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에 새긴 하루, 금와 달팽이와의 만남과 신비
느린 회복의 교훈... 생명을 책임지는 시간의 무게
최근 지인의 집에서 아프리카왕달팽이 ‘말랑이’를 만났다. 일부 사육자들은 ‘금와 달팽이’라고도 부른다. 이 친구는 촉촉하게 젖은 갈색 소용돌이 패각(貝殼)을 등에 얹은 채, 대리석 테이블 위를 은빛 점액 자국을 남기며 유유히 움직인다. 정말 신기하다. 원뿔형으로 감긴 황갈색 줄무늬 패각과 그 아래로 흘러나온 크림빛 몸체가 묘하게 조화로웠다. 사람이 반려동물로 개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우듯, 어느 집엔 이렇게 느리고 조용한 동거인이 산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아프리카왕달팽이 ‘말랑이’가 사료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더듬이가 참 귀엽다. 사진=김재호
그런데 사건이 하나 터졌다. 지인은 “밥 줄 시간”이라며 온라인으로 구입해 둔 달팽이 전용 사료 한 스푼을 꺼내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내 팔뚝 위에 올려놓았다. 촉촉하면서도 묘한 감촉이 전해졌다. 이 사료는 곡물가루를 물에 개어 죽처럼 만들었다. 옥수수 전분과 밀기울(wheat bran) 같은 곡물류에 칼슘탄산염과 갑오징어뼈 가루, 난각 분말 등을 섞어 만든 것이다. 채소만 줄 때보다 영양 균형을 맞추기 좋고, 매번 신선한 야채를 준비하기 번거로울 때 대안이 된다.
사료 봉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성분표에는 옥수수 전분, 밀 글루텐, 어분(魚粉), 탄산칼슘, 효모, 생선 기름과 함께 달걀 전란 분말, 인산삼칼슘, 해조류 가루 같은 낯선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시금치와 당근, 파슬리 같은 채소 성분도 소량 포함돼 있어, 채식 위주인 달팽이의 식성을 고려해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역시 칼슘이었다. 껍질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필수인 이 성분이 사료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결국 이 사료는 단순한 ‘밥’이 아니라, 패각이라는 뼈대를 매일 조금씩 다시 짓는 건축 자재였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이 곡물 사료만으로도 사육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니, 매번 신선한 채소를 구비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실용적인 선택지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료를 주식으로 삼되, 상추나 오이 같은 채소를 곁들여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료의 영양 균형과 채소의 수분감, 두 가지를 함께 취해야 껍질도 몸도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패각의 성장과 전반적인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 지인의 달팽이 역시 사료를 주식으로 삼되 이따금 상추나 단호박을 특식처럼 곁들여 받는다고 했다. 편식이 심한 개체도 많아, 유독 단호박만 골라 먹는 달팽이의 사연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고 하니, 이 조용한 생물에게도 나름의 입맛이 분명 존재하는 모양이다.
달팽이는 대촉각(大觸角: 달팽이 머리 위쪽에 길게 뻗은 큰 더듬이 한 쌍이다. 끝에 눈이 달려 있어 빛과 그림자, 명암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을 슬며시 움직이며 먹이의 존재를 감지한 듯 보였다. 나와 지인은 호기심에 손을 내밀어 달팽이를 접시 쪽으로 살짝 옮겨보려 했는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무게감과 미끈함에 손아귀 힘이 풀리고 말았다. “아!”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달팽이는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혔고, 패각 끝부분이 살짝 깨져 나갔다. 걱정이 앞섰다.
깨진 패각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전체가 아니라 가장자리 일부, 이른바 ‘성장선’ 근처였다. 껍질 안쪽으로 보드라운 속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달팽이는 별다른 동요 없이 그저 촉각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우리를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괜찮을까?”라는 물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우리는 곧장 검색창을 열었다.
