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들쥐」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한타바이러스 숙주라는 오해부터 식성까지
인간이 덧씌운 부정적 이미지 다시 들여다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웹툰 원작의 10부작 드라마 「들쥐」(김홍선 감독·이재곤 극본)를 재미있게 보았다. 한순간에 빼앗겨 버린 나의 정체성을 추적하는 스릴러이다.
소설가 ‘문재’는 어느 날 정체불명의 존재 ‘들쥐’에게 이름과 얼굴, 그리고 자신의 인생 전부를 빼앗기고 만다. 그를 쫓는 것은 문재만이 아니다. 떼인 돈을 받아내려는 사채업자 ‘노자’, 그리고 사건의 실마리를 좇는 형사 ‘순용’까지 등장한다. 세 사람의 추적이 얽히며, 들쥐의 정체를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자의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한 존재를 쫓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들쥐’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따라가게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들쥐」는 이름과 얼굴, 인생을 빼앗긴 소설가의 정체성 추적을 그린 스릴러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인간의 내면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사진=드라마 스틸컷
「들쥐」가 흥미로웠던 건 바로 과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당연히 여겼던 나의 본모습은 사실 내가 아니었다. 내가 나라고 믿어왔던 것이 흔들리는 순간, 정체성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승우 작가(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고요한 읽기』(문학동네, 2024)에서 나야말로 가장 큰 재앙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사실 끔찍한 일이며, 그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이 세계에 그토록 집착한다는 뜻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문재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직면하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결국 외부의 적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가장 힘겹게 마주해야 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눈먼 예언자는 눈이 멀기 전의 오이디푸스에게 말한다. ‘그대가 그대의 재앙이라오.’(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왕」) 나는 이 말이 무섭다.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 돌릴 수 있는 한 나는 안전하다. 내 재앙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한 버틸 수 있다. ‘앞사람’을 바라보며 미워하는 한 살 수 있다. 세상이 내 곤경의 탓이 되어주는 한, 불안정해도 아직 살 수 있다. 나에게 도달하지 않는 한 살 수 있다.
자기가 자기의 재앙이라는 걸 오이디푸스가 몰랐다고 할 수 없다. 몰랐다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자기로부터 달아나려 했겠는가. 한사코 자기에게 도달하지 않으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21∼22쪽)
드라마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런데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은유되는 동물의 모습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들쥐」 역시 마찬가지다. ‘들쥐’는 이번 드라마에서 음침한 곳에 숨어 사는 가짜 같은 존재를 상징한다. 자신을 세상에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는 어둠의 자식이다. 거처도 정해진 곳이 없다. 여기저기 떠돌며 시기하고 질투하며 때로는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설정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고 인물의 정체성을 둘러싼 불안을 만들어내는 데 효과적이다.
분명한 건 드라마에서 들쥐라는 동물이 가진 어둡고 가짜 같은 상징성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정체성 혼란을 극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빌려 온 문학적 은유일 뿐이다. 이를 생물학적 사실의 잣대로 직접 대비하기보다는 ‘문화적 기호로서의 상징’과 ‘자연계 속 야생동물의 생태적 팩트’가 엄연히 다른 층위에 있음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에서는, 그 과정에서 실제 동물인 들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를 찾아가는 문재, 결국 마주한 것은 자기 자신
들쥐는 단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서 풀숲, 돌틈, 나무 밑, 굴 같은 은신처를 이용한다. 살아남기 위해 몸을 숨기는 것은 들쥐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를 인간의 관점에서 ‘음침하다’거나 ‘숨어 지낸다’고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더욱이 “들쥐 = 더러운 동물”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위생 관념을 동물의 생태와 혼동한 표현에 가깝다. 특히 드라마 「들쥐」는 버려진 손톱을 몰래 주워 먹은 쥐가 집주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둔갑해 진짜 주인을 집에서 내쫓는다는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한다.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결국 드라마 속 들쥐는 실제 동물이라기보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낯선 존재를 상징하는 장치에 가깝다.
