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들을 관찰하는 것만큼 그들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식물들이다. 정확한 대사가 기억나진 않지만 대체로 이런 맥락이었다. 바로 최근 개봉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침묵의 친구」(독일, 일디코 엔예디 감독)이다. 양조위 배우는 영화에서 신경과학자 토니 교수 역을 맡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독일의 한 대학에 격리된 토니 교수. 영화는 2020년의 토니의 이야기와 1972년 사랑과 식물을 키워가는 한스(엔조 브롬)의 이야기, 1908년 교내 첫 여대생 그레테(루나 웨들러)의 서사를 교차시킨다. 독일 대학 식물원의 거대한 은행나무를 축으로 시공간이 섞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월과 언어를 넘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통해 깊은 여운과 신비로운 호기심을 전한다. 성차별도, 이념도, 팬데믹도 식물과의 소통을 방해하지 못한다.
「침묵의 친구」가 던지는 질문은 과연 ‘식물도 의식이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특히 영화 속 테드 강연으로 소개된 ‘미모사 푸디카’(Mimosa pudica: 신경초·터치미낫)가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미모사 푸디카는 어떤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디코 엔예디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식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우연히 만나는 접점이 생겨 우리 눈에 보이게 된 것뿐인데, 그걸 인간에게 반응한다고 말하게 되는 거죠”라며 “물론 인간의 여러 가지 조건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침묵의 친구」를 볼 때만큼은 관객분들이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면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신경계 아니라 전기신호·세포 내 수분압 변화
실제로 미모사 푸디카는 잎을 건드리면 즉시 오므라드는 빠른 운동으로 유명한 식물이다. 이러한 반응은 동물처럼 신경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기신호와 세포 내 수분압 변화(팽압)로 일어난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반복 자극에 점차 반응을 줄이는 ‘습관화’(habituation) 현상을 근거로 식물이 학습이나 기억과 유사한 정보처리를 한다고 간주한다. 영화 속에서도 그럴 수 있음을 넌지시 내비친다.
하지만 주류 식물생리학계는 미모사 푸디카의 반응을 곧바로 의식으로 보지는 않으며, 현재로서는 복잡한 생리적 신호처리와 적응 행동으로 해석하는 입장이 우세하다. 즉 미모사 푸디카는 식물 의식의 증거라기보다 뇌 없이도 환경 정보를 감지·저장·조절할 수 있는 생명체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논의된다.
<네이처>에 실렸던 「미모사 푸디카에서 칼슘 매개 급속 운동은 초식성 곤충에 대한 방어 기전으로 작용한다」 논문에 따르면, 잎을 빠르게 오므리는 행동은 단순한 반사가 아니라 곤충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전략이다. 즉, 건드리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잎을 재빨리 접는 움직임이 생존에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식물은 장거리를 이동하는 전기 신호를 이용해 국소적인 자극 정보를 멀리 떨어진 부위와 공유한다. 연구진은 식물 내부에서 칼슘 이온(Ca2+) 변화와 전기 신호가 함께 작동해 이러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유전자 편집 기술 등으로 잎을 잘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개체는 초식성 곤충의 공격을 더 많이 받았다. 이는 신경초가 외부 자극을 감지한 뒤 내부 신호를 빠르게 전달해 몸을 움직이고, 이를 통해 해충 피해를 줄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독일 대학에 머물게 된 신경과학자 토니 교수(양조위 배우)는 텅 빈 캠퍼스에서 오래된 은행나무와 마주하며 낯선 교감을 시작한다. 이성의 세계에 살던 그는 식물과 침묵 속에서 소통하며 인간 중심의 사고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무 안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있다
과학적인 내용 외에도 「침묵의 친구」는 우리가 더 이상 홀로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관계가 발전하는 모습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 작은 위안이 된다. 인간 사회에서와 같은 소통의 방식은 아니지만, 식물은 분명 무엇인가 역동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나무 안에 말이다!
