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틀.신.반: 영화라는 틀과 신경과학이라는 반죽
연재
[영틀신반] Episode #66 - Sound of Metal... 소리를 잃은 뒤, 뇌는 어떻게 다시 듣는가
Episode #66
“Sound of Metal” - 소리를 잃은 뒤, 뇌는 어떻게 다시 듣는가
출처: https://https://www.imdb.com/title/tt5363618//
― 〈Sound of Metal〉로 바라본 청각 상실과 뇌의 재학습
〈Sound of Metal〉은 주인공이 청력을 잃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한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던 감각의 지도를 잃고 나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다시 배워 가는 이야기에 가깝다. 주인공 루벤은 메탈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한다. 그의 삶은 온통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드럼의 진동, 기타의 거친 음색, 무대 위를 가득 채우는 폭발적인 에너지, 그리고 동료 연주자들과 나누는 리듬. 루벤에게 소리는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그의 직업이자 인간관계, 그리고 정체성 그 자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말소리는 이해할 수 없는 낮은 울림으로 바뀌며, 익숙했던 환경조차 불안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영화는 이 충격적인 순간을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운드 디자인을 활용해 관객이 직접 루벤의 혼란스러운 청각 세계를 체험하게 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물음이 떠오른다.
‘청력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뇌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전체가 흔들리는 걸까?’
보통 우리는 ‘듣는다’는 일을 귀의 역할로만 생각한다. 그런데 소리는 실제로 귀를 넘어서야 온전히 완성된다. 바깥에서 오는 진동이 달팽이관에서 전기 신호로 바뀌고, 그 신호가 청각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 뇌 여러 영역의 분석 및 처리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소리’로 인식된다. 즉, 듣기는 정보가 귀에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해, 뇌가 그 정보를 ‘의미’로 바꾸어 내는 과정까지 아우른다.
이렇듯 청각 상실은 단순히 감각 입력을 막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뇌가 세상을 그리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Sound of Metal〉에서 루벤이 느낀 혼란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는 단순히 소리만을 잃은 게 아니다.
자신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후의 여정은 잃어버린 소리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 루벤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각 상실이 뇌에 어떤 변화를 불러오는지, 인공와우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청각 정보를 전달하는지, 그리고 뇌가 완전히 새로운 감각 입력을 어떻게 다시 배우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다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인공와우는 ‘정상 청각’을 단순히 복원해 주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손상된 청각 경로를 우회해 전기 신호를 뇌에 전달하는 신경 보철이고, 그 효과와 경험은 사람마다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연출을 모두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 연구 논문에서 나타난 결과를 바탕으로, 청각 상실과 인공와우, 그리고 뇌의 적응 과정을 차분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 소리를 되찾으려는 욕망
청력을 잃은 루벤이 처음으로 집착하게 된 건 ‘다시 듣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에게 소리는 단순한 감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드러머라는 직업, 음악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연인과 함께 쌓아온 삶의 방식까지 모두 소리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청력을 잃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귀의 기능을 상실한 사건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영화 속에서 루벤은 이후 청각장애인 공동체로 이끌린다. 그곳에서 수어를 배우고, 소리 없이도 사람들과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을 직접 체험한다. 이 변화는 중요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과연 청각 상실을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결핍’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감각과 새로운 언어로 이루어진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루벤은 쉽사리 과거의 삶을 놓지 못한다. 그는 인공와우 덕분에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회복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공와우 수술 후 그가 듣게 되는 소리는 과거의 기억 속 소리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장면은 영화적 연출이 가미된 부분이긴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과학적 문제를 던진다.
‘인공와우란 과연 예전의 소리를 고스란히 돌려주는 기계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전기 신호를 받아 뇌가 다시 해석하도록 돕는 신경보철 장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물음이 바로 이번 연재의 핵심이다. 실제로 인공와우의 효과와 사용 경험은 개인마다 차이가 크고, 영화 속 장면을 모든 이용자에게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 필요한 것은 영화적 인상에 머물지 않고, 실제 청각 경로와 뇌의 적응 과정을 신경과학적으로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이다.
— 귀가 아니라 뇌가 듣는다
우리는 보통 “귀로 듣는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듣는 과정은 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소리는 귀를 통해 들어오지만, 그것이 우리가 느끼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되려면 결국 뇌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밖에서 나는 소리는 사실 공기의 진동에 불과하다. 이 진동이 외이와 중이를 지나 내이의 달팽이관에 도달하면, 그 안에 있는 유모세포가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꾼다. 변환된 이 신호는 청각신경을 따라 뇌간과 시상을 거쳐 청각피질까지 전달된다. 우리가 말소리를 알아듣거나, 음악의 리듬을 느끼고,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해석은 모두 뇌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청각 상실을 단순히 “소리가 작은 것”으로만 생각하면 부족하다. 특히 감각신경성 난청처럼 달팽이관의 유모세포나 청각신경 경로에 손상이 생기면 소리 정보가 뇌에 제대로 도달하지 않는다. 이때 뇌는 갑자기 중요한 감각 입력을 잃는 셈이다. 하지만 뇌는 가만히 머물지 않는다. 입력이 줄면, 뇌 역시 변하게 된다.
