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과제가 많은 A 학생은 월 300만 원을 받고, 과제가 없는 신입생 B는 0원을 받는 게 공정한가요?
그래서 다 같이 모아서 n분의 1로 나눠준 겁니다. 제가 착복한 게 아니라고요.”
연구비 감사나 수사 과정에서 연구 책임자분들이 많이들 하시는 항변입니다.
소위 ‘랩비(Lab Fee)’ 혹은 ‘풀링(Pooling)’이라 불리는 학생 인건비 공동 관리 문제입니다.
교수님의 의도는 선합니다. 연구실 내의 소득 불균형을 막고, 등록금이 급한 학생들을 돕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구실 밖의 법과 시스템은 그 ‘선의’를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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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변호사이자 공인회계사(CPA), 김명규입니다.
지난 1, 2화에서 연구비 이체와 카드 사용에 대해 다뤘다면, 오늘은 연구 책임자에게 혹은 연구실 전원에게 가장 민감한 ‘인건비’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장비나 재료비 문제는 간혹 ‘행정적 미숙’으로 참작될 여지가 있지만, 인건비 문제는 ‘타인의 재산권 침해’로 간주되어 수사기관이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어부터 확실히: 합법적 풀링 vs 불법적 풀링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흔히 혼용되는 ‘풀링(Pooling)’의 개념부터 명확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 제도적 풀링 (학생인건비 통합관리제도): 학교(산학협력단)가 별도 계정을 만들어 인건비를 통합 관리하는 합법적인 시스템입니다. 교수는 기여도에 따라 지급 비율만 결정하고, 돈은 ‘학교 → 학생’에게 직접 갑니다.
- * 사적 풀링 (Private Pooling): 일단 개별 과제에서 학생 계좌로 돈을 지급한 뒤, 연구실 차원(교수나 방장)에서 이를 다시 걷어서 재분배하거나 공금으로 쓰는 행위입니다.
오늘 다루는 위험한 사례는 바로 이 ‘사적 풀링’입니다.
‘내 돈’과 ‘네 돈’의 경계: 소유권의 법리
많은 연구 책임자분들이 오해하시는 지점이 있습니다.
“내 과제에서 나온 인건비니까, 연구실 전체 운영을 위해 내가 배분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법률적, 회계적 관점에서 이 생각은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라 인건비는 연구 책임자를 거치지 않고 학생 연구원 개인 계좌로 직접 입금됩니다.
통장에 돈이 꽂히는 순간, 그 돈의 법적 소유권은 온전히 ‘학생 개인’에게 귀속됩니다.
따라서 이미 학생의 소유가 된 돈을 교수가(혹은 방장이) 다시 걷는 행위는,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타인의 재산을 임의로 회수하는 행위’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돈을 걷었다는 사실을 넘어, ‘돈을 받기 전’의 과정입니다.
실제로 법원은 연구 책임자가 처음부터 개별 지급할 의사 없이 공동 관리한 사안에서, 비록 그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고 연구실을 위해 썼더라도 지급기관(산학협력단)을 속인 기망행위에 해당하여 사기죄 성립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도8468 판결).
즉, 학생에게 줄 것처럼 신청해서 받아놓고, 실제로는 교수가 마음대로 (공적으로라도) 사용하려 했다면, 이는 지급 기관을 속인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학생들이 동의했는데요?”라는 항변의 한계
많은 교수님들이 억울해하십니다.
“강제로 뺏은 게 아닙니다. 랩 미팅에서 다 같이 합의했고, 학생들도 전원 동의했습니다.”
물론 법원은 학생들의 ‘자발적 의사’가 명확한 경우에는 사기죄가 아닐 수 있다고 여지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수사 실무에서 절대적인 위계 관계에 있는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동의가 ‘진정한 자발성’으로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사관은 이렇게 묻습니다.
“학생이 교수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위치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자발적 동의’라는 디펜스(Defense)는 너무나 쉽게 무너집니다.
가장 무서운 감시자: ‘내부’에 있다
인건비 문제가 유독 위험한 이유는 적발 경로 때문입니다. 카드 사용이나 이체 내역은 시스템이 잡아내지만, 사적 풀링은 시스템 밖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통상 ‘제보’에 의해 드러납니다.
과거에는 “교수님 뜻이니 따르자”는 도제식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학생들은 ‘내 노동의 대가’에 민감하며, 불합리하다고 느끼면 문제 제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풀링 적발은 졸업한 학생, 갈등으로 연구실을 나간 연구원의 제보로 시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제 통장을 관리했습니다.”
“비밀번호를 방장에게 알려줘야 했습니다.”
이러한 제보가 수사기관이나 권익위에 접수되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연구실 구성원들의 통상 최근 수년 치 금융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 계좌로부터 특정인(교수, 방장, 조교장 등)에게 주기적으로 자금이 이체된 흔적, 소위 ‘페이백(Pay-back)’ 정황이 발견되면 소명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리스크 관리의 핵심: 투명성과 절차
만약 현재 인건비 관리에 고민이 있으시다면, 다음 세 가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1. 통장 관리 주체 확인
학생의 통장, 현금카드, 비밀번호를 연구실 차원(방장, 교수 등)에서 일괄 보관하고 있다면, 이는 즉시 시정해야 할 사항입니다.
타인의 금융 매체를 점유하는 것은 횡령 논란을 넘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문제까지도 파생될 수 있습니다.
관리 주체는 반드시 ‘학생 본인’이어야 합니다.
- 2. ‘줬다 뺏기’ 금지
인건비 지급률(%)을 조정하여 처음부터 적게 주거나 많이 주는 것은 연구 책임자의 재량권 범위 내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지급된 돈을 다시 가져오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회식비가 부족해도, 시약 살 돈이 없어도, 학생 인건비 통장은 건드려서는 안 될 ‘성역’으로 남겨두셔야 합니다.
- 3. 제도의 활용
인건비 재원이 들쑥날쑥하여 운영이 어렵다면, 소속 기관 산학협력단에 ‘학생인건비 통합관리 지정’을 신청하거나 관련 제도를 적극 활용하십시오. 행정적으로 번거롭더라도,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유일한 안전장치입니다.
맺음말: 신뢰는 투명한 장부에서 시작됩니다
연구 책임자분들 중 제자들을 아끼지 않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연구실을 유지하려 사비까지 터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다 너희를 위해서”라는 말은 법정에서 유효한 ‘디펜스(Defense)’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투명한 자금 흐름은 사제 간의 신뢰를 깨뜨리고, 연구실 전체를 위기로 이끄는 불씨가 됩니다.
연구의 성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연구실의 운영 윤리’입니다.
제자들에게 “우리 연구실은 돈 문제만큼은 깨끗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제자들을 보호하고, 교수님의 연구 인생을 지키는 길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연구 현장의 ‘공공연한 비밀’이자 가장 위험한 유혹, <급해서 일단 현금화했습니다 : 허위 용역계약, 현금화가 불러온 뼈아픈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당신의 연구와 일상을 지키는 파트너, 김명규 변호사/공인회계사 드림
※ 본 칼럼은 실무 지식을 바탕으로 AI(Gemini)를 활용해 사례를 각색하였으며, 필자가 직접 집필·검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