들쥐 하면 떠오르는 게 한타바이러스이다. 야외 활동을 하면서 들쥐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은 신증후군출혈열(한타바이러스감염증)의 예방을 위해 “설치류와 설치류의 서식지에 접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들쥐의 배설물 접촉을 피하고, 산이나 풀밭에서 활동한 뒤에는 옷을 세탁하고 샤워할 것을 권고한다. 야외의 들쥐 가운데 일부가 한타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다. 감염된 들쥐의 배설물 등에 노출될 경우 감염 위험이 있다. 따라서 야외에서 들쥐를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과 들쥐 자체를 더러운 동물로 여기는 것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들쥐가 한타바이러스의 자연 숙주인 것은 아니다. 한국과 가까운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포획한 설치류 122마리를 대상으로 한탄바이러스(HTNV)와 푸말라바이러스(PUUV)에 대한 항체를 조사한 적이 있다. 흰넓적다리붉은쥐(Apodemus peninsulae) 70마리 가운데 4마리, 등줄쥐(Apodemus agrarius) 39마리 가운데 1마리, 대륙밭쥐(Clethrionomys rufocanus) 8마리 가운데 1마리에서 관련 항체가 검출됐다. 이는 특정 쥐 종이 한타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라고 해서 그 종의 모든 개체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항체가 검출됐다’는 것은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반응의 흔적이 확인됐다는 의미로, 이를 곧바로 현재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감염병에 대한 주의와 특정 동물에 대한 일반적인 부정적 이미지는 별개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들쥐가 손톱으로 상징되는, 더럽고 썩은 음식만을 먹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전래동화이긴 하지만 말이다. 들쥐는 종에 따라 먹이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씨앗과 곡물, 열매 등을 주로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숲이나 들판에서는 풀과 식물의 어린싹, 잎, 뿌리, 도토리와 각종 야생 열매, 버섯 등을 먹는다. 특히 흰넓적다리붉은쥐나 등줄쥐 같은 들쥐는 계절과 서식환경에 따라 다양한 식물성 먹이를 찾아 먹는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쓰레기를 뒤지는 쥐’의 모습만으로 들쥐의 식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들쥐는 동물성 먹이도 섭취한다. 곤충과 애벌레, 지렁이 같은 작은 무척추동물을 먹으며, 먹이가 부족할 때는 새의 알이나 작은 동물의 사체 등을 먹기도 한다. 따라서 들쥐를 ‘쓰레기나 썩은 음식만 찾아 먹는 동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으며, 자연에서는 씨앗과 열매 등을 먹으며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참여하는 야생동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들쥐 역시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먹이를 찾아 움직일 뿐이다.
등줄쥐의 모습이다. 등줄쥐는 농경지와 산림은 물론 도시공원까지 폭넓게 서식하며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야생 설치류다. 사진=위키피디아
풀숲과 도시공원 오가는 야생동물의 실제 모습
이 글에서 드라마 「들쥐」에 대해 딴지를 걸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들쥐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은 것뿐이다. 인간에게 인간의 영역이 있듯이, 들쥐한테는 들쥐의 영역이 있다. 드라마 속 들쥐는 도시의 야생 설치류를 가정하고 있다. 2020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도시 지역의 등줄쥐는 농촌 개체보다 대담성, 공간 탐색 능력, 행동의 유연성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등줄쥐(Apodemus agrarius) 96마리를 대상으로 도시화 정도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연구진은 등줄쥐가 도시 환경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종이며, 도시와 농촌 개체 사이에 행동적 차이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도시라는 낯선 환경에서도 들쥐는 그 환경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바꾸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도시공원의 야생 들쥐를 직접 조사한 연구가 있다. 2025년 광주 승촌보공원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관목지·주차장·초지·자전거도로·캠핑장 등으로 공간을 나눠 야생 설치류를 포획했는데, 포획된 30마리가 모두 등줄쥐(Apodemus agrarius)였다. 특히 가장 많이 포획된 곳은 관목지였다. 연구진은 도시공원의 야생 들쥐와 참진드기 등의 관계를 조사하면서 도시공원에서 사람들의 활동이 증가하는 만큼 관련 감염병 예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도시의 녹지 공간이 야생동물에게는 하나의 생활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들쥐는 도시의 공원·관목지·초지 같은 비교적 개방적이고 녹지가 있는 공간에서 살아간다. 국내의 한 연구에서는 등줄쥐가 농경지뿐 아니라 산림과 다양한 야외 환경을 폭넓게 이용하는 종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국내 5개 지역에서 채집한 등줄쥐가 농경지에서 산중턱까지 폭넓게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들쥐가 살아가는 공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며, 반드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어둡고 음침한 곳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한편, 등줄쥐 자체를 대상으로 한 국내 생태 연구에서는 국내 등줄쥐의 행동권과 행동 패턴을 무선추적 방식으로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여름철 일부 암컷은 낮에도 활동하며 수컷은 계절에 관계없이 야행성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들쥐도 다른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로 먹이와 계절, 주변 환경에 따라 활동 방식과 행동을 달리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들쥐」가 던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위해 들쥐에게 ‘음침함’과 ‘더러움’, ‘가짜’라는 이미지를 덧씌울 필요까지 있었을까. 들쥐는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야생동물이다. 풀숲을 헤치고 씨앗을 찾아 먹고, 포식자를 피해 굴과 나무 밑에 몸을 숨기며, 때로는 도시의 공원과 녹지에도 적응해 살아간다. 인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구분하고 타자를 낯설게 만드는 것처럼, 들쥐 역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지킬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들쥐에게 붙여놓은 ‘가짜’와 ‘어둠’이라는 이름이야말로, 인간이 낯선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또 하나의 은유인지도 모른다.
<참고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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