뇌는 계속 변한다.
청각 정보가 사라지면 청각 피질은 예전과는 다른 자극을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청각 피질의 반응성도 달라지고, 다른 감각이 청각 영역의 일부를 대신 차지하는 현상(교차감각 가소성)도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소리를 듣지 못하면, 시각이나 촉각 신호가 상대적으로 청각 피질과 더 강하게 연관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뇌가 가진 놀라운 적응력의 한 모습이지만, 동시에 나중에 청각 입력이 다시 들어왔을 때 그 신호를 해석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공와우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등판한다.
인공와우는 보청기처럼 소리를 크게 키워주는 기기가 아니다. 보청기는 남아 있는 청각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소리를 증폭할 뿐이지만, 인공와우는 망가진 달팽이관의 기능 일부를 건너뛰어 청각신경을 직접 전기로 자극한다. 바깥쪽의 마이크가 소리를 받아들이고, 음성처리기가 이를 전기 신호 패턴으로 만들면, 달팽이관 안의 전극이 청각신경을 자극하는 원리다(그림 1, 출처 1).
여기에는 중요한 점이 있다. 인공와우가 전달하는 건 우리가 익숙한 ‘자연스러운 소리’ 자체가 아니다. 소리에 대한 전기 신호 코드일 뿐이다. 결국 이 코드가 다시 ‘의미 있는 소리’로 해석되는 과정은 뇌가 책임진다.
그래서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듣게 되는 경험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거의 “다시 배우는” 과정에 가깝다. 뇌는 새로 들어온 전기 신호가 어떤 말, 어떤 소리, 어떤 음악 패턴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또 익혀야 한다. 그래서 인공와우의 효과는 단순히 수술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청각 손실이 있었던 기간, 남아 있는 청각신경의 상태, 이식 시점, 재활 훈련, 그리고 개인 뇌의 가소성까지 다양한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출처 2).
이런 관점에서 보면, 〈Sound of Metal〉의 핵심은 “잃었던 소리를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루벤의 뇌가 익숙했던 청각 세계를 잃고, 이제는 낯설고 이질적인 전기 신호를 가지고 세상을 다시 해석해야만 하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겪은 난관은 단순히 귀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뇌가 다시 감각을 익히는 길고 낯선 과정이었던 것이다.
— 인공와우와 청각 피질 가소성
인공와우는 현대 신경보철 기술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정상 청각을 완전히 복원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성공이라는 평가가 마냥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다. 인공와우가 성인 환자의 말소리 인식이나 삶의 질을 확실히 높여줄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
2024년에 발표된 성인 인공와우 연구들을 모아 분석한 결과, 인공와우는 전반적으로 말소리 이해력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정리됐다(출처 3). 그렇지만 이 같은 결론은 평균적인 경향일 뿐,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개선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말소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되지만, 다른 누군가는 오랜 재활 치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효과만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려면, 다시 뇌의 작동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
청각 자극이 오랫동안 줄어들면, 뇌는 그 자리를 가만히 비워두지 않는다. 청각 피질이 시각이나 촉각 같은 다른 감각과 더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다. 이를 교차감각 가소성이라고 한다. 이런 변화는 뇌가 환경에 맞춰 적응하는 일종의 전략이지만, 인공와우를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신호를 해석하는 데는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2024년 연구에서는, 후천적으로 청각을 잃은 환자에서 이런 교차감각 가소성이 인공와우 이식 이후 말소리 회복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고했다(그림 2, 출처 4). 즉, 인공와우의 성과는 단순히 장치를 귀에 달았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사람이 청력을 잃는 기간 동안 뇌가 어떻게 변화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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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T8 전극의 VEP 평균 파형과 인공와우 사용 6개월·12개월 후 음성 인지 성과 비교. 정상청력 대조군(검은선)과 청각손실 그룹의 두 하위군(“HL high”: 파란선, “HL low”: 주황선)에 대한 우측 T8 전극의 VEP 평균 파형을 보여준다. 인공와우 사용 6개월 및 12개월 시점의 음성 인지(정답률)를 비교한 그래프로, “HL high” 그룹이 “HL low” 그룹보다 유의하게 더 높은 성적을 보였음을 나타낸다(출처 4).
