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0번째 글이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경력단절 과학자의 재취업 이야기(2014), 남편의 미국 포닥(2019), 온 가족의 미국 이사(2021), 낯선 땅에서의 정착, 그리고 어느새 고등학교(2025, 2026)에 들어간 아이들까지. 돌아보면 우리 가족에게 지난 시간은 정말 쉼 없이 이어진 변화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극한직업 엄마과학자’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내 삶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표현이었다. 과학자로 다시 서고 싶었던 나, 엄마로서 아이들을 지켜야 했던 나, 낯선 미국 생활 속에서 매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나. 그 모든 시간이 이 글들 안에 조금씩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기록해두고 싶어서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느새 100번째 글이 되었다. 숫자로 보면 단순히 100개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 가족이 지나온 시간과 마음, 고민과 선택, 그리고 작은 성장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을 정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을 먼저 꺼내야 할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마무리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지나온 시간은 분명 내 삶의 일부였지만, 막상 글로 다시 꺼내려니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이 생각보다 컸다.
6월 30일이면 미국살이가 5년째 되는 날이다. 돌아보면 미국살이든, 타국살이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신체적, 정신적),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뭘 해 먹나), 아이들 학교에 적응하는 것(초, 중, 고, 대), 남편과 나의 일을 이어가는 것(직업), 낯선 관공서와 행정 절차를 하나씩 통과하는 것(신분, 차등록, 세금신고, 집구매 등등), 그리고 그 와중에도 가족과 함께 여행하며 이 땅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50개 주 여행). 이 모든 것이 지난 5년 동안 우리 가족 미국살이의 큰 줄기였다. 이것의 일환으로 오늘도 몇 가지 공유해 보고자 한다.
1) 미국에서 처음 전문의 방문 후기
미국살이가 어느덧 거의 5년 가까이 되어간다. 우리는 처음으로 스페셜닥터를 만나러 갔다. 큰아이가 농구를 하다가 작은 농구화를 신어서 그랬는지, 엄지발톱이 심하게 상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다시 농구 트레이닝을 시작하려 하니 통증이 생겼다. 결국 우리는 닥터를 만나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비교적 일괄적인 방식으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미국은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보험도 정말 가지각색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험은 CareFirst라는 PPO 타입의 보험이다. 보험카드 앞면에 “S20”이라고 적혀 있다면, 스페셜닥터를 만날 때 코페이로 20불을 내면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처음에는 이런 용어와 숫자들이 참 낯설었지만, 하나씩 경험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번 일의 원인은 농구화를 너무 작게 신고 운동을 해서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새 발톱이 자라고 있었고, 뒤쪽에 검게 변한 부분은 닥터가 잘라주었다. 그래도 다시 예쁜 발톱으로 돌아오려면 6개월 이상은 걸릴 것 같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며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낯선 순간들을 하나씩 통과해가는 일인 것 같다. 병원 예약도, 전문의 진료도, 보험 용어도,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 말들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망설일 수 없다. 오늘도 그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2) 부동산 용어 (나의 첫 리파이낸스 and HELOC(마이너스 통장처럼))
이미지 출처: 챗GPT 생성우리는 모기지를 시작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6.75%의 높은 이자율에서 5.5%의 낮은 이자율로 갈아탈 기회가 생겼다. 4월에 한국에 가야 해서 그전에 꼭 정리해 두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결심하고 진행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뒤로 금리는 계속 올랐다.
모기지 리파이낸스를 한다는 것은 기존에 빌려서 남아 있던 대출금을 모두 갚고,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조건으로 대출을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몇 가지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처음 대출을 받을 때처럼 여러 서류를 다시 준비해야 하고, 집에 대한 감정도 다시 받아야 한다(580불 정도 들었다.). 다행히 우리 집 감정가는 조금 올라 있었다. 또한 타이틀 관련 비용도 다시 발생한다. 예를 들면 title binder, CPL, lender’s title insurance, title search, settlement closing fee 같은 비용들이다. 처음에는 왜 이런 비용이 또 드는지 아깝게 느껴졌지만, 리파이낸스도 결국 새로운 대출을 다시 받는 과정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클로징 비용에는 실제 payoff가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이자가 여유 있게 포함된다. 그래서 실제 payoff가 이루어진 날을 기준으로 정확히 다시 계산한 뒤, 남는 금액이 있으면 집으로 체크가 날아온다. 우리도 약 한 달 정도 뒤에 그 체크를 받은 것 같다.