조건부로 다시 자라는 패각... 유기질 막 먼저 형성
결론부터 말하면, 손상 부위는 조건에 따라 부분적으로 복구될 수 있다. 즉, 패각은 다시 자란다. 조건부로 말이다. 달팽이의 패각은 사람의 손톱처럼 외부에서 덧붙는 방식이 아니라, 손상된 부위 안쪽에 얇은 유기질 막을 먼저 형성한 뒤 그 위에 탄산칼슘을 아주 천천히 침착시키며 단단해지는 구조다. 그래서 회복 초기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거의 없다. 마치 상처에 새살이 돋기 전, 딱지 아래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재생처럼, 달팽이의 껍질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다만 모든 손상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성장선, 즉 패각 가장자리의 얇고 여린 부분이 깨졌다면 칼슘 섭취를 통해 비교적 잘 복구되지만, 나선의 안쪽 깊숙한 곳이나 패각 끝(첨탑부)이 손상되면 재생이 어렵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목격한 손상은 가장자리 쪽이었다. 지인은 그날 이후 오징어뼈와 달걀 껍질 가루를 사료에 조금 더 넉넉히 섞어주고 패각에 발라주기 시작했다. 칼슘은 달팽이에게 뼈이자 집이다. 물론, 패각에 칼슘 가루를 바른다고 재생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이 작은 소동을 계기로 나는 이 낯선 동거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더듬이였다. 사진을 다시 보니 확실히 네 개였다. 위쪽으로 길게 뻗은 큰 더듬이 한 쌍과, 그 아래 짧게 자리한 작은 더듬이 한 쌍이다. 큰 더듬이 끝에는 눈이 달려 있어 빛과 그림자를 감지하고, 작은 더듬이는 냄새와 맛, 그리고 땅의 질감을 살피는 역할을 한다. 두 쌍의 더듬이가 각자의 임무를 나눠 맡은 셈이니, 달팽이의 세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먹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지인이 들려준 또 하나의 신기한 경험담이 있다. 특식으로 상추를 며칠 계속 먹였더니 몸체 색깔이 은은하게 연둣빛을 띠더라는 것이다. 처음엔 착각이라 여겼지만, 사육자들 사이에서 종종 관찰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몸체가 반투명에 가까운 개체일수록 먹이에 든 색소 성분이 얇은 피부 조직을 통해 은은하게 비쳐 보이는 것이다. 사람이 당근을 많이 먹으면 손바닥이 노래진다는 이야기(카로틴혈증)와 얼핏 닮았달까. 물론 기전은 전혀 다르지만, 먹은 것이 몸에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자연의 유머 같았다.
사료 그릇에 푹 들어간 말랑이. 몸통과 패각 사이 하얀 선처럼 되어 있는 부분이 나중에 실수와 사고로 일부 깨졌다. 사진=김재호
‘말랑이’, 청각기관 없지만 목소리 예민하게 감지
그날의 소동이 남긴 여운 속에서, 나는 지인이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얘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지인이 달팽이의 이름을 부르듯 낮은 목소리로 ‘말랑’ 하고 이름을 부르자 대촉각이 그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달팽이에게는 청각기관이 따로 없으니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라는 표현은 정확한 과학적 서술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달팽이는 진동과 공기의 미세한 흐름, 그리고 촉각을 통해 주변 환경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인의 말과 숨결이 만들어낸 공기의 파동을, 즉 진동을 그 여린 더듬이가 놓치지 않고 붙잡아낸 것인지도 모른다.
팔뚝 위에 달팽이를 올려두었을 때의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낯선 무게와 서늘한 점액의 감촉에 움찔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달팽이는 마치 길을 찾듯 팔의 굴곡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촉각을 좌우로 흔들었다. 지인은 이 순간을 두고 “교감하는 기분”이라 표현했다. 과학적으로 보면 이는 교감이라기보다는 달팽이가 새로운 표면의 질감과 온도, 습도를 탐색하는 본능적 행동에 가깝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과 사람의 체온에 몸을 맞춰가는 듯한 리듬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언어도 청각도 없는 생명체와도 나름의 방식으로 마음이 오갈 수 있다는 착각 아닌 착각에 잠시 빠져들게 된다.