최근 단측성 난청 환자 연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2024년 연구에 따르면, 한쪽 귀의 청력이 떨어진 뒤 청각 피질의 네트워크가 변화하며, 인공와우를 이식한 이후에도 이런 피질 가소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그림 3, 출처 5). 이처럼 청각 상실은 단순히 귀의 문제가 아니라, 뇌 전체, 즉 중앙 청각계의 적응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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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인공와우 자극 후 청각 신호에 대한 뇌 활동 변화. 네 그룹의 통계적 뇌 활성 지도를 T1 MNI 표준 뇌 영상 위에 겹쳐 표시한 그림이다. 모든 결과는 동일한 색상 척도로 제시되어 자극 효과를 비교할 수 있게 하였다. 인공와우 자극 이후 청각 신호에 대한 뇌 활동 증가가 양쪽 뇌에서 관찰되며, 특히 자극을 받은 쪽의 반대편 뇌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빨간 화살표)(출처 5).
노년층에게 인공와우란, 단순히 ‘소리가 들리느냐’에만 그치지 않는다. 2024년 COCHLEA 연구에서는, 중증 이상의 청각 손실을 겪는 고령자에서 인공와우 사용이 장기적인 인지 기능 변화와도 연관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출처 6). 청각 기능이 회복되면 사회적 관계나 의사소통 능력이 함께 나아지고, 인지 부담도 줄어드는 등 뇌의 다양한 기능과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청각 재활은 뇌 전체의 건강과도 연결된다.
그러니 인공와우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장치의 기능이 아니다. 핵심은 뇌가 새로운 신호를 어떻게 다시 배워가는지에 있다.
〈Sound of Metal〉에서 주인공 루벤이 처음 낯선 소리를 접하고 겪는 혼란은,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물론 영화 속 경험이 모든 인공와우 사용자를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하게 짚고 있다. 인공와우를 통해 듣는다는 일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뇌가 완전히 새로운 감각 언어를 다시 익히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 루벤이 마주한 것은 ‘소리’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 세계’
영화 후반부에서 루벤은 결국 인공와우를 이식받아 다시 소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그가 접한 소리는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색하게 들리고, 주변의 소음은 투박하고 조각난 신호처럼 느껴진다. 루벤이 기대했던 건 과거의 청각 세계로 돌아가는 일이었는데, 실제로 그가 마주한 건 새롭게 익혀야 할 또 다른 감각의 세계였다.
이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지만, 한편으론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 영화 속 인공와우의 소리가 모든 사용자의 실제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 인공와우의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고, 많은 사용자들이 말소리 이해와 의사소통에서 상당한 도움을 얻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짚어낸 중요한 점은, 인공와우가 ‘예전의 소리’를 고스란히 돌려주는 기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공와우를 통해 듣는다는 건, 청각신경으로 들어오는 전기 신호를 뇌가 다시 해석하는 과정에 가깝다. 처음엔 온통 낯설고 이질적일 수 있지만, 재활과 반복된 경험을 통해 점차 의미 있는 소리로 배워 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치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는 뇌의 역할이다.
루벤이 느낀 좌절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는 기술이 자신을 예전 세계로 다시 데려다줄 거라 믿었지만, 결국 기술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해 주지 않았다. 대신 루벤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듣는 법’을 새로 익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 차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해 보여도, 청각 상실과 인공와우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소리를 되찾는다는 건 단순히 소리라는 자극이 들린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 자극을 뇌가 어떻게 해석하고, 각자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게 되는지까지 포함한 과정이다.
〈Sound of Metal〉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이 영화는 청각 상실을 단순한 결핍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인공와우 역시 쉬운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루벤이 과거의 소리와 현재의 침묵, 그리고 새롭게 경험하는 전기적 청각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흔들림은 결국 청각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뇌와 마음의 문제다. 그리고 그 적응의 과정은 오롯이 우리 뇌가 감당해 내야 할 몫이다.
〈Sound of Metal〉은 청각 상실을 단순한 결핍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인공와우 역시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만능 장치로 그리진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루벤은 소리를 되찾지만, 그토록 바라던 예전 세상으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이 순간, 영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듣는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단순히 소리가 귀에 스며드는 것만으로 듣는 일이 완성되진 않는다. 소리는 달팽이관에서 전기 신호로 변환되고, 청각신경을 따라 뇌까지 전달된다. 그리고 청각 피질과 여러 인지 네트워크가 이 신호를 해석하며, 비로소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듣는다는 건 단순한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이 입력을 자신의 세계 속 일부로 엮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인공와우는 이 복잡한 과정에 개입하는 대표적인 신경보철 기술이다. 손상된 달팽이관의 역할 일부를 대신해 청각신경을 전기로 자극해 줌으로써, 뇌가 다시 청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길을 열어 준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인공와우가 성인에서도 말소리 인식 능력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효과는 개인차가 크고, 정상 청각이 완벽히 복원되는 건 아니다(출처 3).
