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 끄적여둔 메모와 일기장을 뒤져 기억을 더듬으며, 현재의 생각을 더한 생존 일기를 공유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저의 이야기들이 작은 위로와 공감, 그리고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개강 첫 주에 제게 벌어진 황당하고 부끄러운 일화들부터 제 솔직한 속마음까지 전부 공개하려고 합니다. 가볍게, 재밌게, 응원하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냅다 취미 공개해 버리시는 귀여운 교수님
개강일보다 3주 일찍 와서 선선한 유럽의 여름 날씨를 만끽하고, 재밌는 오리엔테이션 주간을 마치고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는 개강 첫날의 아침이 밝았다. 그간 시차 적응도 하고, 이사도 하고, 또 너무 신나게 놀아서 온몸이 찌뿌드드했지만, 그래도 1n 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되어 등교한다는 사실 자체로 너무 설렜다. 개강 첫날부터 진행된 아침 수업은 공대 필수 교양 같은 수업이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우르르 세 분이나 들어오셨다. 그중엔 우리 과의 헤드 교수님(학과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선 한 과목에 이렇게 교수님도 많고, Teaching Assistant(TA)가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교양 과목이 이럴 일이야?’ 하며 당황했지만, 알고 보니 이 학교는 거의 모든 과목에 교수님이 두 분 이상 계셨다. 정말 특이하고 재밌었던 점은 교수님들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설명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이력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 사진과 취미까지 전부 공개하신다. 배드민턴과 테니스가 취미라는 헤드 교수님은 일보다 취미를 설명할 때 더 열정적이셨다.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교수님들이 너무 귀여웠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 영어가 다 들리진 않아서 살짝 당황했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둘째치고 수업 시작 한 시간 만에 단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약물 생성 과정(drug synthesis process)에 대해 주변 사람 여섯 명과 그룹을 만들어 자유롭게 토의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다행히 입학 전부터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 학교 덕분에, 나는 원래 알던 친구 세 명과 오늘 처음 본 친구 세 명으로 그룹을 구성할 수 있었다. 이 학교가 그룹 워크가 많다는 것은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첫 시간부터 이럴 줄은 몰랐다.
우리는 강의실 밖으로 나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부터 내 멘붕은 시작되었다. 나 빼고 모두 마치 이 과제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열띤 토론을 하는 거다. “약물 생성하려면 이거부터 시작해서 패턴트도 보고, 마지막에 다운스트림이 어쩌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는 ‘패턴트(Patent)’가 특허를 의미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간 ‘페이턴트’라고 발음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패턴트’가 특허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그때 “패턴트가 뭐야?”라고 물어봤으면 누군가 알려줬을 텐데, 그때의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자기 말만 하기 바쁜 유럽인들 사이에서 나는 유일한 벙어리가 됐다. 친구들은 “내가 너무 이야기 많이 했나?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며 발언권을 나에게 넘기기도 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참 당황스러웠다. 나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영어를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이 과제가 너무 쉽다면서 빨리 끝내자고 했다. 내용을 전혀 모르니, 이게 쉬운 건지 어려운 건지도 모르는 게 내 상황이었다.
뜬금없이 강의실에 매달려 있던 그네가 마치 나 같았달까...강의실로 돌아와 수업을 듣는 내내 ‘아… 나 이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압도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우리 학교는 유럽에서 탑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정말 천재들의 세계에 들어와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천재가 아닌데… 큰일 났다 싶었다. 어쩐지 애들이 다 하나같이 정말 똑똑하다. 나도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존감이 바닥을 치니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온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지금은 용기를 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난 후, 혼자 강의실에 남아서
헤드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석사 신입생인데요, 오늘 이야기해 주신 내용을 정말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학사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어서 지금 이 모든 게 너무 혼란스러운데,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해야 다시 공부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 헤드 교수님은 보통 이메일도 확인 못 할 정도로 바쁘시다. 그래서 조금 고민하시다가 점심을 같이 먹을래요?라고 하시더니 칠판을 직접 지우기 시작하셨다. 자기가 쓴 칠판을 본인이 지우고 가는 교수님을 처음 봐서 그런가 꽤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리고는 시간이 안되실 것 같았는지 바로 강의실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교수님은 내 지원서를 읽은 기억이 난다면서, “내가 너를 합격시켰으니 너는 당연히 잘해나갈 수 있다”며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내 수강신청 내역을 보시더니, “지금 너무 많은 과목을 신청했으니 좀 정리하라.”라고 조언해 주셨다. 사실 나는 첫 2주간 이것저것 들어보고, 그중에서 할 만한 과목으로 첫 학기를 구성하려고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둔 상태였다. 한국처럼 수강신청이 치열하지 않아서 언제든 추가와 취소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설명드리고 “지금 내게 적합한 수업을 추천해 주실 수 있는지, 혹은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을지”를 여쭤봤다.
