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인터뷰"는 BRIC과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함께 만들어 가는 기획인터뷰입니다. 과학커뮤니케이터가 진행하는 인터뷰를 통해 최신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연구경험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생생한 연구자의 삶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톡톡인터뷰는 최근 소개된 한빛사 연구자들 중 제1저자분들을 만나보는 인터뷰로 월 1편씩 총 10편의 영상인터뷰를 소개하게 됩니다. (BRIC 운영진)
BRIC x 과커 <톡톡인터뷰> #그림장
Q. 안녕하세요! 오늘 브릭 <톡톡인터뷰> 진행하게된 과학커뮤니케이터 그림장입니다. 오늘 서울대학교의 이현지님을 모시고 인터뷰 진행해보겠습니다. 현지님과 연구 주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분자세포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는 이현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텔로미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텐데요. 저는 텔로머레이즈 없이도 대안적인 텔로미어 길이를 연장하는 생쥐 세포 모델을 활용해, 이들이 어떻게 노화를 극복하고 영생을 얻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하는데 다양한 방향이 있겠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유전체라고 세포의 모든 DNA 유전 정보를 취합해서 그걸 바탕으로 여러 돌연변이를 분석하는 작업을 주로 진행했습니다.
Q. 이 텔로미어라는 연구 주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저는 세포의 운명 결정과 관련된 연구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암과 노화’라는 주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암과 노화는 둘 다 ‘세포 손상의 축적’이라는 공통적 기원을 공유하는데, 둘은 대체 어떻게 분기하는지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경로가 노화와 암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텔로미어’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또 저희 연구실에서는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 기전을 다양한 연구 모델을 통해서 연구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 모델을 이용해서 어떻게 노화를 극복하고 텔로미어 유지 기전을 획득해서 무한히 증식하는지를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텔로미어가 점차 짧아지는것이 노화의 주범이라고 잘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노화세포는 분열 능력을 읽게 되고 결국 죽거나 꾸준히 살게 되는데 암세포의 경우 짧은 텔로미어 길이를 스스로 연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한히 분열하는 능력의 키포인트이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암세포는 텔로머레이즈라고 하는 효소를 이용해서 텔로미어 길이를 연장하는데 15% 정도에 한하는 일부 암세포들은 텔로머레이즈 없이도 대안적인 방식으로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암세포 외에도 자연계에서 진화 과정에서 텔로메레이즈를 잃어버린 경우에도 예를들어 초파리나 양파같은 경우는 개체의 모든 세포가 이 대안적인 텔로미어 유지 방식으로 텔로미어 길이를 연장한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Q. 디테일하게 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싶은데, figure보면서 연구 내용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처 : Hyunji Lee et al., Haplotype-resolved de novo assembly revealed unique characteristics of 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s in mouse embryonic stem cells. Nucleic Acids Research (2024). DOI: 10.1093/nar/gkae842
figure A는 연구에 사용한 세포 모델을 설명하는 figure입니다. 생쥐 배아줄기세포에서 텔로머레이즈 효소를 결손시켜, 세포가 더 이상 텔로미어를 연장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지속적으로 배양하면 텔로미어가 점차 짧아져 결국 세포 노화 (senescence) 상태에 도달하고, 세포 분열이 멈춥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도 꾸준히 배양을 계속 진행하다 보면 일부 세포가 분열 능력을 회복한 것을 관찰 할 수 있었고, 이러한 세포는 텔로머레이즈가 아닌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텔로미어 길이를 연장하고 유지하는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 기전 (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s, ALT)을 활성화해서 증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포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figure B는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 기전을 연구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저는 그 중에서도 유전체 라는, 세포가 가지고 있는 DNA 유전 정보의 전체에 집중했습니다. 이 그림은 ALT 유전체의 독특한 특징들을 간단히 정리한 그림입니다. 총 세 종류의 데이터를 활용했고 그 중 두 가지는 롱리드 시퀀싱이라고 하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롱리드 시퀀싱이란 것은 기존의 숏리드에 비해서 수천배 이상 긴 DNA 서열을 한번에 읽을 수 있는 기술이어서 고품질의 유전체 지도를 만드는데도 유리하고 다양한 돌연변이들을 정확하게 많이 식별하는데도 굉장히 유용한 기법입니다. 저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법을 활용해서 상호보완적으로 가장 좋은 품질의 유전체 지도를 먼저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 유전체 지도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석을 진행했고,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총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번째는 텔로미어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보았고, 두번째는 다양한 돌연변이가 누적된 현상들을 면밀히 관찰했고, 세번째는 실제 텔로미어 유지에 중요한 유전자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Q. 이 연구하시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셨어요?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시간은 총 2년 정도 걸렸습니다. 제가 연구를 하면서 가장 조마조마하면서도 기뻤던 순간은, 본 연구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인, 고품질 유전체 지도를 성공적으로 완성했을 때였습니다. 롱리드 시퀀싱을 진행하는데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었고 그렇게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조립해 하나의 지도로 완성하는데에도 엄청난 시간과 컴퓨팅 자원이 들었는데요. 다양한 알고리즘과 옵션 조합을 시도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마침내 최종 결과물을 모니터에서 확인했을 때 “드디어 본격적인 분석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안도감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또 컴퓨터 분석을 통해 예측한 세 개의 유전자가 실제로 세포의 텔로미어 안정성 유지에 관여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텔로미어 DNA의 손상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초록색 형광 염색으로 DNA 손상 부위를 시각화하는 실험을 수행하는데, 세 유전자가 각각 결핍되었을 때 텔로미어 부위에서 초록색 형광이 더 많이 빛나는 것을 발견했을때 이때까지 몇 년에 걸쳐서 한 컴퓨터 분석이 가설로만 그친게 아니라 실제 실험적으로도 검증이 되는 사실이구나 라는 것을 밝힌 순간이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Q. 