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개와 외면하는 닭 사이, 흔들리는 마음의 지도
헤르조그 명예교수가 들려주는 인간·동물의 불편한 진실
591만 반려동물 양육가구, 반려인 1,546만 명. 지난해 국내 관련 수치이다. 가히 반려견·반려묘·반려인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지구에는 수백만 종의 동물이 살아가지만, 그중 어느 한 종을 데려와 한 식구처럼 기르는 동물은 인간뿐이라고 한다. 야생에서 새끼 표범에게 젖을 물리는 사자나, 새끼 참돌고래를 거두어 키운 돌고래 같은 드문 예외가 있긴 해도, 반려동물을 들이고 보살피는 일은 거의 인간만의 습성이다.
그런데 같은 인간이 한쪽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가족처럼 끌어안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닭과 돼지를 아무렇지 않게 식탁에 올린다.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할 헤르조그 미국 웨스턴캐롤라이나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 혐오하는 동물, 먹는 동물』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다른 종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종종 논리에 어긋난다.”
저자가 어린 시절 들었던 새미라는 농장 소녀의 이야기는 이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새미의 집에는 너구리를 사냥하는 사냥개와, 집 안에서 마음껏 뛰놀던 보스턴 테리어 두 종류의 개가 있었다. 사냥개는 일하는 동물이었고, 보스턴 테리어는 식구였다. 같은 ‘개’라는 이름 아래 전혀 다른 대우를 받은 셈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가정에서 기르는 개는 대부분 단순한 반려견이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새미가 자기 삶에서 두 부류의 개를 대하던 방식만큼이나 복잡할 수 있다.” 우리 역시 한 마리 개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다른 동물에게는 차가운 무관심을 보내며 살아간다.
이 애정조차 때로는 우리가 만든 욕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책은 잊지 않고 짚는다. 완벽한 견종을 향한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유전 문제는 끔찍할 정도다. 인간동물학자(Anthrozoology) 제임스 서펠은 전체 새끼의 90퍼센트가 제왕절개로 태어나야 하는 잉글리시 불도그를 두고 “개 세계의 열차 탈선 사고”라고 표현했다. 더 귀엽고 더 사람을 닮은 외모를 향한 욕심이, 정작 그 동물의 몸을 망가뜨리는 역설을 낳은 셈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계산법
흥미로운 것은 이 사랑조차 꽤나 까다로운 계산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책에는 반려 보아뱀과 반려 고양이를 비교하는 대목이 나온다. 코스타리카 열대 우림의 보아뱀은 1년에 쥐 여섯 마리 정도면 충분히 살아간다고 한다. 반면 평범한 집고양이 한 마리가 한 해 동안 먹어치우는 고기는 약 20~25킬로그램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히 무게로만 따지면 고양이를 기르는 일이 뱀을 기르는 일보다 열 배 가까운 도덕적 부담을 지우는 셈이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안락사된 유기묘의 사체를 뱀에게 먹이로 주면 어떨까 하는 짓궂은 상상을 던지기도 한다. 모두를 위한 윈윈처럼 보이던 그 계산은,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고양이에게는 결코 적용하고 싶지 않은 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허망하게 무너진다.
“미국에서 고양이가 8000만 마리나 산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수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고양이 한 마리가 매일 고기를 2온스 섭취한다고 가정할 때, 모두 합쳐서 하루에 닭 200만 마리에 해당하는 살코기 약 450만 킬로그램을 소비하는 셈이다.”
이처럼 동물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이성과 감정이 끊임없이 줄다리기하는 영역이다. 한쪽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 작동한다. 영국에서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퍼센트가 대안이 없을 때는 의학 연구를 위한 동물 실험에 찬성했지만, 화장품 안전성 시험을 위한 동물 사용에는 단 7퍼센트만이 동의했다고 한다. 같은 동물이라도 그것이 쓰이는 목적에 따라 우리의 잣대는 확연히 달라진다.
그러나 그 잣대는 종종 일관성을 잃기도 한다. 대학 연구소의 생쥐들을 떠올려보자. 같은 건물 안에서도 정식으로 실험에 쓰이는 생쥐는 깨끗한 환경에서 관리받는 ‘좋은 생쥐’로 분류되지만, 우연히 복도를 떠도는 생쥐는 박멸 대상인 ‘나쁜 생쥐’가 되어버린다. 똑같은 종, 똑같은 생명임에도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쥐와 인간은 종간 친족이다.” 『비인간』에 따르면, “진화의 역사에서 오래전에 갈라졌지만, 이들은 여전히 99% 이상의 유전자를 인간과 공유하고 행동학적으로 유사하다. 이 생물학적 친족성은 우리가 쥐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학, 생리학, 행동학 등의 실험을 하는 핵심적 근거가 된다”라고 한다.