그런데 교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배드민턴이나 치는 거 어때요? 지금 너무 많은 변화에 압도당한 것 같은데, 그냥 나가서 운동을 해봐요. 나는 배드민턴이랑 테니스 치는 게 취미예요. 그러면 잠시 현실 세계를 잊을 수 있거든요. 취미가 뭐예요?” 솔직히 이 말을 들었을 땐, ‘나도 배드민턴 치면서 놀고 싶지… 근데 그런다고 이 상황이 해결될까?’ 싶었다. 당시에 이 답변을 들었을 때는 너무 현실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답변 같았다. 물론 교수님도 일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겠지만, 현재 이렇게 일하는 게 익숙하고 생활이 안정된 입장에서야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내 삶과 여가 그리고 공부의 밸런스를 맞추고 싶다.
나는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참 행복했다. 유럽의 여름을 즐기기 위해 3주나 일찍 와서 8월 한 달 동안 실컷 놀고 매일 아침에 러닝도 하며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이런 시련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솔직히 공부는 늘 하던 거니까 괜찮을 텐데, 젊은 애들이랑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이 반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여기서 너무나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참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항상 감사하다. 그저 공부를 못 따라가고 있을 뿐. 사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의 끝자락에도 나는 여전히 매일 공부 때문에 울고불고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은 ‘포기할까? 이번 학기를 끝으로 자퇴할까?’ 생각한다.
3일간 수업을 듣고 나니 내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됐다. 이 정도면 내가 들을 만하겠다 하는 과목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학사 때 A+를 받을 정도로 너무 재밌게 몰입해서 배워서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과목도 다시 들으니까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너무 어려워서 하나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영어로 배워서 그런 건지,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건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10년이 넘는 공백이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공부하는 법 자체를 까먹은 것 같다. 자퇴가 거의 확실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인터내셔널 학생 담당자 오피스를 지나쳤고, 또 용기 내어 문을 두드렸다. “저 이번 학기 석사 신입생인데요, 자퇴가 하고 싶어요.” 키가 2미터가 훌쩍 넘는 그는 당황하며 벌떡 일어나 문을 닫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끼리 하는 말은 다 비밀로 지켜질 거예요. 자, 이제 다 내게 말해봐요. 지금 당신이 어떤 상황인지.” 나는 지금까지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당혹감, 수치심, 자존감 하락 등의 순간들, 그리고 바이오 전공자로서 학교에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는 점 같은 모든 불만사항을 나열했다.
나의 한국에서의 학사 지도교수님은 내가 유럽을 오기 전에 “석사는 성적을 잘 받는 것보다 실험 스킬을 많이 배워와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유럽의 대학원들은 대부분 수업을 듣는 게 석사의 전부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처럼 미리 연구실을 선택해서 들어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논문을 쓰는 마지막 학기가 되어서야 교수님을 컨택해서 함께 연구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실험 수업이라도 많을 줄 알았는데, 실험 수업을 로터리 추첨으로 25명만 뽑는다는 거다. 다행히 나는 그 안에 선발되었지만, 실험실 자리 부족 문제라는 이런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유럽 애들은 학비를 내지 않지만, 나는 학비를 많이 내는데도 만약 실험 수업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이는 부당하다고 말했다. 어떤 수업에서 석사 신입생이 실험 수업이 없는 이유를 질문하자 “우리는 관리자의 위치이기 때문에 실험은 랩 테크니션이 하게 될 거라 그렇게 실험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내 말들을 다 듣고 난 담당자는 나를 스터디 가이던스 오피스로 넘겨주겠다며 이메일을 작성해 주셨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지금 심적으로도 많이 지친 것 같으니 심리 상담도 함께 받을 것을 권유해 주셨다. 나는 스터디 가이던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퇴 절차를 물어봤고, 학비 환불이 가능한지도 물었다.
