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에는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알면 알수록 더욱 모르겠는 게 바로 사람이다. 인간의 속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심지어 자기 자식이라고 해도 제대로 알기 힘들다. 최근 넷플릭스 화제작 「소년의 시간」(감독 필립 바랜티니)은 인간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한다. 총 4부작인데, 각 회차를 ‘원 테이크’로 보여준다. 편집이라는 장치를 거둬버린 것이다. 물론 사전에 동선과 움직임 등을 치밀히 준비했을 것이다.
이 영국 드라마에서는 소녀를 살해한 소년의 시간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펼쳐진다. 그런데 사건을 파헤칠수록 미궁에 빠진다. 중요한 단서가 되는 CCTV 영상이 확보되었지만, 살해 동기는 알기 어렵다. 소녀와 친하지도 않았던 소년은 왜 그랬던 것일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건 집(가족), 학교(친구), 동네(이웃) 등 환경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SNS라는 미디어다. 미디어는 도구이자 무기이다.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스틸컷. 소년은 과연 내면에 무엇을 형성해 왔는가.
기존의 미디어 공식 탈피
편집 없는 ‘원 테이크’ 촬영
「소년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드라마도 미디어다. 그런데 미디어를 비판하면서, 기존의 미디어 공식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각 회차에 가감 없이 ‘원 테이크’ 촬영 기법을 쓴 것이다. 미디어는 원래 편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 제공한다. 화려한 사진과 영상 이면에 담긴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미디어의 본질이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가감 없이 보여주는 유튜브가 대세이다. 즉, 올드미디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과연 미디어는 살인자 소년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소년의 시간」은 엄청난 반전이나 비밀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평범했던 삶들이 어떻게 괴물을 만들어내는지,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던 집과 학교, 동네가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알려준다. 또한 삶이 간직한 다면성을 촘촘히 그리고 천천히 드러낸다. 그것도 민낯으로.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불안 세대』(웅진지식하우스)에서 디지털 세계에서 발생하는 청소년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 원인으로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를 꼽았다. 「소년의 시간」에서 아버지가 방에 있는 아들이 안전할 것이라고,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행복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과 마찬가지다. 인터넷 세계는 청소년들의 또 다른 각축의 장이다. 정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일부 국가들에서 16세 미만 SNS 가입 금지법을 통과시켰고, 추진 중이다.

온라인에서 자기 브랜드
관리하는 청소년들, 인정 원해
하이트 교수는 Z세대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라는 ‘포털’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현실 세계와 단절된 채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관리하며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신체적·사회적 경험이 부족해지고 정신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받고 있다. 놀이 기반 아동기에서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전환되면서 아동들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훈련 기회를 상실하고, 충동에 취약한 뇌 발달 단계에서 가상 세계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하이트 교수는 2010년 이후 급격히 악화된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를 지적한다. 2010년은 전면 카메라가 부착된 아이폰 4가 출시된 해이다. 그는 어른들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아이들을 해로운 디지털 환경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성형 AI 등 새로운 기술이 혼란을 가중할 가능성이 있지만, 개인과 사회가 함께 행동하면 해로운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모두가 문제를 인식한 만큼, 과거처럼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하이트 교수는 경고한다.
반면, 뒤늦은 나이에 전면 카메라가 부착된 신문물을 접한 기성세대도 무방비로 디지털 환경에 노출돼 있다. 연예인이 댓글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다. 국가 권력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특정 정치인을 사찰한다. 회사 대표는 직원들을 24시간 감시하려고 하고, 노동자는 폭언과 폭력을 디지털 기록으로 남긴다. 물론 그런 사건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디지털 건강이 위협받는 환경에 휩싸여 있다. 24시간 내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일상 속 존재하는 장애
주류 문화 텍스트의 침묵
반면, 무엇을 다룰 것인가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인류가 집단사회를 형성하며 시작된 넓은 의미의 연극이라는 전통적 미디어는 그나마 온갖 군상을 드러내는 나름 공정한 장이었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처럼 신을 기리는 신성한 연극이 있다. 또한 온갖 잡상인이 드나드는 시장 한구석은 왕을 조롱하고 권력을 비웃는 한바탕 마당극의 장이었다. 연극이 다루는 대상에 편견이 없었던 셈이다.
