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2시, 학부 연구생인 민철과 시우 앞에는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논문이 놓여있었다.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두 학생은 열의에 불타올랐다. 하지만 불타는 열정과는 다르게, 빽빽하게 영어로 작성되어 있는 논문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용어들이 난무했고, 여러 그래프와 실험 데이터들을 보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민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진짜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시우 또한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돌렸다.
"너도? 나도 아까부터 Introduction 부분만 계속 읽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너무 답답하다..."
두 사람이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 평소 도움을 많이 주시던 박사후연구원 선배가 다가왔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 나도 처음 들어왔을 때 논문 읽는 게 가장 힘들었는데.”
“네… Introduction만 계속 읽는 중인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선배는 울상인 두 사람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영어로 쓰여 있기도 하고, 아마 모르는 게 많아서 바로 안 읽히는 게 당연할걸? 일단 Introduction에서 한 문장, 한 문장씩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뚫어내는 작업이 필요해. 필요하면 AI 도움도 받으면서."
"네? 저번에 AI로 논문 정리하면 안 좋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민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내가 말한 건 AI에게 생각과 요약을 통째로 맡기지 말라는 거였지, 도움을 받지 말라는 게 아니야. 예를 들어 Introduction을 읽다가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막히면, AI한테 '이 개념에 대해 초보자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관련 자료를 추천해 줘'라고 물어보는 거지. 그렇게 기초 배경지식을 채우면서 조금씩 읽어 내려가면 되는 거고. 그리고…"
선배는 민철의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1. 논문이라는 거대한 첫 장벽대학원 연구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막막하고 힘들었던 경험을 꼽으라면 단연 논문을 읽는 일일 것입니다. 실험이야 배운 대로만 잘하면 결과가 나오는 작업이지만 논문의 경우 기본적으로 영어로 작성되어 있는 데다 전문 용어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누구나 거쳐 가는 과정이기에, 처음부터 논문이 술술 읽히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논문 공부의 경우, 차근차근 익혀나가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공부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논문을 처음 접하는 대학원생들이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이고 올바르게 논문을 읽을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2. 영어와 친숙해지기 논문 읽기의 시작은 영어로 작성된 문장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공계 분야의 논문에서 사용되는 문장 구조와 단어는 비교적 한정적인 편입니다. 논문을 읽으면서 생소한 단어나 문장 구조를 발견한다면 따로 정리해 두고 틈틈이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빠른 시일 내에 논문에 나오는 영어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어로 번역해서 이해하기보다 영영사전을 활용해 영어 표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버릇을 들이는 것입니다. 한국어로 번역해서 이해하게 되면 영어로 소통할 때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어로 직접 이해하는 것이 독해 속도를 높이는 데 훨씬 유리합니다. 특히 논문 전체를 AI 번역기에 돌려 한글로 읽는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장기적인 영어 실력 향상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전문 용어는 한국어로 일대일 매칭이 어려워 저자의 의도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구조 파악을 통한 효율적인 논문 독해법
논문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각 파트의 특징을 이해하고 접근하면 독해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제목을 보고 해당 논문이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아봅니다. 제목이 완벽히 이해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키워드 위주로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해당 키워드가 어떤 것인지 공부해 보면 좋습니다. 그다음, Abstract 부분은 넘어가고, Introduction부터 읽어보도록 합시다. Introduction에는 연구의 배경지식과 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담겨 있습니다. Introduction을 읽으며 이 연구는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연구가 가지는 의의는 무엇인지 따로 기록해 보고, 배경지식 또한 따로 공부하면서 조금씩 이해해 나가면 됩니다.
연구 목표가 정해졌다면, 그 이후로는 Result 부분에서 데이터 분석이나 관측된 현상을 바탕으로 논리가 전개됩니다. 예를 들어, RNA Sequencing 분석을 통해 특정 질병에서 특정 transcription factor (TF)의 발현 증가를 확인했다고 합시다. 그 뒤에는 실험적 검증을 거쳐 실제 질병 모델에서 해당 TF의 발현이 증가한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혀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은 ‘특정 TF가 해당 질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 원리로 해당 질병에 관여하는가?’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나올 내용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한 데이터 제시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in vivo 질병 모델에서 실제로 해당 target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Result 부분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러한 논리의 흐름입니다. 또한, 처음 논문을 읽게 된다면 처음 보는 그래프나 실험 데이터들이 Figure에 나올 텐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Discussion 부분은 연구 내용을 총괄적으로 정리하고,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토의 주제나 연구의 한계점, 향후 확장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Introduction과 Result 부분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해당 부분은 비교적 쉽게 읽힐 것입니다.
이렇게 논문 한 편을 마무리 하는 데 처음에는 최소 하루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많이 답답하고 고된 작업이겠지만, 특정 분야의 논문을 지속적으로 읽다 보면 나중에는 하루에 2~3편의 논문도 거뜬히 읽을 수 있고, Figure만 보고도 어떤 연구인지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해집니다.
4. 학습 역량을 기르는 AI 활용 가이드라인
AI는 훌륭한 보조 수단이지만, 잘못 활용하면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학습의 주체는 항상 자기 자신임을 명심하고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AI를 활용해 보기를 권합니다. Introduction을 읽다가 모르는 내용이 나와 이해하기 힘든 경우에, 우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배경지식을 공부하는 시도를 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다만, 여러 자료를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올 때가 있는데, 이때 AI에게 해당 자료를 입력 후, 그 자료를 읽으며 내가 이해한 것들을 작성한 후에 이것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보면 좋습니다. Figure의 그래프나 실험 데이터가 이해가 안 될 때에도 먼저 스스로의 힘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곧바로 답을 묻기보다는, 자신이 도출한 해석을 바탕으로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 데이터가 이러한 의미인 것 같은데, 내 해석이 맞는지 확인해 줘"와 같은 방식으로 AI와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Figure의 해석의 경우, AI의 답변이 100% 정확한 것은 아니므로, 가능하다면 연구실 선배나 지도교수님께 질문을 드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우선은 가능한 주도적으로 배경지식을 공부하고 Figure를 이해해보려 하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러이러한데 이게 맞는지 확인해 줘’라는 식으로 AI를 활용해 보시면 좋습니다.
맺음말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하곤 합니다. 연구의 세계에서는 그 기본기를 바로 논문을 통해 쌓을 수 있습니다. 영어, 연구 배경지식, 최신 실험 기법, 그리고 탄탄한 논리 전개 방식 등 논문을 정독하며 얻을 수 있는 기본기는 향후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AI나 번역기에 의존하다 보면 이러한 기본기를 쌓을 기회를 잃게 됩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영문 구조를 직접 파악하고, 데이터의 논리를 스스로 유추하며, 이해가 될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습관만이 장기적으로 연구 역량을 길러줍니다. 답답하고 고된 첫 장벽을 인내심을 가지고 뚫어낸다면, 머지않아 Figure만으로도 논문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은 많이 답답하고 지치시겠지만, 미래의 위대한 연구자가 될 나를 위해 한 걸음씩 묵묵히 나아가시기를 응원합니다.
- 본 글에 담긴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 글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연구실 등은 실제와 무관함을 밝힙니다.
- 표지 및 캐릭터 디자인 이미지 생성에 Google Gemini Nano Banana 2 Pro가 활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