결국 그 팔 위의 짧은 순간은 우리가 흔히 ‘소통’이라 부르는 것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말과 표정으로 나누는 대화만이 소통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촉각과 진동, 서로의 체온과 속도를 가만히 견디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두 존재 사이엔 어떤 신호가 오간다. 달팽이는 오늘도 말없이 촉각을 흔들며 그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그리고 자신을 돌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리고 조용한 이 생명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건, 어쩌면 소통이란 속도가 아니라 정성의 문제라는 사실이 아닐까.
칼슘 섭취·습도 관리 잘하면 최대 10년 살아
수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아프리카왕달팽이는 통상 5년에서 10년까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육 환경이 쾌적하고 칼슘과 습도 관리가 잘 이뤄지면 그보다 더 오래 살기도 한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겉모습과 달리, 이 작은 생명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였던 셈이다.
패각이 깨진 그날의 소동은 이 생명체가 결코 ‘장식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껍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달팽이의 골격이자 방패이며, 수분 손실과 병원체 감염을 막아주는 최전선의 방어막이다. 껍질이 심하게 손상되면 탈수와 감염으로 이어져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무심코 건넨 손길 하나가 한 생명의 안위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 그 무게가 새삼 묵직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아프리카왕달팽이의 애완 목적 사육 자체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종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생태계교란종으로 분류되어 있어,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수입·사육·판매가 엄격히 제한되거나 금지되어 있다. 국내 규제는 일부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종이 생태계에 무해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위험은 ‘방생’이다. 현재까지는 한국의 겨울 기후 때문에 전국적으로 안정적인 정착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까지의 관찰에 근거한 추정일 뿐, 기후변화로 겨울이 짧아지고 있는 지금 이 가능성이 영원히 낮은 채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일부 지역에서는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 종이 왕성한 번식력으로 농작물과 자생 식물에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특히 식물 병원균과 일부 기생충을 옮길 수 있는 매개체로도 알려져 있으며, 심각한 생태 피해를 일으킨 사례가 다수 보고되어 있다.
또한 이 달팽이는 광동주혈선충이라는 기생충의 숙주가 될 수 있어, 날것으로 섭취하거나 맨손으로 만진 뒤 손을 씻지 않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광동주혈선충의 중간숙주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이 호기심에 만지고 입으로 가져가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 동시에 위생상 주의를 요하는 생물일 수 있다는 이중성, 이것이 외래종을 들이는 이들이 늘 기억해야 할 균형점이다.
그날 지인은 나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얘가 아무리 감당이 안 돼도 절대 밖에 풀어주진 않을 거야.”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키우다 힘들어 방생하려 한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고 한다. 하지만 방생은 유기와 다르지 않다. 낯선 땅에 놓인 외래종은 스스로 살아남지 못해 고통스럽게 죽거나, 혹은 예상치 못하게 적응해 토착 생태계를 교란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든 생명과 환경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는 선택이다. 감당이 어려워졌다면 전문 사육 농장이나 신뢰할 수 있는 분양처를 통해 새로운 보호자를 찾아주는 것이 유일하게 책임 있는 길이다.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그 작은 소동이 남긴 여운을 곱씹었다. 손에서 미끄러진 찰나, 우리는 한 생명의 연약함과 그 연약함을 감싸는 정교한 회복의 메커니즘을 동시에 목격했다. 패각의 균열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메워지겠지만, 그날의 당혹감과 미안함은 우리 마음에 조금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느리게 움직이는 생명일수록, 그 존재의 무게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우리에게 새겨지는 법이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1. https://www.a-ha.io/questions/4dd80f1c00400bfc9aa0b378caadae4c
2. https://ko.wikipedia.org/wiki/왕달팽이
3. https://namu.wiki/w/왕달팽이
4. 3. https://namu.wiki/w/달팽이/사육
4. https://18kenglish.com/ko/아프리카-왕달팽이-진화
5. https://www.cameronhouseschool.org/snail/
6. https://blog.naver.com/pooh3653/224273182417
7. https://blog.naver.com/wilddog33/223136366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