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차 화요일 아침이 되니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도저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근육통이 나를 지배했다. 이유 없이 계속 눈물이 났다. 앞으로 어떻게 2년 동안 이런 생활을 버텨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강을 건너버렸는데. 그래도 해야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아직 땅에 발도 제대로 닿지 않은 채 멈출 수 없는 자전거를 타고 겨우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그날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수업이 꽉 차 있는 날이었다.
한국에서의 빡센 실험실 생활을 피해보려고 도망치고 또 도망쳐서 온 곳이 유럽이었는데, 막상 와보니 내가 경험해 본 어떤 한국 학교보다 더 빡셌다. 어쩌면 고3 때보다도 더 힘든 스케줄이었다. 이미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올라 등교하면서부터 힘을 다 빼고 시작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수업은 재미도 없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바이오 수업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만이 난무했다. 나는 식품생물공학을 공부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전공학이나 미생물공학, 미생물학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이오테크 전공 수업은 아예 다른 학문을 배우는 느낌이었다.
유전자 시퀀싱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한효소를 찾아 DNA를 잘라오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 봐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직 학기 초니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영어로 수업을 듣고 있으니까 더 못 알아듣는 거겠지.”
스스로를 그렇게 달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수업을 계속 알아듣지 못하다 보니 예습은커녕 복습할 양도 차고 넘쳤다. 결국 공부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쌓여버렸다.
그렇게 늦은 저녁 수업까지 듣고 깜깜한 밤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길도 아직 제대로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겨우 집을 찾아 들어왔을 때,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와서, 내 시간과 돈까지 써 가면서, 나 자신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너무 벅찼다.
그때였다. 처음에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학교 적응은 잘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너무 힘들어요.”
계속 압도되는 느낌이 들고 머리가 얼어붙은 것 같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고, 엉엉 울면서 말했다. 신기하게도 그 호스트는 심리 상담을 하는 테라피스트였다. 바로 영상통화를 걸어와 한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호스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지 마세요. 이번 주는 그냥 수업을 다 빠지고 푹 쉬어보세요. 지금 상태로 학교에 가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계속 질질 끌려다니게 될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학교를 빠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을 빠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수업을 듣고도 못 따라가고 있는데, 수업을 다 빠져버리면 따라잡아야 할 것들이 더 산더미처럼 쌓일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나는 지금까지 30년 넘게 살면서 수업을 한 번도 안 빠져봤지?’
정말 이 일주일 빠진다고 해서 인생에 큰 타격이 있을까? 어차피 가도 못 알아듣는 수업이라면, 그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이라도 회복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결국 나는 이번 주를 통째로 ‘자체 휴강’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렸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멀뚱멀뚱 뜨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 순간의 행복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 생각보다 결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짜릿했다. 즐거웠다. 나는 나에게 그동안 왜 이렇게 엄격하게 살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이 괜히 억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번 주만큼은 최대한 나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다시 눈을 감고 늦잠을 잤다. 느지막이 일어나 브런치를 먹고 장을 보고, 시내에 나가 운동화도 하나 샀다. 작은 일탈의 짜릿함은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주었다.
‘계속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생각했던 부정적인 감정들도, 자체 휴강 기간 동안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조금씩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머릿속을 덮고 있던 먹구름이 천천히 걷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금요일이 되었을 때였다. 학교 이메일 계정으로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Congratulations! You are the winner!”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메일을 클릭해 보았다. 오리엔테이션 주간에 교내 스타트업 육성 센터에 제출했던 디자인 아이디어가 1등으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있던 시기였기에 그 메일을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잘하는 게 있었어!!!’ 너무 기뻤다.
학교에서는 런치 바우처가 발급되었으니 카페테리아에 가서 학생증을 보여주면 무료 핫밀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마침 학교에서는 스타트업 아이디어 세미나도 진행 중이었다.
그렇게 가기 싫던 학교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카페테리아에서 자랑스럽게 학생증을 내밀며 말했다.
“I am the winner!”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카페테리아에서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 바로 따뜻한 점심 식사를 내주었다. 덕분에 멸종될 뻔했던 나의 자신감이 조금씩 다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밥을 먹으며 들었던 스타트업 센터 세미나에서는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구현하는 것을 도와주는 프로그램과 펀딩 기회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피칭해 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당시 나는 딱히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닐 때도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 나에게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는 없지만 일단 사인업을 했다. 그리고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만들어 발표했다.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아직 바이오 업계에서도 개발이 진행 중인 단계의 기술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디어는 스타트업으로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Feasibility 부분이 부족합니다.”
사업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위너’라는 타이틀 때문에 괜히 자신감이 과충전 되어 의욕만 앞섰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도 그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남겼다. 석사를 하러 온 것이 맞지만, 애초에 내가 원했던 것은 해외에서 일하는 삶이었다. 그렇다면 꼭 취업이 아니더라도 스타트업이라는 길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에게 하나의 방향성이 더 생기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번 주는 정말 푹 쉬었다. 한국어 언어 교환 모임에도 나갔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 김밥도 먹고, 한국어로 마음껏 대화도 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사실 나는 우리 학교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생각보다 그 사실이 꽤 외롭고 힘들었다. 이 나라 자체에도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이었고, 한국인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4주 동안 매일 100% 영어만 쓰며 살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에너지를 두 배로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빨리 지쳐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우당탕탕 2주 차를 보내며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뭐가 됐든 일단 이번 학기는 끝까지 해보자.’
그다음에 자퇴를 할지, 계속 다닐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는 통닭을 사 왔다. 베란다에 앉아 햇빛을 쬐며 혼자만의 작은 자축 파티를 했다.
조금 더 나에게 관대해지자.
못해도 괜찮다.
다만 포기하지만 말자.
그렇게 다짐하며 나의 짧은 ‘자체 방학’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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