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출신이 창업을 하면, 근거로 삼거나 혹은 외부 투자자들이 기술이라 믿고 투자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킥이 있다. 바로, 논문이다. 논문은 연구자에게 있어 성과의 증거이자, 커리어를 쌓는 수단이며, 학계에서 인정받는 언어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 출신 창업자들은 회사를 차리는 계기로 자신의 우수한 논문을 기반으로 할 때도 많고, 투자자들 역시 고도화된 기술을 파악할 땐 논문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간혹 많은 사람들은 논문이 있으니, 회사의 기술 독점도가 높다고 판단하곤 한다. 반대로 특허가 많은 회사 역시 기술력이 좋다고 판단한다. 또 어디서는 특허는 많은데 왜 논문이 없냐는 말도 하곤 한다. 시간과 자본이 제한되는 스타트업 대표는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
사실 논문과 특허는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논문은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쓴다. 내가 발견한 것, 내가 증명한 것을 세상에 알리고, 학문적 논의의 장에 올려놓는 행위다. 반면 특허는 반대다. 내가 발명한 것을 공개하되, 그 사용 권리를 독점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식의 공유가 아니라, 지식의 소유에 가깝다.
이 둘의 차이는 스타트업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논문은 발표하는 순간, 그 기술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특허 출원 없이 논문을 먼저 내버리면, 정작 그 기술을 가장 열심히 개발한 창업자가 자기 기술을 사용하는 데 있어 타인과 똑같은 권리를 갖게 된다. 기술을 개발하고도 기술을 소유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공동연구를 기관과 하는 경우, 먼저 특허와 논문 및 학회 발표 시기를 처음부터 조율하고 시작하고 있다. 만약 학교에서 선제적으로 논문을 내버리는 경우, 같이 일을 한 기업은 특허를 출원하지 못하는 참사도 발생할 수 있기에, 사전조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율이 필요한 이유는 특허의 선출원주의 때문이다. 특허의 권리는 누가 먼저 출원했느냐가 기준이 된다. 가장 먼저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먼저 출원한 사람이 권리를 갖는 구조다. 그러니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특허 출원 타이밍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허는 왜 자산인가?
창업 초기에는 특허를 단순히 '기술을 지키는 방패'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투자자를 만나고, 정부 지원 사업을 수행하면서 특허가 단순한 방패가 아니라 실질적인 자산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투자자들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평가할 때, 특허 포트폴리오를 중요하게 본다. 특허가 있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이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 기술이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것, 경쟁자가 동일한 기술로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향후 라이선스 수익이나 기술 이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즉, 특허는 기업의 기술력을 수치화하고 시장에서 검증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나아가 특허는 금융 자산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IP 담보 대출이라는 것이 있다. 특허권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는 방식인데, 부동산이나 설비 같은 유형 자산이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에게는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재무제표상 핵심 무형자산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부채비율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부 지원 사업에서도 특허는 중요한 평가 지표다. 많은 R&D 지원 사업의 선정 기준에는 보유 특허 수, 특허의 품질, 특허 포트폴리오의 구성이 포함되어 있다. 논문이 학계에서의 신뢰도라면, 특허는 시장에서의 신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소홀히 하면 생기는 일
특허를 소홀히 했을 때의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기술을 스스로 공개해 버려 권리를 잃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남의 특허를 침해하는 것이다.
창업 초기에는 일단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내놓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특허 조사에 소홀해지기 쉽다. 그런데 이미 시장에 제품이 나온 이후에 특허 침해 경고장을 받게 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제품 리콜, 손해배상, 심한 경우에는 사업 중단까지 이어질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에게 이런 상황은 치명적일 수 있다. 실제로 국내외에서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이 특허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우리도 제품을 출시하기 전, 특허 선행조사를 반드시 수행한다.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이 과정을 생략하고 분쟁에 휘말리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다. 특허 출원보다 특허 조사가 먼저라는 것, 이것도 연구 분야와 마찬가지로 선행연구 조사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논문과 특허,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스타트업이 논문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논문은 여전히 의미 있다. 기술의 신뢰도를 높이고, 학계 및 산업계에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특히 바이오나 소재처럼 기술의 신뢰 검증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논문이 고객과 파트너를 설득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순서다. 특허 출원을 먼저 하고 논문을 쓰는 것, 이 순서만 지킨다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우리 회사도 특허 출원을 먼저 진행한 이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논문이나 혹은 학술발표를 진행하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무엇을 특허로 보호할지, 무엇을 논문으로 게재할지 기준이 명확해야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늘 자원이 부족하다. 특허 출원 비용도, 논문 게재료 역시 무턱대고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특허와 논문을 활용해야 한다. 특히 핵심 기술에는 국내 특허뿐 아니라 주요 해외 시장을 겨냥한 PCT 출원도 검토해야 하고, 기술의 파생 범위를 고려한 분할 출원도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은 전문 특허법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낫지만, 대표자 스스로도 특허의 구조와 전략을 이해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게 특허는 선택이 아니다. 기술이 회사의 핵심이라면, 그 기술을 보호하고 자산화하는 것은 경영의 기본이다. 논문으로 쌓은 명성은 지식의 공유에서 오지만, 회사의 생존과 성장은 지식의 소유에서 온다. 연구자로서의 습관과 창업자로서의 전략 사이의 균형, 그것이 연구개발 스타트업 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