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고방식을 배운 과정]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데이터를 오해할 수 있다 (3화)
“첫 번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들을 들어본 적 있나요? 저는 연구를 시작한 이후 정말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실험을 하면 숫자가 나오고, 그래프가 만들어지고, western blot 밴드가 나타난다. 그 결과들이 곧 답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기뻐했고 예상과 다르면 실험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를 계속할수록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데이터는 분명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밴드는 밴드대로, 숫자는 숫자대로 정직하게 자신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데이터를 바라보는 사람은 얼마든지 같은 결과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같은 그래프를 두고도 어떤 사람은 성공을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를 이야기하며, 또 어떤 사람은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데이터는 하나인데, 그 데이터를 통과하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과 기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연구는 데이터를 만드는 일인 동시에, 그 데이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도 같은 장면을 보고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같은 시험에서 80점을 받았을 때 누군가는 이번 시험을 망했다고 생각할 테고, 누군가는 지난번보다 20점이나 올랐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이번 시험이 어려웠다며 평균과 비교해 보며 높은 점수가 맞는지 확인할 것이다. 점수는 같지만 사람마다 해석을 다르게 한다.
다른 예시로 체중이 20kg 줄었다고 생각해 보자. 누군가는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근육량이 빠져서 줄어든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최근 식습관이나 운동 습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부터 물어볼 수도 있다. 이처럼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결과를 사실 그대로 보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기대를 더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어릴 때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답을 맞히는 것보다, 하나의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같은 문제라도 풀이 방법은 하나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의 풀이를 보면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곤 했다.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수학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구 역시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데이터를 얻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왜 나왔는지 여러 가능성을 고민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연구의 본질에 더 가까웠다. 오히려 연구는 정답이 이미 존재하는 수학보다 더 어려웠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을 검증하는 과정까지 모두 연구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데이터, 수많은 가능성
대학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선배들이 데이터를 놓고 토론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그래프를 보면서도 한 사람은 단백질 안정성을 이야기했고, 다른 사람은 번역 조절을 이야기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실험 조건부터 의심했다. '그래프는 하나인데 왜 답이 이렇게 많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들은 답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능한 가설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 자리에서 정답을 확신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 다른 가능성을 최대한 많이 꺼내놓은 뒤 어떤 가설이 가장 설득력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려면 다음에 어떤 실험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찾아가고 있었다. 토론이 길어질수록 답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이 더 정교해졌다.
연구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A라는 유전자가 암세포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A라는 유전자를 knock out이든 knock down이든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비교할 것이다. 그랬을 때 세포 생존율이 감소했다고 해보자 A라는 유전자가 없을 때 암세포가 세포사멸을 일으켜서 생존율이 감소했을 수도 있고, 세포 자체는 죽지 않았지만 성장 속도가 느려져서 상대적으로 생존율이 낮게 측정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A 유전자를 없애는 과정 자체, 즉 knock out이나 knock down에 쓰인 방법이 세포에 스트레스를 주어서 생긴 부수적인 효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대조군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off-target 효과는 없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또한 이 결과가 특정 암세포주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인지, 아니면 다른 암세포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는 일반적인 현상인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데이터는 하나의 결론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가장 타당한지를 검증하라고 연구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는 하나의 데이터에서 하나의 결론만 보였다면, 연구를 계속할수록 하나의 데이터에서 수많은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돌이켜 보면 달라진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내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림. 구글 Gemini 나노 바나나2 제작 AI 이미지생각해 보면 연구자의 가장 큰 적은 데이터가 아니라 자신의 확신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기대했던 결과를 보면 쉽게 안심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를 보면 먼저 의심한다. 하지만 과학은 그 반대의 태도를 요구한다.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일수록 정말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는 그 안에 무엇이 숨어있는지를 먼저 들여다본다. 내가 보고 싶은 것과 데이터가 실제로 말하는 것은 언제나 같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리처드 파인만이 말했던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도 바로 이런 순간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지난 글에서 나는 과학적 사고는 결과를 믿기 전에 한 번 더 질문해 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번 글은 같은 데이터를 본다고 해서 모두 같은 사실을 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많이 얻는 사람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통해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다. 연구를 시작했을 때의 나는 데이터를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데이터가 질문의 시작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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