연구생활 하시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논문을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대학원에 입학 했 을 당시에는 제가 컴퓨터를 다루는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원 3년 차에 접어들며 다양한 실험 기술을 익히고 한창 연구 주제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시기에, 연구실 선배의 권유로 유전체 데이터 분석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생쥐보다 유전체 크기가 훨씬 작은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연구 모델을 사용했는데, 선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유전체 분석 기법을 익혔고 운이 좋게도 그 분석 내용들을 엮어 논문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체득한 데이터 분석기술 그리고 논문 작성 경험이 제 다음 연구의 아주 중요한 기반이 되어주었고, 유전체 분석 연구에 대한 흥미를 키워주었습니다. 그때 배웠던 유전체 분석 기법들이 이번 논문을 쓰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연구생 초반 3년의 방황의 과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후반부 실험을 할 때에는 당시 익힌 실험 수행능력이 이번 논문을 작성하고 마무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shRNA를 사용해 특정 유전자를 결핍시키는 기술, 두 달 이상 장기간 배양 했을 때 세포의 성장 능력을 테스트 하는 기법도 배웠고, 텔로미어 길이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기법, 형광 염색 기법을 사용해 보고자 하는 특정 부위를 시각화 하는 기법 등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Q. 논문 작성의 어려움과 즐거움이 궁금합니다.
논문은 단편적인 실험 데이터들을 단순히 나열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완성하는 과정이 제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저의 가설과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실험 데이터가 그것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는지, 부족하다면 어떤 실험이 필요한지 등을 고민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글을 쓸 때에도 이해도와 설득력을 높인 글의 전개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논문의 구성과 흐름을 여러 번 수정했습니다.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전개와 구성 측면에서 여러 논문을 분석하며 배우고, 지도교수님과 동료 연구자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이 어려웠지만 즐겁기도 했던 건 실험실 사람들과 많은 소통을 할 수 있었고, 혼자서 논문을 쓰는게 아니라 정말 여러명의 의견이 모여서 하나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구나 하는 과정의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Q. 어려운 순간 현지님만의 극복 방법이 있다면?
저는 말도 안되게 초긍정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하는데 일이 안되고 방황될땐 '이 실험이 나를 너무 좋아한다' '나를 너무 좋아해서 안 놓아주네' 이런 마인드로 좋게 좋게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음에도 계속 실패하면 낙심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요. 그럴땐 '그럴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려고 하고 진짜 중요한 것 외에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그리고 이 일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만 생각하고 하나하나의 실험 결과 여부에 좌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Q. 논문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한가요?
논문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만족도와 논문이 나오고 나서의 만족도는 다른데요. 논문을 쓸 당시에는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고 뭔가 모자라 보이고 더 채워야 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끝까지 욕심을 냈는데 교수님이 일단은 논문으로 써보자고 하셔서 논문을 쓰게 되었어요. 처음 지원한 곳에서 바로 논문이 실리게 됐는데 예상치 못한 성과여서 의아하면서도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당시에는 약간 불만족스러웠는데 다 되고 나니까 만족도가 확 올랐어요.
Q. 왜 과학이 좋은지, 어떤 계기로 과학의 길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생 때부터 다른 과목보다 유독 과학을 더 좋아했습니다. 다른 과목들은 암기를 해야하는 부담으로 다가왔던 반면, 과학은 물론 외울 것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학 관련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다양한 생명과학 세부 전공 과목들을 자유롭게 선택해 공부할 수 있었는데, 단순히 과목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받는 것으로는 제 지적 호기심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을 공부하고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저도 직접 연구실에 뛰어들어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과정을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와서는 과학이 더 좋아졌습니다. 과학에는 100%의 정답이 없잖아요. 국내외 학회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전공, 연차, 연령을 뛰어넘어 과학 앞에서 하나 되는 모습, 서로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며 활발히 토론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습니다. 과학은 제가 저만의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하는, 그런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운동장이 되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과학이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Q. 혹시 현지님의 연구 꿀팁이 있다면 전수해 주실 수 있나요?
연구를 하다보면 이론상 간단해 보이는 실험이 번번이 제 손에서는 재현되지 않거나, 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어느 순간 막혀 길을 잃는 시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학원 생활은 빠른 성과를 맛보기가 어렵고, 거듭된 실패와 방황에 지치는 일이 많은데, 저 역시 그 장기전을 지낸다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그럴 때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마음가짐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모든 일이 술술 풀리면 재미없지!”라는 다소 가벼운 듯하지만 초긍정적인 태도였습니다. 장난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연구 과정에서 과도한 좌절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의식적으로 이러한 마인드를 되새기며 균형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