『초록 감각』의 저자 캐시 윌리스 영국 옥스퍼드대 생물학과 생물다양성 교수는 식물과 교감하면서 “내 주위 환경이 일종의 평행우주처럼 느껴졌다”라며 <사이언스 저널>에 소개된 한 연구를 인용하며 “식물 그 자체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거나 변화를 일으켜 건강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식물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 경험(이 경우 식물을 보는 것)이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관점이었다”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정규 식생 지수’(NDVI, Normalized Difference Vegetation Index)에 따르면, “거주지 주변이 녹색일수록 우울증도 덜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한다. 윌리스 교수는 “연령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문화적 차이와 같은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거주 환경이 녹색일수록 정신장애 진단 및 치료 비율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라며 “특히 60세 미만 여성 집단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거나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에 뚜렷한 효과가 나타났다”라고 적었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이 우울하다면, 나무가 많은 곳으로 가보자.
『초록 감각』에는 좀 더 구체적인 녹지의 효과가 등장한다. 첫째, 피해 절감이다. 대기 오염, 소음, 열차단 등이 있다. 둘째, 역량 회복이다. 주의력 회복과 생리적 스트레스 해소이다. 셋째, 신체 활동 장려와 사회적 결속 촉진 같은 역량 강화다. 이 같은 내용은 일군의 과학자로부터 제시됐다. 다시 말해, 녹지가 어떻게 인간의 건강을 개선하는지에 대한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신현철 순천향대 교수는 다윈이 식물과 동물을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생명체로 보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다윈은 식물도 자극을 감지하고 움직임을 조절하는 기능을 지녔다고 보고, 특히 뿌리 끝을 동물의 뇌에 비견하며 주목했다고 전했다.
모든 생명체들은 태초에 하나였을까
식물이 인간에게 침묵의 친구인 이유는 뿌리가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바로 찰스 다윈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생물 모두는 자신들의 화학적 조성, 난핵포, 세포로 이루어진 구조, 그리고 성장과 번식의 법칙 등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한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한 번이라도 생존했던 모든 생명체들은 어떤 하나의 최초의 유형에서 유래했고, 이 유형이 처음으로 숨을 쉰 생물로 바뀌었을 것이라는 점을 대응관계로부터 나는 추론할 수가 있다.”
『다윈의 식물들』을 쓴 신현철 순천향대 교수(식물학)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즉, 다윈은 식물과 동물이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진화론적 관점을 제시했다. 다윈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생명체를 이루는 지질·단백질·탄수화물 등 화학 성분의 유사성, 세포 구조의 공통성, 생장과 번식 과정에 작동하는 기본 원리의 닮은 점 등을 들며 생명 세계 전체가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았다.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다윈은 식물에도 동물과 비슷한 기능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연구를 확장했다. 특히 식충식물처럼 외부에서 양분을 얻는 식물에 주목했으며, 식물 내부에도 자극을 감지하고 움직임을 조절하는 중심 기능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는 뿌리 끝, 특히 어린뿌리의 정단부(頂端部: 맨 꼭대기 부분)가 주변 환경을 감지해 다른 부위의 운동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고, 이를 동물의 뇌 기능에 비견하기도 했다.
영화 「침묵의 친구」는 고요함 속에서 견디는 법을 보여준다. 그래서 ‘침묵’의 친구가 아닐까 한다. 먼저 자신이 자신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거대한 은행나무는 주인공의 토사물도 받아주었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버텨오며 풍성한 잎들을 드리웠다. 진정한 친구는 그렇게 함께 있어주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1. https://www.cineplay.co.kr/ko-kr/articles/27212#google_vignette
2.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106-x?utm_source=chatgpt.com
3. 『초록 감각』(캐시 윌리스 지음 | 신소희 옮김 | 김영사 | 364쪽)
4. 『다윈의 식물들』(신현철 지음 | 지오북 | 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