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인터뷰”는 BRIC과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함께 만들어 가는 기획 인터뷰로, 이번 주제는 ‘with 해외포스닥’입니다. 해외 포스닥 준비 과정부터 귀국 후 국내 정착까지, 연구자의 생생한 경험과 현실적인 조언들을 진솔하게 전해드립니다. (BRIC 운영진)
BRIC x 과커 <톡톡인터뷰> #그림장
연구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브릭 톡톡 인터뷰의 그림장입니다. 오늘은 카이스트 정창욱 교수님을 모시고 인간 뇌 발생 연구와 그 여정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Q. 교수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간신경유전학을 연구하며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는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정창욱입니다. 저는 사람의 뇌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발생 연구는 보통 쥐나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많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과 매우 다른 발생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이런 모델들로 다 캡처되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 인간의 뇌 그 자체에서 발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다양한 유전학적 툴을 활용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발생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의 DNA에 새겨지는 '모자이크 변이'를 계통 마커(lineage marker)로 이용하여 발생 과정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비전공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통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자주 드는 비유가 오토바이와 자전거인데요,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둘 다 손잡이가 있고 바퀴도 두 개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에는 자전거와 달리 엔진이 있고 배기구가 있고 전혀 다른 부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엔진 부품의 조립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전거라는 모델을 가지고는 우리가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마우스 모델로 밝혀내기 힘든 인간만의 발생학적 이상을 찾기 위해, 인간의 뇌에서 직접 모자이크 변이를 통해 발생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해외 포닥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로 해외 포닥을 결심하게 되었는데요, 국내에서 쭉 연구하면서 성공하는 케이스들도 종종 봐왔고 그리고 저도 결혼을 해서 가족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하면 국내에 머무르면서 연구를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해외 포닥 경험이 있을 때 더 좋은 논문을 퍼블리시할 가능성이 컸고, 연구자로서 자리를 잡는 데에도 해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계속 안정적으로 연구자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연구를 이어 나가려면 해외를 한 번 경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최종적으로 해외 포닥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 해외 포닥을 결심하시고 나서 어떤 준비들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해외 포닥을 가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건 우선 '동기(motivation)'였는데요. 저의 경우는 국내로 돌아왔을 때 안정적으로 제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 해외 포닥이 그 당시에는 꼭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이유를 가지고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몇 가지 기준을 세웠는데요, 우선 과학적으로는 인간 뇌 발생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human tissue를 다루는지, 그리고 그 당시 한창 붐이 일던 생물정보학적 툴을 이용하고 배울 수 있는 랩인지를 따져서 랩을 골랐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제가 국내로 돌아올 때 좋은 논문을 써서 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그 랩에서 좋은 논문이 많이 나오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 랩에 들어갔을 때 나도 그 논문을 쓸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랩 전체의 CNS(Cell, Nature, Science) 논문 편수'가 아니라 '구성원 1인당 CNS 논문 편수'를 봤습니다. 한 랩에서 에이스만 계속 좋은 논문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 PI가 모든 구성원에게 골고루 좋은 논문을 쓸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다양하게 좋은 논문을 내는 그런 랩을 선택하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 외적으로는, 환경적으로 미국으로 가다 보니 무엇보다 '안전한 지역인가'가 중요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생활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인 것 이외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정말 디테일하게 많은 것을 고민하시고 가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사람 한 명당 얼마나 퀄리티 높은 논문을 썼는지, 그리고 특정 에이스에게 몰리지 않는지 이런 것도 보셨다는 게 굉장히 인상 깊네요. 포닥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이런 디테일한 꿀팁들이 많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Q. 해외 포닥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예상과 달랐던 점이 있었나요?
일단 저는 논문을 내고 나서 해외에 있는 PI들한테 제 레터와 CV를 보내면 그래도 반응이 올 줄 알았는데, 답장조차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제가 PI가 되어서 생각해 보면 워낙 그런 메일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하나하나 답장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지만, 처음 해외 포닥을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되게 당황스럽고 상처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랩을 최대한 많이 리스트업해 두고, 첫 번째 티어 랩들에 먼저 보낸 뒤 반응이 없으면 두 번째 티어로 넘어가 단계적으로 지원하고, 이렇게 하면 마음의 안정감을 찾으면서 차근차근 지원을 시작할 수 있다고 조언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상심하지 말고, 계획을 가지고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 지원하라는 말씀이네요.)
