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서 과학적 낙관주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가장 최근에 본 과학영화인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도 과학이 지구를 구한다는 낙관론이 있었습니다. 전작 <마션> 역시 과학이면 다 됩니다. 두 영화는 모두 앤디 위어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고, 소설도 영화도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과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비해서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소설 <아르테미스>는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영화로도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아르테미스>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사람으로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한국 사이언스 픽션 장르의 떠오르는 작가인 김초엽의 소설을 하나하나 읽어 보고 있는 중인데요. 문득 저는 <아르테미스>의 주인공과 김초엽 소설의 인물들이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테미스>의 주인공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이민자이고, 여성입니다. 달에 있는 휘황찬란한 도시에 살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짐꾼이며, 그마저도 수입이 충분치 않아 밀수까지 겸하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갑니다. 삶은 고달프고 세상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김초엽의 인물들 역시 대다수 여성이거나 여성이라는 느낌을 주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과 어딘가 맞지 않아 소외된 ‘변두리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는 문제가 있다면 과학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명쾌함을 결국 놓지 않지만, 김초엽의 소설은 그러한 통쾌함이 덜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책 표지 출처: 알라딘 www.aladin.co.kr)
“숨그림자”와 “인지 공간”
<방금 떠나온 세계>는 김초엽 작가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입니다. 사실 소설에 나오는 과학적 아이디어들이 앞으로의 미래에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정교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가설을 구축하기보다는, 과학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가장 진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효율의 시대에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숨그림자”와 “인지 공간”입니다. 극강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언어나 지식 시스템이 등장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요? “숨그림자”에서는 지구의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대화하는 존재가 나오는데, 이들은 공기에 떠다니는 ‘입자 언어’를 통해서 매우 정제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합니다. 해석의 모호함은 사라지고 누구에게나 정확한 정보가 손실 없이 전달되지요. 반면 지구의 인간은 발화 이외에도 후각 언어를 사용합니다. 설명이 불가능한 분위기와 감정, 기억을 통째로 전달하는 비효율적인 언어 시스템입니다.
“인지 공간”에서는 공동의 인지 공간을 물리적 실체로 만들어서 그곳에 인간의 모든 지식을 쌓아두고 관리하는 미래 인간 사회를 그립니다. 저장 공간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필요 없는 정보들은 주기적으로 삭제되며, 사람들은 공동 인지 공간 속에 살아남은 정보의 핵심만을 신봉하며 살아갑니다. 반면 신체적 한계로 인해 공동 인지 공간에 접근할 수 없는 주인공은, 공동 인지 공간이 인류의 지식과 세상의 비밀을 모두 담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공간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야, 모두가 세상에 대한 각자 몫의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있어야만 마침내 전체를 만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소설의 끝에서 세상은 바뀌지 않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주인공들이 사회를 향해 변화를 외쳐도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꿋꿋하게 혼자서 행동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단 한 사람의 기억 속에만 겨우 남게 될 뿐입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어렵다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낯선 존재(‘로키’)와의 관계 맺기는 대체로 낙관적입니다. 차별의 기억이 드문 엘리트 백인 남성 주인공은 나와 아주 다른 타인과 좋은 관계를 당연히 맺을 수 있으며, 또 그 과정이 수월할 거라는 낙천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김초엽의 주변인들은 절대 쉽게 받아들여지는 법이 없으며, 관계를 쌓는 과정마다 짙은 소외와 균열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영웅적이고 낙관적이고 지극히 주류의 시각에서 쓰인 과학소설은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제시하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지성을 무기로 거대한 성공을 거둡니다. 외계를 정복하며 은하 제국을 건설하는 이야기들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김초엽의 과학소설은 현대 사회의 풀리지 않는 난제인 소외와 관계의 문제를 다루며, 당장 제시해 줄 수 있는 속 시원한 답이 없어 극도로 비효율적입니다.
과학과 효율이 전부인 세상에서는 어려움이 설 자리가 없다
효율이 가장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고, 과학이 정답을 줄 수 있을 거라고들 합니다. 더욱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일하는 것도, 쉬는 것도, 심지어는 배움의 영역에서도 사람들은 전례 없이 빠르게 달리고 있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어려움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 쉽게 이겨내야만 하는 것. 그리고 빨리 처리해야 할 것.
마치 있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존재인 어려움은 이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이 극도의 효율 사회 속에서 비효율의 극치인 소설, 특히 사이언스 픽션과 같은 사변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따라서 굉장히 쓸모없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증발하기 마련입니다.
소설 읽기는 생각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입니다. 비록 다소 느릴 수는 있지만요.
책의 문장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타자의 세계를 힘들여 상상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정면에서 맞아 보기도 하고. AI가 주는 정보는 즉각적이지만,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쌓은 지식은 오래 남는 내 것이 됩니다.
정답을 주는 도구보다 때로는 정답 너머의 사람을 보게 만드는 비효율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소중합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저는 문득 ChatGPT에게 김초엽 작가의 <방금 떠나온 세계>의 서평 아웃라인을 써 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더 창의적이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까 봐 걱정을 좀 했습니다. 제가 받은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평은 먼저 『방금 떠나온 세계』가 미래 사회와 첨단 기술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중심에 둔 SF 소설집이라는 점을 소개하고, 이어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핵심 주제인 ‘다름에 대한 이해와 공존’, ‘기술 발전 속 인간성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다음 김초엽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와 따뜻한 시선, 과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독자에게 몰입감을 주는지 평가하고,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메시지를 예시로 들어 자신의 감상을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단순한 미래 이야기를 넘어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점과,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 작품인지 종합적으로 정리하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아직은 너무 두루뭉술하죠?
어쨌든 인간이 할 일이 좀 더 남아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적어도, 이제까지의 논의가 여전히 비효율적이고 결국은 인공지능이 답을 다 찾아주는 세상이 온다고 할지라도.
사이언스 픽션을 읽으면 과학자라는 직업이 뭔가 굉장히 멋져 보이거든요.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 읽기는 과학 하는 사람들의 자존감에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