하지만 실험실의 기억은 각자가 다르다. 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미니 기요틴(guillotine, 단두대) 목덜미를 끼워 넣고 손잡이를 아래로 누를 때의 느낌, 단두 후에 버둥거리는 몸을 붙잡고 있을 때의 느낌, 머리 가죽과 두개골을 차례로 자를 때 가위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은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하 교수는 “래트에게 응답할 수 있도록 몸을 내놓는 ‘존재론적 열림’을 시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내 몸이 영향받지 않도록 애썼던 것 같다. ” 고백했다.
이성과 감정의 줄다리기를 설명하기 위해 헤르조그가 빌려온 비유 하나가 특히 인상 깊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우리 안의 이 갈등을 “이성적 기수가 타고 있는 감정적 코끼리”에 빗댄다. 코끼리는 몸집이 크고 대개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반면, 기수는 힘은 약하지만 영리해서 훈련을 통해 코끼리를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 혐오하는 동물, 먹는 동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사회심리학자 루시우스 카비올라와 발레리오 카프라로가 사람들에게 인간과 지능 높은 침팬지 가운데 한쪽만 구해야 하는 상황을 제시했다. 일부에게는 감정 대신 논리와 이성에 의존해 결정하라고 안내했더니, 예상과 달리 동물보다 인간의 생명을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오히려 강해졌다고 한다. 이성이 늘 동물에게 유리한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동물 학대라는 신화 다시 보기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동물 학대 경험이 있는 아이가 자라서 폭력적인 어른이 된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부분이다. 이른바 ‘링크(The Link)’라 불리는 이 이론은 학교 총기 난사범이나 연쇄살인범의 과거에서 동물 학대 전력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대중의 공포를 자극해 왔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한 연구팀이 학교 총기 사건의 위험 요인을 분석한 결과 가장 두드러진 요인은 총기에 대한 집착이었고, 괴롭힘 경험과 사회적 고립, 우울증 등이 뒤를 이었을 뿐, 동물 학대는 오히려 가장 관련성이 낮은 요인으로 나타났다. 무자비한 동물 학대의 상당수는 타고난 악인이 아니라, 훗날 평범한 시민으로 자랄 아이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다.
헤르조그는 이 신화를 부정한다고 해서 동물 학대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못 박는다. 동물 학대를 진지하게 다뤄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미래의 살인범을 예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손쉬운 인과관계로 공포를 부풀리기보다, 동물의 고통 그 자체를 직시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는 성별의 차이도 묻어난다. 책은 수백 편의 논문을 검토한 끝에, 여성이 대체로 남성보다 동물에게 더 마음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전한다. 다만 그 차이는 평균에서는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양극단, 즉 헌신적인 동물권 활동가나 가학적인 동물 학대자 같은 극단적인 인물군에서 더 뚜렷하게 갈라진다고 한다. 동물을 향한 마음의 결은 성별이라는 하나의 잣대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뜻이다.
식탁 위에서는 동물을 향한 인간의 신념과 현실, 윤리와 편의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 혐오하는 동물, 먹는 동물』은 먹는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순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묻게 한다. 사진=픽사베이
식탁 위의 모순,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
투계를 둘러싼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다. 저자는 투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체로 호감 가는 이들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투계라는 행위 자체는 정당화될 수 없는 시대착오적 잔혹함이라고 단언한다. 박사 학위를 위해 투계를 조사하던 시절, 투계장에 동행했던 한 국제앰네스티 직원은 최정상 투계꾼들과 어울려본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제가 보기에 투계의 도덕적 문제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치킨너겟 한 봉지를 만들기 위해 공장식 사육장에서 수많은 닭이 견뎌야 하는 고통을 떠올리면, 그 말을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닭 한 마리의 죽음을 두고 우리는 투계는 비난하면서, 매일 식탁에 오르는 치킨에는 무심하다.