Q. 해외 포닥을 시작하고 나서의 삶도 궁금해요
일단 랩 생활 자체는 랩 바이 랩(Lab by lab)이겠지만, 한국은 보통 사수와 부사수가 있고, 가르쳐 주는 역할과 배우는 역할이 있고, 선후배 관계가 좀 뚜렷한 편이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그런 것 없이 정말 수평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사수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부사수가 될 수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었어요. 실제로 학부생 중에 웨스턴 블롯(Western blot)만 엄청 열심히 해서 그 분야의 달인이 된 친구가 있었는데요, 저는 놀랍게도 웨스턴 블롯을 많이 안 해보고 간 상태였는데, 그 학부생 친구에게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그런 것이 되게 자연스러워요. 처음에는 이런 수평적인 구조가 정말 놀라웠고, 그리고 랩 미팅이나 세미나를 할 때, 발표 중간중간 끊고 물어보는 문화가 있어요. 한국은 다 듣고 나서 물어보는 문화인데, 미국은 중간중간 바로 치고 들어와서 물어보고, 그걸 또 바로바로 피드백해서 답변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렇게 오히려 생각날 때 바로바로 질문하고 답변받는 게,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과 해외 포닥 생활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잘 맞으셨나요?)
한국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처음에 미국에 와서는 '어? 이 학부생이? 되게 당돌하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학부생이 자기 주장도 되게 세고, 제가 말하는 것에 대해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토를 단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으로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문화적 차이가 극복되고 나서는 누구와도 자유롭게 토의할 수 있게 된 것 같고, 저는 과학적으로 사고를 하는 데 있어서는 미국식이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Q. 그곳에 적응하기까지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랩에 들어가기 전부터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들어갈 랩이 정해지고 나서 그 랩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 파악하고, 그 랩에서 니즈가 있지만 구성원들이 잘 못하거나 비어 있는 영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랩이 정해진 후에 한국에 있으면서도 계속 그 랩과 소통하며 '내가 무엇을 배워 갔으면 좋겠는지' 등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고, 실제로 한국에서 그런 기술들을 배워서 갔습니다. 제가 배워 간 기술 중 특히 'in utero electroporation'이라는 되게 손이 많이 가고 연습이 많이 필요한 기술인데, 당시 랩에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가서 바로 셋업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카드를 가지고 가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던질 수 있는 카드가 있으면, 나중에 그 사람들과 '카드 교환'이 되거든요. 그러면서 공동 연구가 이루어지고 시너지가 납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많이 준비해 갔던 것 같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한 가지 되게 당황스러웠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분야를 바꿔서 포닥을 가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런 일을 겪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마우스 모델링을 하던 사람이었고, 자폐 마우스 모델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신경생리학적 분석을 하던 사람이었는데요, 그 랩에 가서는 실제 휴먼 데이터나 휴먼 샘플을 가지고 분석들을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주제를 기대하고 교수님과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장 처음에 교수님이 꺼낸 프로젝트는 아니나 다를까 오티즘(Autism, 자폐) 마우스 모델링을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그 랩에도 마우스 모델이 있었는데, 그걸 분석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그걸 안 하려고 이 랩에 지원했던 건데, 분야를 바꿔서 간다면 이런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서로 기대하는 바가 다를 수 있거든요. PI도 다른 분야의 연구자를 뽑는 이유가 그 분야를 자기 랩에서 더 잘하고 싶어서 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조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행히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ㅎㅎ) 그 모델링을 할 때 데이터가 다 Negative로 나와서 그 프로젝트가 빠르게 접혔습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어서,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주제로 순조롭게 넘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PI는 좀 실망했겠지만, 나중에 또 좋은 논문을 냈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히 만회했다고 생각합니다.
