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평소처럼 지내던 어느 주말이었다. 점심으로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잘 먹고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오후 4시부터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화불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소화제를 먹어도 통증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졌다. 그날 저녁에는 움직이기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더 이상 못 참겠어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침까지 계속 깨면서 중간중간에 구토가 나오고 누우면 숨이 잘 안 쉬어져 앉은 채로 겨우 잤다. 그날 밤에만 구토를 20번 넘게 한 것 같다. 자세히 보니 처음 보는 갈색토였다. 책에서 배운 염증이구나를 알 수 있었다. 소화불량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월요일이라서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는 도저히 회사에 못 가겠어서 병원에 갔다. 의사가 나에게 한 질문을 다 답하자, 작은 핑크색 구토 억제제를 먹고 바로 응급실 emergency room (ER)으로 보내졌다. 맥버니 포인트를 검사하더니 충수염이 의심된다고 하셨다.
미국 응급실은 처음이었다. 긴장되었지만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겨주시는 가이드님과 휠체어가 있었다. ER에서 여러 검사를 하였다. 처음에 수액을 맞으려는데 간호사 두 분이나 내 혈관을 잘 못 찻으셔서 3번 실패하였고 고통스러워서 마지막은 초음파 기계로 혈관을 따라 주삿바늘을 넣으면서 바로 끝났다. 양쪽팔에 멍이... 그리고 췌장 초음파 찍으러 다녀오고, 피 뽑아서 염증 검사하더니 MRI를 찍어야 한다고 하신다. 아 저 폐쇄공포증… 살려면 찍어야 한다. 안내 가이드대로 숨 참았다 쉬었다를 반복. 20분 참았다. 저녁 6시가 되었다. 한 의사는 바로 수술해야 한다 하시고 한 의사는 더 지켜봐도 된다 하시고. 결국 그날은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날 밤은 두세 번만 깼고 구토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다 나았구나 생각하고 행복했다.
다음 날,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초음파 전문의가 오늘 아침 충수염 (appendicitis)를 찾았다며 응급실로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전날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렸고, 하루 만에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오셨다. 낯선 땅에서의 큰 안심이었다. 그때 정말 감사했다. 그 감사도 잠시, 바로 준비하여 병원으로 갔다.
그림 1. 병원으로 가는 길, 달이 참 밝다.
저녁까지 다시 휠체어를 타고 검사도 다시 했다. 그리고 저녁이 돼서 집에 갈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 하셨다. 이제는 어차피 해야 하는 수술이라면 빨리 하자라는 생각뿐이었다. 첫 수술이라 걱정도 또 나를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더 걱정되었다. 룸이 배정되기를 ER waiting room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차가운 터키 샌드위치와 수스를 주셔서 수술 전 금식이라 지금은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빨리 먹었다. 2일 동안 아무것도 못먹었었다. 특실로 배정되었다. 와우
그림 2. 2026년 미국 병원에서
오늘 수술이 아니라 수술실이 없어 내일 수술이라고 하신다. 특실에 들어가니 침대는 내 마음대로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었고, 화장실도 있었고, 침대 옆에는 나를 반겨주는 아이패드도 있었다. 새벽 1시에 다시 피를 뽑고 30분 뒤에 의사 2명이 오셨다. 의사가 긴 바늘로 수액을 꽂으려고 하여 좀 더 작은 바늘로 바꿔달라를 머리로 번역을 하는데 음.. 한국분이어서 반갑고 의사소통하기 쉬웠다. 반가웠지만 그 이후로 한국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피를 뽑고 난 뒤 다시 잠들고 아침 7시에 많은 의사들이 우르르 방에 들어와서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얘기를 들어보니 오후 12시에 내 충수염 수술을 맡은 의사라고 하시며 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걱정하지 않게 말씀해 주셨다. 간호사께서 방에만 안 있어도 된다며 게임룸에 같이 가주셨지만 바로 수술할 시간이라며 다른 간호사분께서 나를 찾으러 오셨다. 구경만 하고 다시 방에 왔다. 수술 처치실로 간 다음, 수술 보라색 가운으로 갈아입고 침대 위에 누워있다. 의사를 만나서 함께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 앞에서 이제 엄마아빠와 헤어져야 해서 안돼하며 엄마를 보고 싶었고 속으로는 수술을 처음 해보는 거라 엄청 떨렸다. 나의 걱정은 중간에 마취가 풀릴까 봐 걱정되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초록초록한 느낌이 들 줄 알았으나, 하양하양한 치과같이 생겼다. 다른 침대로 옮겨야 해서 누운 상태에서 꼬물꼬물 옮겼고, 내가 dehydrated상태여서 saline을 조금 더 넣는다고 하였고, 그다음부터는 생각이 안 난다. 그게 마취였나 보다. 내가 눈 뜬 순간은 오후 4시였다. 눈을 떠보니 핸드폰 화면에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서 나를 위해 영상통화를 해준 것이 정말 감동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회복실에 있었고, 또 구토를 하다. 수술은 잘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 상태에서 침대에 누운 채로 다시 내 방으로 옮겨졌다. 또 다른 침대로 옮겨야 해서 힘겹게 움직이며 옮겼다.
저녁 7시가 좀 넘자, 간호사분이 오셔서 걸어보자고 하며 몇 가지 체크를 하더니 퇴원하라고 하신다.
"지금요?"
"식사하시고요."
"밥이요? 방귀 안 나왔는데요.."
"??"
결국 내가 말하고자 했던 방귀는 전달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코스로 치킨스톡부터 하와이안롤, 스파게티, 라즈베리샤베트 등을 잘 먹고 예상보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아이들과 부모님께서 마중 나와 있었다. 걱정되는 건 오늘이 막내 생일이었어서 생일파티를 못해주어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급하게 강아지 인형 선물을 사서 전해주었지만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일주일 동안 회사에 가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생활했다. 침대에서 윗몸만 일으킨 채로 2-3일은 흰 죽을 먹었다. 회복을 위해 조금씩 걷기 연습도 하고. 수술 부위를 보니 3군데 작은 절개 자국이 있었고 투명풀이 붙어있었다. 샤워하다 수술 부위 풀이 떨어지면 다시 수술해야 할까 봐 걱정되었다. 점점 된장찌개도 먹고 장조림도 먹기 시작하고, 2주 차에는 간이 없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3주 차가 되자 고춧가루 음식도 조금씩 먹기 시작하였다.
낯선 나라에서의 첫 응급 수술. 신기하고 아픈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미국 병원비는 얼마가 나올까요? “
다음 편에서는 무사히 MCP-based Agentic AI 개발 이야기를 작성할 수 있기를 바라며 두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