리파이낸스는 낮은 이자율로 갈아타거나, 매달 내는 모기지 금액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 이용된다. 반면 리캐스트(recast)는 목돈을 일부 상환했을 때 기존 모기지 회사에 일정 수수료를 내고, 매달 내는 모기지 금액을 다시 계산하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 모기지 회사의 경우 리캐스트 수수료가 300불이라고 했고, 대출 기간 중 딱 한 번만 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리파이낸스와 리캐스트는 목적이 조금 다르다. 이자율을 낮추고 싶다면 리파이낸스가 맞고, 기존 대출 조건은 그대로 두면서 월 납입금만 줄이고 싶다면 리캐스트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상황과 목적에 따라 잘 활용하면 꽤 좋은 방법인 것 같다.
HELOC은 Home Equity Line of Credit의 줄임말이다. 한국말로 하면 주택 담보 신용한도 대출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마이너스 통장처럼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쉽게 말하면, 내 집에 쌓인 에퀴티(equity 에꼬리라고 읽는다.ㅋㅋ), 즉 집값에서 아직 남아 있는 모기지 빚을 뺀 내 지분을 담보로 해서, 은행이 일정 한도까지 돈을 빌릴 수 있게 열어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집값이 50만 불이고 남은 모기지가 30만 불이면, 집에 쌓인 에퀴티는 약 20만 불이다. 은행은 그중 일부를 기준으로 “최대 얼마까지 빌릴 수 있다”는 한도를 정해준다. HELOC은 일반 대출처럼 한 번에 돈을 다 받는 방식이 아니라, 신용카드 한도처럼 필요할 때 꺼내 쓰고, 쓴 만큼만 이자를 내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집수리, 학비, 갑작스러운 큰 비용이 필요할 때 유용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다만 조심할 점은, HELOC도 결국 집을 담보로 한 대출이라는 것이다. 갚지 못하면 집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보통 변동금리라서 이자율이 올라가면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우리가 이용한 은행에서는 마지막 단계에서 집보험에 은행 이름을 1순위로 올려달라는 다소 무리한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미 실제로 대출을 해준 모기지 회사가 1순위로 등록되어 있었고, 그것이 맞는 절차처럼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그 요청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3) 미국에서 인터넷 요금 깎아보기
이미지 출처: 챗GPT 생성2년 전 이사하면서 Xfinity 인터넷을 월 30불에 계약했는데, 2년이 지나자 요금이 50불로 올랐다. 속도가 300 Mbps에서 400 Mbps로 조금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한 달에 20불이나 오르니 아쉬웠다. 마침 Verizon에서 5년간 가격을 고정해 주는 프로모션 안내문이 왔다. 설치비는 99불이었지만 아마존 기프트카드 100불을 준다고 했고, 월 이용료도 약 35불이라 조건이 괜찮았다. 한참 고민하다가 먼저 기존 회사에 할인 혜택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부탁했지만 바쁘다며 거절해 결국 내가 직접 나섰다. 홈페이지 채팅은 같은 답만 반복해 답답했고, 결국 콜백 서비스를 신청했다. 약속한 시간에 전화가 왔고, 나는 요금이 오른 데다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을 받았다며 할인 가능한지 물었다. 상담원은 내 이름이 예쁘다며 말을 건넸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BTS와 제주도, 서울, 부산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이집트에 산다고 했다. 미국 인터넷 회사와 통화하면서 이집트의 상담원과 한국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참 신기했다. 결국 기존 서비스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1년 동안 월 40불에 이용하기로 했다. 모뎀 전원을 껐다 켜는 과정에서 잠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불안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으로 돌아왔다.
100번째 글을 쓰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결국 미국살이는 특별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기보다 하루하루를 살아 내며 배워 가는 과정이었다. 병원에 가는 일도,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챙기는 일도, 집을 사고 대출을 다시 정리하는 일도 처음에는 모두 낯설고 어려웠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하나씩 지나오며 우리는 조금씩 이곳의 삶에 익숙해졌고, 우리 가족만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타국 생활의 적응이란 매일, 매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슬기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앞으로도 새롭게 배워야 할 일들이 계속 생길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동안 그래 왔듯이 묻고, 찾아보고, 직접 부딪치며 하나씩 지나가면 된다. ‘극한직업 엄마과학자’라는 이름으로 남긴 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정보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미국 메릴랜드 엘리콧시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