멋있어요. 이 친구들이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났을 때는 얼마나 저보다 뛰어난 연구자가 되어 있겠어요. 너무 기대돼요.
SUHF에 지원하는 후배들에게
저는 항상 주변 한국인 연구자들에게 SUHF에 꼭 도전해 보라고 권합니다. 자격 요건만 되면 주저하지 말고 시도하라고 하고, 제안서를 보내오면 직접 피드백도 해주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뻔하지 않은 최고의 제안서를 쓰라는 것입니다.
가끔은 이미 데이터가 충분하고, 다른 연구비도 있는 분들이 이왕이면 이것도 받아보자는 식으로 SUHF에 제안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면 꼭 말씀드립니다. SUHF는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 기회를 위해 준비된 최고의 아이디어, 가장 하고 싶은 연구를 제안해야 합니다. SUHF 가 정말 기꺼이 지원하고 싶어질 만큼, 연구자가 가진 비전과 열정을 담은 제안서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제안이 채택된다면, 그것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요.
연구자가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다음은 SUHF 가 돕습니다. 훌륭한 동료와 선배들이 함께하는 이 프로그램은 단 한 번만 누릴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SUHF라는 배 위에서 함께 항해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충분히 즐기되, 동시에 ‘왕관의 무게’도 견딜 각오가 필요하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졸업 소감과 앞으로의 각오
저는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데에 희열을 얻는 사람입니다. 새벽에 눈이 오고 아무도 걷지 않은 곳에 발자국을 내는 특별한 쾌감이 있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연구가 그런 연구인 것 같아요. 남이 가지 않은 곳에 발자국을 내는 연구를 하고 싶어요. 제 삶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익숙한 길이 아닌, 낯설지만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해 온 여정이었습니다.
박사 과정 때는 연구실의 첫 번째 박사 과정 학생으로, 포스닥을 시작할 때도 막 시작하는 연구실의 초창기 멤버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케임브리지를 거쳐 지금은 슬론 케터링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그 시도를 동력으로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삶과 연구는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길을 만들어가는 것.
지치지 않고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연구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일이고, 실패할 때마다 지치면 앞으로 갈 동력을 잃게 되거든요.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흥미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혼자 가는 게 아니라 내 팀이 같이 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늘 함께 가는 내 연구팀이 있어서, 함께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SUHF에 선정되던 2020년은 실험실도 연구 재단도 코로나19의 그늘 아래 있었습니다. 격동의 시기에 SUHF의 지원을 받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미국으로 연구기관을 옮기는 복잡한 절차까지도 기꺼이 수용해 주신 SUHF의 유연함과 신뢰에 지금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옮기고 나니 갑자기 이곳의 연구비 시스템도 불안정해졌는데, 여전히 SUHF는 저에게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SUHF 덕분에 저는 제안했던 것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예상보다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졸업한 후에도 저는 계속 SUHF 펠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