자퇴를 하려면 12월에 다음 학기 학비를 내지 않으면 자동으로 자퇴 처리가 되며, 그 즉시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학비는 학기가 시작된 이후로는 환불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일단 이번 학기는 꼼짝없이 다녀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하고, 스터디 가이던스 오피스를 찾아가면 뭔가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망의 스터디 가이던스(Study Guidance) 사무실을 찾았다. 대기번호를 뽑고 들어가 앉으니, 웬걸… 나와 같은 학생이 알바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나보다 더 학교 규정을 모르고 있었기에, “어떤 수업을 들으면 나 같은 상황에서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은 무용지물이었다. 다만 내가 수강신청을 많이 한 상태였으므로, 수업 변경 가능 기한에 꼭 취소를 하라는 말은 해주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수강신청 포기와 시험 포기에 대해 물어봤어야 했다. 유럽은 시험을 볼지 말지 ‘시험 등록(Exam registration)’이라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나는 이때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선택하면 그 과목은 포기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수업 등록 포기와 시험 등록 포기는 달랐다. 수업 등록 포기는 말 그대로 그 수업을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뜻이고, 시험 등록 포기는 “이번엔 시험을 안 보고, 나중에 보겠다”는 뜻이었다. 한국과는 달리 재시험 기회가 있는 유럽에서는 시험을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4개월 뒤였다. 즉,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상태에서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해서 시험을 봐야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약 시험을 너무 못 봐서 fail(낙제) 하게 되면, 그건 성적표에 표시가 되고 무조건 다른 학기에 재수강을 해야 된다고 했다. 그러니 유럽에서 수업을 등록했다는 건 ‘그 과목은 어떻게든 패스(pass) 해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이 무시무시한 제도를 이때 이해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결국 역사상 제일 많은 과목을 수강하며 매일 울고 고통받는 첫 학기 석사생이자, 이번 학기 유일한 한국인이 되었다.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몰아쳤던 개강 첫 주를 마무리하고, 주말에 내가 사는 마을에서 축제가 열렸다. 학교 친구들을 불러 함께 놀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 한켠이 늘 불편해서 그런가, 신나게 놀아지지가 않았다. 아직 친구들이랑 어색하기도 하고, 물가가 비싸다 보니 한국처럼 카페에 가거나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도무지 뭘 하면서 놀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축제 부스 구경도 하고, 쇼핑몰 구경도 하고, 친구의 친구가 일한다는 푸드 코너에 가서 이탈리안 파스타를 만드는 광경도 지켜봤다. 그리고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다 같이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
이제 거의 이 나라에 온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스트레스받는 공간은 바로 마트였다. 도대체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도 아니다 보니 일단 다 외계어로 표기되어 있어서 챗GPT로 일일이 번역을 돌려야 하는 점이 스트레스였고, 또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아는 브랜드가 하나도 없고, 뭘 만들어 먹을지도 떠오르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다른 유럽 국가에서 온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뭘 해 먹어? 뭘 살 거야?” “음, 그냥 채소랑 minced beef 사서 볶아 먹을 거야. 아 그리고 휴지도 사야 되고.” 어디 적어둔 건 아니지만 머릿속에 다 들어있다고 했다. 순간, 얘도 나랑 똑같이 해외에서 왔는데 왜 얘는 할 일이 딱딱 정해져 있고 나는 학교 밖에서도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있을까 싶었다. 친구는 필요한 걸 단시간에 쏙쏙 집더니 “버스 와서 얼른 타야 돼”라며 훌쩍 떠나버렸다.
혼자 슈퍼마켓에 남겨진 나는 눈물이 터졌다.
학교 수업만 못 따라가는 줄 알았는데, 내 생활도 엉망진창인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짐도 무겁게 들고 오기 싫어서 캐리어 하나만 덩그러니 들고 왔더니 옷도, 음식도, 화장품도 어느 하나 충분하지 않아서 전부 다 사야 하는데, 이게 또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겹치니 너무 큰 산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집도 가구가 하나도 없는 집으로 배정되어 첫 학기가 시작되는 날 이사를 하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냉장고부터 침대까지 전부 다 내가 구해서 나르고 조립해야 했다.
집이라도 안정되어 있고, 매일 한국에서 들고 온 한식을 먹으면서 수업을 들었다면 좀 나았을까? 내 머릿속엔 “이것도 사야 되고, 저것도 사야 되는데… 내일 수업도 있고, 수업자료도 다운받아야 하고, 벌써 그룹 과제도 있고…” 정말 말 그대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걸 영어로는 “압도되었다”는 뜻의 Overwhelmed라고 표현하는데, 정말 이번 학기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딱 그거였다.
결국 더 이상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나는 친구와 똑같이 파프리카와 mince beef, 소금을 사 와서 집에서 볶아 먹다가 또 한 번 눈물이 터졌다. 책상은 있는데 아직 의자가 없어서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이 비싼 학비를 내면서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며 불쌍하게 살고 있는 걸까?”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해 회의감이 밀려왔다. 집도, 학교도 모두 엉망진창인데 이게 언제쯤 안정될까? 앞이 보이질 않았다.
평소에 힘들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 나였지만, 결국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을 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물가가 비싸서 앞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돈을 벌다가 안 버는 이 상태가 너무 불안하다. 한국처럼 외식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도 힘들고, 수업 따라가는 것도 벅차서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너무 힘들다.” 부모님은 내게 그저 “현명하게 결정해라.”는 말씀만 하셨다.
그렇다. 이 유학은 내가 원해서 온 것이고, 계속하든 포기하든, 그걸 결정할 권한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
일단 이번 학기는 학비를 냈으므로 한 번 끝까지 다녀보고, 그래도 정 안 되겠으면 정말 자퇴를 해도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젊을 땐 패기가 넘쳐서 “절대 포기하면 안 돼!”라며 나를 몰아붙였겠지만, 30대가 넘은 지금은 직장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보니 더 이상 나는 나에게 가혹하게 굴 수 없는 내가 되었다.
설령 누군가가 나에게 한 학기만 다니고 포기했다고 손가락질하더라도, 그게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라면 나는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