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데이터 사이에서] 4화 연구사에도 등급이 있다: 나는 지금 어떤 등급인가?
비공식 서열
아무도 공식적으로 말한 적 없다. 어떤 규정에도 적혀 있지 않고, 인사 서류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소 안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다 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비공식 분류 체계가 있다.
연구사에는 세 종류가 있다.
연구조, 연구기반조, 그리고 땜빵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공식 분류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연구사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때로는 술자리에서 격하게, 때로는 포장 한켠에서 쓸쓸하게 통용되는 비공식 서열이다. 그러나 이 분류가 허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뼈 아프도록 현실적이다.
연구조는 말 그대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신품종을 개발하고, 논문을 쓰고, 학회에서 발표하며, 연구비 과제를 수주한다. 연구소의 꽃이자 존재 이유. 성과 보고서의 1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들이다.
연구기반조는 그 연구가 가능하도록 기반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시설을 짓고, 장비를 관리하고, 포장을 정비한다. 없으면 연구가 안 되는데, 있어도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이다.
땜빵조는… 설명이 조금 복잡하다. 정확히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연구소 안에서 오래 있다 보면 누가 그쪽인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본인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다들 알고 있는데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는, 그런 영역이다.
나는 이 비공식 분류를 처음 들었을 때,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나는 어디에 속하나 생각했다. 그 잠깐이 꽤 길어졌다.
이미지 출처: ChatGPT 생성 그림
공대생, 도면 앞에 서다
공과대학 출신이 농업연구사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간단하다. 연구시설 관련 업무가 줄줄이 따라온다. 연동하우스 신축 공사, 온실 환경제어 시스템 점검, 농업용 수리시설 토목, 심지어 관사 리모델링 건축까지. 공대 출신이라는 사실과 농업연구에 서툴 거라는 편견 때문인지 몰라도, 어디선가 반드시 그쪽으로 손이 뻗어온다.
나는 미생물을 전공했다. 배지를 만들고 균을 배양하고 토양 미생물 군집을 분석하는 것이 내 세계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연구소에 들어온 후로 내 책상 위에는 건축 도면이 쌓이기 시작했다. 연동하우스 신축, 연구소 내 아스콘 포장, 노후 관사 신축까지.
나는 속으로 외쳤다. 저는 미생물입니다. 균입니다. 흙 속의 세계를 연구합니다. 콘크리트와는 전혀 다른 분야입니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았다. 공대 출신이니까 이런 것도 알겠지, 라는 논리 앞에서 신입 연구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도면을 펼쳐놓고 나니, 정말로 어느 정도는 읽혔다. 그게 더 억울했다. 아예 못 읽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한번은 시공업체 소장님이 도면을 펼쳐놓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연구사님, 이 부분 스팬 간격 이렇게 가도 되는 거 맞죠?" 나는 잠깐 침묵했다. 미생물 배양기의 온도 편차라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데, 하우스 골조 스팬 간격이라니. 결국 옆팀 시설 담당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 뒤에야 답했다. 소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나는 전화를 끊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 균이 아니라 철골을 걱정하고 있구나.
그렇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연구기반조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기반을 만드는 사람의 계절
연구기반조의 삶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재미있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춥던 낡은 관사가 새롭게 신축되어 팀원들이 따뜻하게 지낸다고 고마워할 때, 낡은 환경제어 시스템을 교체하고 나서 온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만족감.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의 즐거움은 분명히 있었다. 완공된 하우스의 비닐이 바람에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한참을 서서 구경했다. 이런 것도 나름 뿌듯할 수 있구나, 하고.
문제는 성과 보고서였다.
연말이 되면 각자 한 해의 성과를 정리한다. 논문 편수, 품종 출원 건수, 연구비 수주 금액. 연구조 선배들의 칸은 촘촘하게 채워지는데, 내 칸은 번번이 헐거웠다. 온실 하나를 지었다는 것, 관사 화장실 방수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 하우스 골조 공사를 기간 내에 완료했다는 것. 이것들은 연구 성과 칸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느 해 성과 발표 자리에서 선배가 신품종 개발 과정을 슬라이드 가득 넣어 발표하는 것을 보며, 나는 내 발표 자료를 내려다봤다. 제목은 '관리동 증축 및 시설 현대화 사업 추진 현황'이었다. 슬라이드에는 공사 전후 사진과 예산 집행 내역이 있었다. 발표가 끝나자 팀장이 말했다. "수고했어요. 기반이 튼튼해야 연구가 되죠." 위로인지 평가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대로 가면 나는 연구기반조로 정착하는 건가. 미생물은 언제 하는 건가. 나는 균을 키우려고 이 길을 선택한 건데,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건 건물이잖아.
낮과 밤이 다른 사람
결심한 것은 그 겨울이었다. 낮에는 연구기반 업무를 하더라도,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 미생물 연구를 이어가기로 했다. 농업미생물 선발 및 보급 연구. 토양에서 유용 미생물을 발굴하고, 그것을 농업에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농민에게 보급하는 연구였다. 내 전공의 핵심이었고, 내가 여기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실험실 한 귀퉁이를 빌려 소규모로 시작했다. 토양 샘플을 채취하고, 배지를 만들고, 균을 분리하고, 특성을 분석했다. 퇴근 후 혼자 실험실에 남아 균 배양 상태를 확인하고, 출근 전 아침에 들러 데이터를 기록했다. 낮에는 도면을 보고 저녁에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생활. 이 이중생활이 꽤 오래 이어졌다. 어떤 날은 오전에 골조 공사 감리를 나갔다가, 오후에 안전모를 벗고 흙 묻은 손을 씻은 뒤 곧바로 배양기 온도를 확인하러 갔다. 같은 사람인데 완전히 다른 하루를 두 번 사는 기분이었다.
동료들이 가끔 물었다. "아직도 그 미생물 하고 있어요?" 뉘앙스가 묘했다. 응원인지, 신기하다는 건지, 좀 그만하지 그러냐는 건지. 나는 "네, 하고 있습니다" 하고 짧게 답했다.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기 시작하면 길어지고, 길어지면 서로 민망해질 것 같았다.
시설 업무 틈틈이 모은 데이터로 작은 논문 하나를 완성한 건 그로부터 2년 후였다. 임팩트 팩터가 높은 저널은 아니었지만, 내 이름이 저자란에 올라간 논문이었다. 그것도 미생물 분야 논문이. 논문 게재 확정 메일을 받던 날, 나는 혼자 실험실에서 주먹을 살짝 쥐었다. 아무도 없었다. 자축할 사람도, 박수를 쳐줄 사람도. 그냥 나 혼자, 배지 위에 자라고 있는 균들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날 실험실 불을 끄고 나오면서, 오랜만에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경계 위에서
연구기반조에서 연구조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완전히 넘어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시설 관련 업무가 들어오면 맡아야 하고, 도면을 봐야 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제는 낮에 도면을 보고 저녁에 현미경을 봐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안다.
연구사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 몇 조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연구기반조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하기엔 이르고, 연구조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엔 부족하다. 아마 지금은 그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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