채식과 육식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도살장의 참혹한 풍경에 충격을 받아 채식을 시작하고, 점차 동물권 운동에 몸담으며 신념을 굳혀간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건강을 이유로 채식을 시작했다가, 유기농 채소를 구하기 번거롭고 비싸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다시 고기를 입에 댄다. 신념과 습관, 편의 사이에서 우리의 식탁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제 그녀는 오늘날 미국에서 채식주의자보다 4배나 많은 전(前) 채식주의자 대열에 합류했다.”
책에 등장하는 짐 톰슨(수학을 전공하던 25세의 박사 과정 학생)의 일화는 신념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다. 동물권 잡지를 우연히 읽은 뒤 채식주의자가 된 그는 가죽 신발을 버리고, 끝내 자신이 아끼던 앵무새마저 새장 밖으로 풀어주기에 이른다. 새장 속 새를 바라보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마디는 “이건 잘못된 일이야”였다. 그는 새를 노스캐롤라이나의 잿빛 하늘로 날려 보낸 뒤 “기분이 좋았다”, “근사했다!”라고 털어놓았지만, 동시에 그 새가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려우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쑥스럽게 덧붙였다. 자신의 신념이 옳음을 입증하려는 열망이, 정작 다른 생명의 안위보다 앞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저자가 직접 찾아간 유타주의 동물 보호소 ‘베스트 프렌즈’는 이런 모순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리가 하나 없는 고양이, 목에 혹이 달린 개,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처럼 다른 곳에서는 거두기 힘든 동물들이 이곳에 모인다. 맨해튼에서 매년 몇 주씩 자원봉사를 하러 온다는 78세의 한 노년 봉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베스트 프렌즈에 오면 큰 포옹을 받는 기분이에요.” 이곳의 철학을 만든 이들 중 한 명은 자신들이 따르는 원칙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동물을 구할 수는 없지만, 우리 보살핌 속에 들어온 동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생명을 구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손이 닿는 만큼은 책임지겠다는 이 소박한 다짐이야말로 모순 속에서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이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에 대한 질문이다. 채식주의자라면서 가끔 고기를 먹는다고 멋쩍게 고백하는 사람들, 수탉을 진심으로 아낀다고 말하는 투계꾼들, 순종을 향한 욕심 때문에 유전병을 안고 태어나는 강아지를 자꾸만 만들어내는 사람들. 저자는 처음에는 이런 모순들이 위선처럼 느껴져 불편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오랜 연구 끝에 그는 생각을 바꾼다. 이 모순은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인간이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라는 것이다.
생태에세이를 써온 입장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 혐오하는 동물, 먹는 동물』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는 자연과 동물을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의 범위를 손쉽게 확장하지 못한다. 멸종 위기종을 걱정하면서 마트에서는 값싼 고기를 집어 든다. 반려견의 건강을 위해서는 비싼 사료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공장식 축산의 풍경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것이 비겁함이라기보다, 우리가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할 인간 조건이라는 저자의 시선은 묘하게 위안이 되면서도 동시에 따끔한 질문을 남긴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 혐오하는 동물, 먹는 동물』이 죄책감만을 안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솔직해지자고 권한다. 우리 안의 모순을 부정하거나 숨기는 대신, 그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더 나은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일관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여지를 얻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 혐오하는 동물, 먹는 동물』을 우리말로 옮긴 옮긴이 김홍옥 씨 역시 비슷한 결의 통찰을 전한다. 그는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보다, ‘우리 각자가 이미 동물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를 차분히 돌아보도록 만드는 책”이라고 평하며, 저자의 관심이 새로운 규범을 세우는 데 있지 않고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탐구하는 데 있다고 짚는다. 도덕적 지침서가 아니라 우리의 도덕 감각이 형성되는 조건을 파헤치는 비판적 탐구서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이 책을 단순한 동물 윤리 입문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비추는 거울로 읽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이 묻는 것은 동물에 관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관한 질문이다. 우리가 어떤 동물을 사랑하고, 어떤 동물을 두려워하며, 어떤 동물을 먹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일관된 인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불완전함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용기,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 혐오하는 동물, 먹는 동물』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이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1. 『우리가 사랑하는 동물, 혐오하는 동물, 먹는 동물』(할 헤르조그 지음│김홍옥 옮김│에코리브르 │520쪽│2026)
2. 『비인간』(김상민 외 8인 지음│사월의책│376쪽│2025)
3. https://www.dailyvet.co.kr/news/industry/2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