최근 출간된 『연극 그리고』(교유서가) 시리즈는 그동안 간과했던 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여성, 퀴어, 동물, 장애, 사물 등 여전히 소외된 영역이 어떻게 분투하고 있는지 그려낸다. 생각해 보니, 여러 작품들은 이미 여성과 장애 등을 이미 다루고 있었다. 우리가 주위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 시리즈 중에서도 특히 「소년의 시간」과 관련해 두 권의 책이 눈에 띈다.
“「오이디푸스」에서 눈멂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인 시각 장애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도) 어떤 의미인가? 「리어 왕」에서 광기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대체로 실제 시각 장애인이나 광인, (리처드 3세의 경우) 신체적 장애인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장애’는 오랫동안 연극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의미 저장소가 되어왔다.”(『연극 그리고 장애』 중에서)
“한때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만 게이, 레즈비언, 퀴어적 경험을 재현하라고 요구했던 진실성의 기준은, 21세기에 와서 무대 위 혹은 영화 스크린에서 누구나 대안적인 성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연기하고 또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된 기준으로 점차 완화했다.”(『연극 그리고 섹슈얼리티』 중에서)
그런데 갈수록 그러한 지점들은 외면당한다. 『연극 그리고 장애』는 여성 공연 이론가이자 장애인인 필자 페트라 쿠퍼스 미국 미시간대 교수가 서양 연극의 기원을 읽거나 듣는 데서 소외된 경험을 지적한다. 그녀는 극장을 논할 때 ‘누가 있는가’와 ‘누가 없는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가 일상생활 속에 존재함에도 주류 문화 텍스트는 침묵을 지키고 있어, 그 틈새에는 불균형이 존재한다.”
연극은 오랫동안 장애를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의미 저장소로 삼아왔지만, 실제 장애인 배우나 실천적 참여는 배제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마크 해던 소설 원작)에서도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장애인 배우는 출연하지 않았고, 이는 장애를 무능과 동일시하는 고정 관념과 맞물려 있다.
장애인, 여성, 빈민, 퀴어, 비백인 등 전통적으로 극장 밖에 있었던 이들은 연극을 새로운 집으로 삼으며 자신들의 공간을 넓혀가고자 한다. 그러나 장애가 무대에서 진정한 경험이나 목소리로 재현되지 못하고 스펙터클로 소비될 때, 여전히 주류 문화 속에서 불균형은 지속된다. 필자는 연극이 더 포용적인 공간이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살아가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소년의 시간」은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년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려고 했다는 점에서 여운이 오래간다. 심리적으로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드라마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아울러, 질 돌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영문학/연극학)는 “섹슈얼리티를 연극 공연과 수용의 한 구성 요소로 간주할 경우, 비평가와 예술가들은 공연이 풋라이트(조명)의 양쪽에서 어떻게 욕망을 굴절시키는지 분석할 수 있게 된다”라며 “퀴어 공연 이론가들은 제4의 벽을 두른 가정극의 관습을 따르기 거부하는 포스트모던적인 스타일과 장르를 옹호하며, 사실주의의 보수적 성격에 대항했다”라고 강조했다.
현대사회는 미디어로 점철돼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느냐가 인정과 권력이 된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고전적인 담론은 적용 범위를 확장시켜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다치고 피해를 입고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담론 역시 더욱 제기되어야 할 때이다.
<참고 문헌>
1.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3/19/WNQFUG7EDVEZHEQZNEIRELXTEU/
2.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25765
3. 『연극 그리고 장애』(페트라 쿠퍼스 지음 | 황승현 옮김 | 교유서가)
4. 『연극 그리고 섹슈얼리티』(질 돌런 지음 | 최석훈 옮김 | 교유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