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된 지도 세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랑곳 않고 흐르는 시간은 또 언제 이렇게 잔뜩 쌓인 건가 싶고요.
말 그대로 시간이 날아갑니다.
출처: Unsplash free image (Nick Fewings)가만히 나이를 먹다 보면 언젠가 '나의 부모가 나를 낳은 나이'가 되어 버리곤 합니다.
나는 아직 내 앞길을 살펴나가기도 버거운데, 어떻게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는 어린 나까지 키워내신 것일까요?
결혼이나 출산 같은 것은 먼~ 우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꼭 내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는 때가 되면 궁금한 것도 많아집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임신을 하면 어떤 것이 바뀌고, 출산 후에는 또 뭐가 바뀌게 될지.
경험하기 전에 마냥 무섭고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아는 게 없어서' 일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큼, 왜 조심해야 하는지 너무 찬 아이스크림도 어쩐지 위험해 보이고, 고기는 많이 먹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싱겁도록 평범한 일상의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걱정되지요.
일하는 임산부와 태아에 대한 연구와 법률은 참 다양한데요.
오늘은 연구자로 일하는 임산부와 태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연구 논문 결과들을 토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출처: Unsplash free image (Germs)
# 근데요...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임산부 연구자가 특히 주의해야 할 실험실의 위험 요인들을 살펴보기 이전에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위험요인을 안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임신을 했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교수님이나 동료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임산부'와 '임산부인 근로자'를 어떻게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는지 먼저 알아볼까요?
먼저 참고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법령은 주요하게 아래와 같습니다.
- 모자보건법 [시행 2025. 1. 24.] [법률 제20094호, 2024. 1. 23., 일부개정]
-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
먼저,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임산부”란 임신 중이거나 분만 후 6개월 미만인 여성을 말합니다.
임신을 진단받은 이후부터 분만 후 6개월 까지도 임산부에 속한다는 것이지요.
“모성”이란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을 모두 뜻하며, “영유아”란 출생 후 6년 미만인 사람을 말합니다.
그중 “신생아”란 출생 후 28일 이내의 영유아를 말합니다.
또한, “난임” 이란 부부(사실상의 혼인관계도 포함)가 피임을 안 한 상태에서 부부간 정상적 성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임신과 관련한 단어 정의를 살펴보았으니, 임산부인 근로자가 어떤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도 살펴볼까요?
출처: Unsplash free image (Brian Wangenheim)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에 의하면, “출산휴가” 제1호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출산 전과 후를 통하여 90일
(미숙아의 경우 100일, 다태아의 경우 12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주어야 합니다.
이 경우, 휴가 기간의 배정은 출산 후 가 45일(다태아의 경우 60일) 이상 이어야 합니다. (제2항)
이는 “유산”을 경험하신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제3항)
이때, 휴가는 무급 휴가일까요?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휴가 중 최초 60일(다태아의 경우 75일)은 반드시 “유급”휴가로 지원되어야 합니다.
(다만, 출산전후휴가급여 등이 지급된 경우에는 그 금액의 한도에서 지급의 책임을 면합니다.)
또, 중요하게 살펴보실 것은 제5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 근로자에게 “시간외근로”를 하게 할 수 없으며,
그 근로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쉬운 종류의 근로로 전환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6항에서 사업주는 출산전후 휴가 종료 후에 휴가 전과 동일한 업무 또는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만 합니다.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2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는(고용노동부령으로 유산, 조산 등 위험이 있는 여성 근로자의 경우 임신 전 기간)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이를 허용하여야 하고, 1일 소정근로시간을 유지하며 업무의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의 변경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만 합니다.
제74조의 2에 따르면 임산부 정기건강진단을 받는데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
사용자는 이를 허용하여야 하며, 제75조에 의하면 생후 1년 미만의 유아를 가진 여성 근로자는 1일 2회 각 30분 이상의 유급 수유 시간이 주어져야 합니다.
설령 막상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이를 모두 보호받지 못하더라도...!
임신과 관련된 단어의 법률상 정의, 내가 임산부가 된다면, 임산부 근로자가 된다면 어떤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는 잘 알아두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 임산부 연구자를 위한 실험실 생활
다음으로는 조금 더 구체적인 것 들을 알아볼까요?
임신을 하게 되면, 내가 계속 연구실에서 일해도 될는지, 임산부로서 나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는 어떤 것을 조금 더 주의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화학물질 속의 나!
출처: Unsplash free image (National Cancer Institute)
1. 당연히 화학물질 노출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 화학물질 노출이지요.
유기용매, 중금속 등 사용 시 에는 노출을 줄이거나, 차단하는 방법이 좋겠습니다.
화학물질은 일반적으로 흡입(Inhalation), 피부접촉(Dermal contact), 섭취(Ingestion)로 이루어집니다.
1) 휘발성 화학 물질 사용 시 흡입은 가장 흔한 노출 방법입니다.
휘발성 및 독성 화학물질 사용 시에는 반드시 모든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후드에서 열고, 닫고, 사용하기까지 마무리하세요.
2) 화학물질을 다루는 동안 피부에 직접 닿는 경우도 흔하지요.
반드시 장갑을 끼고, 되도록이면 가운을 입어 최대한 많은 피부를 보호하세요.