Q. 해외 포닥 경험이 교수님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은 소통하는 방식이 많이 수평적으로 바뀌었다는 점, 제 사고를 크게 바꿔 놓은 점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물론 요새는 많이 바뀌고 있지만, 제가 대학원 다닐 당시만 해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수와 부사수 관계도 되게 명확하고, 그런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미국에 가서는 너무나 수평적인 관계라 살짝 컬처 쇼크도 받았는데, 그런 문화가 오히려 과학적인 사고를 자유롭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요소들을 저희 랩에도 많이 적용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저희 랩도 딱히 사수나 부사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고년차 연구원이라도 저년차 연구원에게 배울 수 있고 그 반대도 당연히 가능하게끔 연구실을 꾸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외 포닥 생활이 교수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굉장히 많이 바꿔 줬네요. 방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한국도 요즘 문화는 수평적으로 많이 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수평적이고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아요. 연구실을 그렇게 세팅하신 꿀팁을 주실 수 있나요?)
일단 저의 행동 자체를 미국에서 하던 식으로 계속 끌고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세미나를 하거나 학생들이 발표를 할 때도 제가 중간중간에 계속 치고 들어와서 질문을 하고, 학생들에게도 "계속 질문을 해라, 오늘 아무 말도 안 한 사람 있으면 꼭 한마디라도 해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사수·부사수 관계를 딱히 두지 않는 문화도 만들어 가고 있고, 배울 기회가 있으면 누구에게든 가서 잘하는 사람에게 배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들을 통해서 수평적인 랩을 꾸리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생들과 제가 아직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저는 그래도 지금까지는 수평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도 이 수평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또 다른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Q. 해외 포닥 생활을 하시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일단은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가족 이슈가 있어서, 애초에 갈 때부터 돌아오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도 한국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했었어요. 한국은 어떤 트렌드가 있는지, 신경과학계에서 누가 교수가 됐는지, 계속해서 어떤 사람들을 뽑는지 이런 것들을 계속 모니터링했던 것 같아요. 결정적으로는 저희 랩에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계신 교수님이 안식년으로 오셔서, 의과학대학원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Neurogenomics(신경유전체학) 연구가 이 학과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저희 학과에는 아직 뇌 발생 과정을 중심으로 Neurogenetics(신경유전학)를 하는 랩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분야에 제가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한국에 종종 들어올 때마다 학회도 다니고, 사람들도 만나서 인사하며 네트워크를 지속해서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이야기 안 한 내용이 하나 있는데요, 가족 이슈가 있어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는데, 그 가족 이슈가 풀려서 아내가 미국으로 올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그 당시에 미국에서 자리를 잡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네트워크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임용할 때 대학원이나 학부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저는 네이티브 스피커도 아니고, 또 미국에서는 그랜트(Grant)를 많이 봅니다. K99 같은 큰 NIH그랜트를 가지고 있어야 교수가 되었을 때도 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그랜트를 이미 딴 사람들 위주로 많이 뽑습니다. 그래서 가족 이슈가 풀리고 나서 사실 미국 쪽도 지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불러 주고 관심을 가지는 곳은 미국과 한국을 비교했을 때는 아무래도 조국이 더 많이 불러 주더라고요. 그래서 '나를 필요하는 곳은 결국 한국이구나'라는 생각에 한국에 지원했던 거 같습니다.
(혹시 그랜트가 어떤건가요?)
그랜트는 연구비를 수주했을 때 '그랜트를 땄다'라고 하는데요, 미국에는 K99이라는 트랜지션 그랜트(Transition Grant)가 있어요. 그래서 포닥들 중에서도 중간이나 고년 차에 있는 분들이 많이 지원을 하는데요, 독립적인(Independent) 연구자가 되기 전에 한 2년 정도 그랜트를 지원해 줍니다. K99이라는 그랜트는 자기가 독립적인 교수가 되거나 연구원이 되면, 그때부터는 K99에서 R00로 바뀌어서 더 규모가 커진 상태로 그 랩을 지원해 줍니다. 계속 연결되는 그랜트인 거죠. 그래서 자기가 미국에서 교수Job을 알아보고 있다면, K99이 있는 게 아무래도 트랜지션 할 때 되게 스무스하게 갈 수 있다 보니까 학교에서 그런 K99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매우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정착금만으로 버텨야 하는데, 정착금으로 버티면서 첫 그랜트를 따는 게 미국에서는 정말 어렵다고 하거든요. R01을 따야 되는데, 제가 아는 분도 네이처 논문을 3편이나 냈는데도 R01을 따기까지 3년이 걸리고 그랬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R01을 따기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에, 그전에 거쳐 갈 수 있는 되게 좋은 트랜지션 그랜트이고, 미국에 남고 싶어 하는 포닥들이 많이 지원을 합니다.
