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수 준비 과정과 현실적인 경험담] EP1. 해외 연수에 대한 환상과 현실 - 해외 포닥을 결심하기까지
해외 연수 준비 과정과 현실적인 경험담 연재를 시작하며 해외 박사후연구원(Postdoctoral Fellow)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교수 컨택, J-1 비자 발급, 미국 주거 계약, 출국 준비, 그리고 미국 도착 후 초기 정착까지의 실제 경험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직접 겪은 시행착오와 해결 과정을 중심으로 예비 해외 연구자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
해외 포닥을 가도 되는 사람과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
많은 대학원생들이 그렇듯, 나 역시 대학원 시절에는 해외 포닥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졸업하면 괜찮은 해외 연구실에 가서 경력도 쌓고, 좋은 논문도 엄청 쓰고, 멋진 연구도 하는 그런 생각을 종종 했더랬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잘만 나가는지, 나만 빼고 세상 사람들한테는 해외 진출이 참 쉬워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쉬워 보이는 해외 진출은 사실상 그만한 '스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훌륭한 논문 실적이나 영향력 있는 추천인이 있어야 했다. (물론 모든 해외 포닥이 한두 가지 정형화된 경로로만 해외에 나가는 건 아니고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지만, 막상 지원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당시, 자랑할 만한 스펙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저 모든 대학원생이 원하는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수많은 대학원생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졸업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 짧은 한마디에 그간의 우여곡절을 다 담기는 힘들지만 참 다사다난했다. 오죽하면 졸업 전 마지막 6개월 동안에는 "나는 앞으로 다시는 연구 안 한다!"라고 굳게 다짐까지 했을까. 나는 연구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해외 포닥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 선을 긋고 있었다.
디펜스를 마치고 무얼 할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대학원 시절 알게 된 분의 소식을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원에 입학을 했는데, 그분은 학교에서 연구소로 옮겨서 대학원 생활을 이어가고 계셨다. 옮겨간 곳의 PI(책임연구원) 분도 마침 내가 대학원 시절 뵌 적이 있는 분이셨다. 반가운 마음에 오랜만에 연락해서 안부를 물었고, 그 인연이 닿아 연구소에서 포닥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다시는 연구를 안 하겠다는 나의 다짐과는 다르게 그렇게 또 바로 연구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포닥이었다.
정출연(정부출연연구기관)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포닥 계약 기간이 최대 5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어쨌든 때가 되면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안일함과 불안함이라는 모순적인 마음가짐이 공존하던 그때 나에게 또다시 미래를 고민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국내에서 포닥 생활을 하면서도 '과연 내가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게 맞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기에, 이번에는 정말 연구를 접고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들고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 전공과 딱 맞는 분야를 찾아야 했고 뽑는 인원 자체가 극소수였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나의 발목을 잡은 건 바로 나이였다. 나는 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그로 인해 남들에 비해 나이가 생각보다 많았었다. 심지어 이런 고민을 안고 국내 학회에서 진행하는 Career development session에 갔었는데 ‘나이 많으면 누가 뽑겠냐, 아무 데서도 안 뽑는다’는 말을 듣고는 그저 열심히만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왜 나를 억까하는 것인지 억울해 했더랬다.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
사방이 막힌 것 같던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국은 나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좁은 곳이다. 나에게 기회를 주는 더 넓은 곳으로 가보자!!’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내가 아직 제대로 된 연구를 해보지 못해서, 그냥 내가 연구와 맞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기회가 많은 더 넓은 무대로 나가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해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외국에 나가서 연구해 봐야 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해외 포닥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해외 포닥이라고 해서 무조건 미국만 있는 건 아니다. 요즘은 유럽으로도 많이 가는 추세다. 하지만 나 역시 대다수가 선택하는 미국으로 방향을 잡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의사소통의 현실적인 문제였다. 실험실에서 일할 때는 어떻게든 통하겠지만 일상생활이 걱정이었다. 커피도 사 마셔야 하고, 식당에서 주문도 해야 하고, 정착하려면 말을 하고 알아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영어 외에 다른 언어는 아예 까막눈에 까막귀였으니까.
둘째, 미국이 확실히 연구실과 기관의 선택지가 넓다는 장점이 있었다. 대학교의 폭도, 랩실의 폭도 넓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연구 분야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곳도 훨씬 많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은 예전에 교환학생으로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공부해 보고 싶었다 (다행히 북유럽에서는 언어의 어려움이 딱히 없었다).
그렇게 미국으로 연수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갑자기 막막해졌다.
그 이유는 맨땅에 헤딩하듯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족, 친인척, 친구, 선후배 등 하다못해 어떻게든 아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었는데, 나에게는 그야말로 인맥이 '전무'했다. 가족과 친인척은 물론 친구들도 모두 한국에 있었고, 거쳐 온 대학원 랩실과 연구소 랩실 모두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랩이라 유학을 간 선후배가 아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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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와는 다르게 용기가 줄어들어 가서 그런 걸까.
'지인 하나 없이 먼 타국에 나가서 과연 정착이나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일단은 합격을 해야 미국을 가든 말든 하는 거고, 아직 붙지도 않았는데 이런 걱정부터 하는 게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우선 랩실을 알아보는 것부터 천천히 시작하기로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미국 포닥을 가고자 마음먹었다가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가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 셈이다. 환상 가득했던 마음이 차가운 현실과 부딪치며 치열하게 빚어낸 나만의 최종 결론이었다.그렇게 나는 해외에서 연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지금 해외에서 열심히 포닥 생활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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