3) 우리가 화학물질을 직접적으로 섭취할 일은 절대 없겠지만,
실험실 내 방치된 커피나, 손을 씻지 않은 채로 혹은 장갑채로 먹는 음식을 통해 화학물질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실험실 내에서 음식 섭취가 금지되어있지만, 실험실과 연구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경우, 꼭 그렇지 않더라도 간단한 음료와 물 정도는 무심코 섭취하게 되지요.
되도록이면 실험실 내 음식 섭취를 줄이고, 실험실 내의 오염을 식사 공간이나 외부로 가져오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2. 그중에서도 내분비계 교란물질
특히,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ing Chemicals, EDCs)은 임산부 연구자에게 큰 위험이 될 수 있음이 많이 연구되어 온 분야입니다.
EDCs는 호르몬 신호 전달을 방해하여 발달 과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며, 특히 태아의 생식기관이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물질은 되도록 노출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1) Bisphenol A (BPA)
BPA는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Polycarbonate, PC)의 주요 성분으로, 투명하고 내구성이 강해 샘플 보관 용기나, 페트리 접시, 시험관 등에 흔하게 사용됩니다.
일부 저품질의 플라스틱 파이펫 팁이나 BPA가 포함된 용기를 고온살균 할 때 BPA가 용출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또한,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기기 중 일부 부품에 폴리카보네이트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웨어를 많이 사용하는 연구실에서 BPA 노출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지요.
BPA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리나 실리콘 같은 BPA-free 실험 도구를 사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꼭 임산부가 아니어도 BPA-free 실험 도구를 사용해나가시는 것이 모든 연구자의 건강에 좋겠지요.
출처: Unsplash free imgae (National Cancer Institute)
2) DDT, 파라티온, 말라티온 등 독성 물질
독성학이나 환경과학, 농업과학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농약이나 독성 물질도 다루 실 텐데요.
이 또한, 흡입, 피부접촉, 섭취 등을 최소화하고, 철저한 개인 보호 장비를 착용하셔야 합니다.
중금속인 납, 수은, 카드뮴, 비소, 크롬 등을 사용하시는 연구실에 계신다면 더욱 노출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독성물질을 처리하는 작업을 꼭 하셔야 한다면, 그 작업 공간에서만 입는 가운과 일회용 개인보호장비를 꼭 사용하세요.
3. 방사선 노출은 몸에 좋을 것이 없습니다.
“방사선 노출 기준” 미국 원자력 규제 위원회는
임신 중인 근로자는 월 0.5mSv를 초과하여 5mSv 이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국제 방사선 방호 위원회(The International Commission of Radiological Protection)에서는 임신 중 노출이 1mSv를 초과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열 램프, 자외선 가시광선, 푸리에 변환 적외선,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과 같은 분광장비를 사용하는 연구실이라면 적어도 출산 준비 혹은 임신기간 동안 노출을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4. 가장 흔하지만, 가장 피하기 어려운 -
임신 중 경험하는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는 발달 중인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조산이나 저체중 출산, 유산 등의 부정적 출산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조산, 저체중 출산 위험 증가와의 연관성은 그동안 많이 보고 되었으나, 자연 유산의 위험 증가에 대한 일관된 연구 결과는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임신 초중기(약 16주)에 만성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 보다 중후기(약 30주)에 만성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이 조산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외에도,
무거운 물건을 자주 들어 올리거나, 장시간 서있는 것은 임신 후기에 조기 자궁 수축이나 조산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음이 보고된 바 있고,
법률에도 명시된 것과 같이 연구자의 야간 근무는 임산부의 생체 리듬을 방해하여 자연 유산 등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대한 신체적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특히 임신 중기-후기에는 충분한 휴식 혹은 출산 휴가 사용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 자체만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연구자로서 학업이나 업무를 병행하며 임산부가 되는 것,
10달 동안 아이를 품고, 출산하고, 아이를 돌보기까지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다들 어떻게 하시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수많은 선배 엄마 연구자 분들을 스승 삼아, 그들의 경험과 노력을 교과서 삼아 차근차근 준비하고,
나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실험실 내 건강 위협 요소를 잘 살피고 대처한다면-
그리고,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이해와 따스한 배려가 함께한다면 분명 잘 해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요.
자녀 출산 계획이 없는 여성과 모든 남성분들도 임산부는, 임산부인 근로자는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노력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자녀 출산 계획이 있으며 앞으로도 연구를 계속해나가고 싶은 연구자 분들께
본 연재와 참고한 자료들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연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
과학으로 소통소통 과학통통
- 소통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댓글, 이메일, 메시지, 전화, 자필편지, 자택 방문)
- chrissie0215@gmail.com
References
Lane, M. K. M., Garedew, M., Deary, E. C., Coleman, C. N., Ahrens-Víquez, M. M., Erythropel, H. C., Zimmerman, J. B., & Anastas, P. T. (2022). What to Expect When Expecting in Lab: A Review of Unique Risks and Resources for Pregnant Researchers in the Chemical Laboratory. Chemical Research in Toxicology, 35(2), 163-198. https://doi.org/10.1021/acs.chemrestox.1c00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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