그래서 인공와우 이후 정말 중요한 건 기계 그 자체만이 아니다.
중요한 건 결국 뇌가 새로운 신호를 어떻게 익히고 해석해서, 자기만의 감각세계로 통합할 수 있느냐다.
최근 청각 보철 기술은 이런 방향으로 점차 발전해 나가고 있다. 전극의 설계나 수술법도 남아 있는 청각 구조를 최대한 보존하도록 개선되고, 신호 처리 방식 역시 말소리와 배경 소음을 더 잘 구분할 수 있도록 발전 중이다. 뿐만 아니라, 청각을 잃은 뒤 뇌의 가소성, 시각·촉각과의 교차감각 재조직화, 또 인공와우 이후 말소리 회복을 예측하는 뇌 지표 연구도 활발하다(출처 4).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면, 기존의 전기 자극보다 훨씬 섬세하게 주파수를 선택할 수 있는 광유전학 기반 '광학 인공와우' 연구나, 청각신경 자체를 쓸 수 없는 경우를 겨냥한 청각뇌간이식, 여기에 사용자의 뇌 반응에 맞춰 자극 전략을 자동으로 바꾸는 폐루프 청각 보철 같은 개념들도 제안되고 있다(그림 4, 출처 7, 8). 물론 대부분은 아직 연구 단계이거나 일부 제한된 임상 현장에서만 사용될 뿐, 당분간 인공와우를 대체하는 보편적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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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유연한 청각뇌간이식 장체의 실험 설계와 구조. 비인간 영장류 모델에서 유연한 청각뇌간이식 장치(soft ABI)를 달팽이핵(cochlear nucleus)에 삽입하고, 유연한 ECoG 전극을 이용해 청각 피질의 반응을 기록한 실험 설계를 보여준다. 그림에는 전기 또는 소리 자극에 대한 행동 과제, ABI와 ECoG 장치의 구조, 전극 배열, 전기적 특성 평가, 그리고 미세 패턴화된 전극의 전자현미경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장치는 뇌간을 직접 자극하면서 청각 피질 반응과 행동 변화를 함께 측정하도록 설계되었다(출처 7).
결국 〈Sound of Metal〉이 던지는 질문은 기술 수준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소리를 다시 듣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걸까, 아니면 아주 새로운 감각의 세상을 배워 나가는 것일까?
루벤의 여정은 이 차이를 또렷이 보여준다. 그는 소리를 잃고, 다시 얻지만, 그 과정에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의 기능이 아니라 뇌의 해석이자 삶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라는 걸 조금씩 깨닫는다.
앞으로 청각 신경기술은 훨씬 더 정교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진화해도, 마지막 단추는 언제나 뇌가 끼운다.
기계는 신호를 전달할 뿐이다.
하지만 그 신호를 진짜 ‘소리’로 만들어내는 일,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결국 뇌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
1. https://www.nidcd.nih.gov/health/cochlear-implants
2. Landry, T. G., Wise, A. K., Fallon, J. B., & Shepherd, R. K. (2011). Spiral ganglion neuron survival and function in the deafened cochlea following chronic neurotrophic treatment. Hearing research, 282(1-2), 303-313.
3. Tang, D., Tran, Y., Lo, C., Lee, J. N., Turner, J., McAlpine, D., ... & Gopinath, B. (2024). The benefits of cochlear implantation for adults: A systematic umbrella review. Ear and Hearing, 45(4), 801-807.
4. Ávila-Cascajares, F., Waleczek, C., Kerres, S., Suchan, B., & Völter, C. (2024). Cross-Modal Plasticity in Postlingual Hearing Loss Predicts Speech Perception Outcomes After Cochlear Implantation. Journal of Clinical Medicine, 13(23), 7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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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irumalai, A., Henseler, J., Enayati, M., Kusch, K., Hessler, R., Moser, T., & Huet, A. T. (2025). Improved optogenetic modification of spiral ganglion neurons for future optical cochlear implants. Theranostics, 15(10), 4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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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틀신반]을 연재 중인 박성모입니다. 저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 Sickkids hospital 소속 연구센터의 Neuroscience Mental Health Program 소속인 Dr. Sheena Josselyn lab의 Research Associate 3년 차입니다. 제 연구의 주된 관심사는 learning & memory입니다. 연구를 하면서 재미있는 논문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또한 관련 기술이나 개념을 영화의 소재로 사용한 부분들이 자주 눈에 띄어서 이렇게 연재를 통해 알기 쉽게, 유익하게 풀어가고자 합니다. 제가 앞으로 다룰 영화는 이미 많이 알려진 영화들과 Netflix에서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대상입니다. 다소 중국집 이름 느낌이 나는 저의 연재를 재미있게 함께 읽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