Q. 그러면 혹시 해외 포닥 생활을 하시거나 준비하실 때 '내가 이건 정말 잘했다' 혹은 '이건 좀 아쉽다'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은 점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되게 현실적인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고 랩을 골랐다는 점이고, 그게 가장 후회 없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제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은 한 20~30%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70~80%는 그 환경, 그 랩에서 큰 결정이 난다고 생각해요. 그 PI가 누구인지, 그 랩이 어떤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고 어떤 지원을 받는지, 또 어떤 리소스가 있는지가 막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환경 안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에, 랩을 고를 때는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어정쩡한 랩에 가면 고생을 정말 많이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미래에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랩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후회되는 점은, 제가 아까 미국에 남고 싶은 생각도 조금 있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미국 현지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냥 열심히 연구해서 좋은 논문을 쓰면 Job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거에 더해서 여러 유명한 연구자나 분야 대가들을 많이 알아두면 나중에 추천서도 받기 쉽고 그분들이 있는 학교에 지원할 때 '내가 이 사람 알아' 이렇게 강력하게 추천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회에 가든 누군가 세미나를 하러 오면 적극적으로 임해서 대화도 많이 나누고 자기 자신을 각인시켜 놓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싶다면 그런 네트워크 구축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트워킹에 대해서 굉장히 아쉬운 점이 있으셨군요.)
네, 저는 되게 내향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그냥 제 할 일을 열심히 많이 했어요. 세미나 오신 분들이 있으면 질문 한두 개 던지고 간단하게 이야기 나누고 가곤 했는데요,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하는 게 훨씬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콜라보할 수 있는 기회도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고, 그런 식으로 네트워크를 많이 쌓아 놓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분들 중에도 내향인이 많이 계실 텐데요. "네트워킹은 조금 막막하다" 하시는 분들께 조언을 조금만 더 해주실 수 있나요?)
만약에 미국에 계속 남고 싶다면, 미국 현지의 바이브, 그 분위기를 자기 자신에게 탑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내향적이고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는 게 미덕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가 잘한 것을 되게 자랑하고, 내세우고, 어필하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위기를 익히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탑재되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하면 그런 것이 더 빨리 탑재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나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신가요?
제가 미국에 남는 이야기만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요, 사실은 한국의 연구 환경이 정말 좋아졌다는 게 느껴집니다. 제가 포닥을 나가기 전의 환경과 돌아와서 느껴지는 환경을 비교해 보면 훨씬 발전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남는 것만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독립된 연구자로서 연구를 수행하기에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은 현재 연구적으로 안 좋은 시기인데, 그와 달리 우리나라는 과학을 우대하는 정책들이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할 일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한국의 연구 환경은 앞으로도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일단 연구적으로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어떤 발생 과정을 거치는지를 여러가지 멀티오믹스 툴을 활용해서 밝혀내고 싶고요, 그렇게 밝혀낸 요소들을 우리가 현재 잘 사용하고 있는 마우스 모델이나 오가노이드(Organoid)에 반영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하는 작업이 이차적인 목표입니다. 인간 뇌 발생 과정의 특성을 찾고, 그것을 잘 반영하는 대체 모델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런 모델들을 활용해 실제 인간의 뇌 질환들, 자폐나 조현병 같은 인간 특이적인 혹은 종 특이적인 발생 요소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 들어보니까 정말 많은 일과 노력,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앞으로도 교수님의 여정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BRIC과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함께 만드는 톡톡인터뷰.
시즌 3은 ‘해외 포스닥 예정자’ 또는 ‘해외 포스닥 후 귀국한 연구자’들을 과커들이 직접 만나 인터뷰합니다.
해외 포스닥 준비 과정부터 귀국 후 국내 정착까지 생생하고 진솔하게 담아낼 “톡톡인터뷰 with 해외 포스닥”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