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기술성 평가에서 ‘A, A’ 등급 받았습니다. 기술력은 인정받았는데, 회계법인이 감사의견을 못 주겠답니다. 이 상태면 상장 예비심사 자체가 안 된다네요.”
바이오 벤처를 창업한 K 교수님은 기술은 통과했지만, 재무제표 때문에 상장이 막힌 상황이었습니다.
실험실에서의 연구 데이터는 완벽했고,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상장 예비 심사를 앞두고 회계 감사라는 완전히 새로운 벽에 부딪힌 겁니다.
기술특례상장은 적자 기업도 상장 가능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회계가 느슨해도 되는 제도는 아닙니다.
교수님은 억울하다는 듯 묻습니다.
“우리가 쓴 돈은 그냥 없어진 게 아니라, 특허와 기술이라는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왜 회계사들은 이걸 비용이라고 합니까?”
연구자의 시선에서는 당연한 항변입니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언어는 다릅니다.
이 자산과 비용의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상장의 문은 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이 문제가 상장 직전이 아니라 창업 첫날부터 예고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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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변호사이자 공인회계사(CPA), 김명규입니다.
지난 화까지는 연구비 관리의 형사적 리스크를 다뤘다면, 이번 화부터는 창업과 상장이라는 경영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그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연구개발비의 회계 처리, 특히 개발비 자산화입니다.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하는 많은 연구자 출신 CEO분들이 “기술만 좋으면 된다.”고 믿었다가, 숫자 하나로 인해 상장 문턱에서 좌절하곤 합니다. 오늘은 그 숫자 뒤에 숨은 논리를 풀어보겠습니다.
동상이몽: “미래의 가치” vs “현재의 확실성”
연구자와 회계사는 같은 숫자를 두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 * 연구자(CEO)의 관점: R&D에 투입한 100억 원은 사라진 돈이 아니다.
- 미래에 수천억 원의 가치를 가져올 투자다. 그러니 장부에 자산(개발비)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 * 회계사(감사인)의 관점: 그 기술이 실제로 돈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임상 실패, 허가 불발, 사업 중단 가능성 등이 있다.
- 불확실한 미래 가치를 자산으로 인식할 수는 없다. 일단은 비용(경상연구개발비)으로 처리하자.
이 갈등이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재무상태표상 무형자산-개발비 항목입니다.
- *자산으로 처리 → 손실이 줄고, 재무구조가 좋아 보임
- *비용으로 처리 → 적자가 커지고, 누적되면 자본잠식(투자받은 원금까지 까먹은 상태)
회사가 쓴 돈을 ‘자산’으로 처리하면 그해의 영업이익은 늘어나고 재무구조는 좋아 보입니다. 반면 ‘비용’으로 처리하면 적자가 커지고, 누적되면 자본잠식(투자받은 원금까지 까먹은 상태)에 빠집니다.
상장을 앞둔 기업들은 빠지는 가장 흔한 유혹은 “비용을 자산으로 바꿔서 버텨보자”입니다. 이를 회계 용어로는 개발비 자산화(Capitalization)라고 합니다.
문제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이 이 자산화를 극도로 보수적으로 제한한다는 점입니다.
K-IFRS의 벽: 기술적 실현 가능성
K-IFRS 제1038호는 개발비의 자산 인식을 위해 다음 6가지 요건을 모두 요구합니다.
① 기술적 실현 가능성
② 사용 또는 판매의 의도
③ 사용 또는 판매 능력
④ 미래 경제적 효익
⑤ 필요한 기술적∙재정적 자원의 확보
⑥ 지출의 신뢰성 있는 측정
바이오 기업에서 가장 높은 허들은 단연 ① 기술적 실현 가능성입니다.
실무상 신약 개발 기업의 경우, 통상 임상 3상 개시 승인 이후에야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인정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다만 이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파이프라인의 특성, 계약 구조, 외부 검증 수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술성 평가 통과 ≠ 회계상 자산 인식 요건 충족
기술성 평가는 성공 가능성을 본다면,
회계 감사는 현재 시점의 입증 가능성을 봅니다.
자산화 리스크는 두 단계에서 터진다.
개발비 자산화는 두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① 인식 단계 리스크
감사 또는 상장 심사 과정에서 자산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면, 이미 인식한 무형자산은 비용으로 재분류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과거 재무제표 수정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② 사후 손상 리스크
일단 자산으로 인식되었다 하더라도, 임상 실패나 사업성 약화가 발생하면 손상 테스트를 통해 대규모 손상차손을 인식해야 합니다.
시장에서는 종종 어닝 쇼크가 발생합니다.
그 원인이 기술 실패 자체인 경우도 있지만, 개발비 자산화와 손상 인식의 시점 조정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의 우수함이 아니라, 회계 판단의 타이밍과 일관성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해답은 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1.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활용할 것
기술특례상장은 당장은 적자라 하더라도 기술력이 뛰어나면 상장할 기회를 주는 제도입니다.
즉, 억지로 이익을 내는 척하기 위해 개발비를 무리하게 자산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보수적으로 비용 처리를 하고, “우리는 회계 기준을 투명하게 준수했다”는 점을 어필하는 것이 심사 과정에서 신뢰를 줍니다.
2. 감사인과의 ‘사전 협의’를 문서로 남길 것
IPO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문서화된 판단 근거입니다.
- - 자산화 시점에 대한 외부 자문 의견 확보 여부
- - 감사인과의 협의 내용 기록
- - 회사 내부의 개발비 회계 정책서 마련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하는 주장보다,
“이 기준에 따라 이렇게 처리했다”고 기록된 문서가 훨씬 강합니다.
3. 지금 당장 점검할 실무 체크리스트
- - 연구비가 프로젝트·임상 단계별로 구분 관리되고 있는가
- - 특정 지출이 어느 개발 단계에 귀속되는지 추적 가능한가
- - 라이선스 아웃, 마일스톤 계약 등 경제적 효익 입증 자료가 존재하는가
- - 자산화 이후 손상 테스트 기준이 내부적으로 정립되어 있는가
- - 회계 정책이 연도별로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가
창업 초기부터 구조를 설계하지 않으면, 상장 직전에 이를 소급하여 정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회계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충족의 대상이다
많은 연구자 출신 CEO분들이 착각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기술이 좋으면, 회계사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회계사는 기술의 우수함이 아니라, 회계 기준의 충족 여부만 봅니다.
아무리 노벨상감 기술이라도, K-IFRS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 기술은 자산화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판단은 상장 직전이 아니라, 창업 첫날부터 누적된 기록에 의해 결정됩니다.
맺음말: 회계는 자본시장의 최소 신뢰 장치입니다.
연구실에서는 실험 데이터가 언어였지만,
자본시장에서는 회계가 언어입니다.
연구자분들은 종종 내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하는 데 온 힘을 쏟습니다.
기술의 우수함만큼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기술이 재무제표에서 숫자로 어떻게 찍히는가?”
단기적으로 상장을 위해 숫자를 앞당기는 선택은, 언젠가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옵니다.
보수적이고 투명한 회계 처리가 가장 느려 보이지만, 자본시장 신뢰를 얻는 최소 조건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연구소 기업이나 벤처 창업을 한 교수님들이 가장 반기는 혜택이자,
나중에 가장 큰 세금 폭탄으로 돌아오는 <R&D 세액공제>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당신의 연구와 일상을 지키는 파트너, 김명규 변호사/공인회계사 드림
※ 본 칼럼은 실무 지식을 바탕으로 AI(Gemini)를 활용해 사례를 각색하였으며, 필자가 직접 집필·검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