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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 <4회> 회의
Bio통신원(바이오행정가)
땀을 흘리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운동,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친구들과의 모임,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나들이, 회식이 아닌 외식, 이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행복한 주말의 시간. 하지만 어느 시인이 말하듯, 무심하게 흘러가 버리는 시간은 잔인하다. 아쉬운 마음에 붙잡으려 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는 법. 분명 햇볕은 따스하고 날은 화창했건만, 어느덧 하늘에는 해가 사라지고, 무거운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다. 기어이 오고야 만 일요일 저녁시간. 애써 한가로운 포즈로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지만 이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슴은 자연스레 머리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생각은 더 떠오르기 마련이다. 월요일 아침 일찍 잡혀있는 기관장 주재 회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강제로 펼쳐진다.
기관장은 연구자출신으로서 다혈질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의 소유자다. 그가 주재하는 회의는 으레 한 사람의 목소리만 회의실을 울리다가 끝나기 십상이다. 그나마 빨리 끝나면 다행인데 보통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두 시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는 기다란 직사각형의 갈색 테이블 끝면, 유달리 시커멓고 위엄 있는 모양새의 팔걸이를 가진 의자에 앉아 회의를 주재한다. 그런 구조가 그를 더욱 부추기는지도 모른다. 양 옆으로는 십여 명이 넘는 간부들과 배석자들이 단조로운 모양과 색상의 정장차림으로 앉는다. 회의 중 누구 하나 얘기하는 일은 드물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목소리를 낸단 말인가. 웬만해선 조용히 듣고만 있고, 침묵의 어깨동무에 동참하는 것이 상책이다. 회의마다 희생양이 정해진다. 희생양의 죄는, 사전에 기관장에게 회의 안건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것이고, 혹여 설명했다 하더라도 기관장의 기억에 뚜렷이 남도록 충분히 반복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죄다. 당일 회의에서 갑자기 대두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미리 예상을 하고 대안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기관장이 보기에 매번 회의 자료는 허점투성이다. 기관장은 결국 스스로 분을 못 이겨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친다. 한 사람의 희생은 나머지 사람들의 무사안일을 의미한다. 길었던 공포의 회의 시간은 이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깊은 한숨소리와 함께 끝이 나고, 다들 각자 부서로 흩어진다. 부서장들은 부랴부랴 각 부서원들을 모으는 후속 회의를 소집한다. 다가오는 회의를 대비하기 위한 회의.... 그렇게 회의는 악순환된다.
회의의 파장은 의외로 크다. 기관장의 심복인 연구행정가 A에게 회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가 총괄하는 부서의 모든 부서원은 일 단위, 주 단위, 월 단위, 연 단위로 한 일(실적)과 할 일(계획)을 작성한다. 작성한 내용을 가지고 수시로, 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부서내부회의를 진행한다. 부서원들 중 한 명은 회의 자료를 취합하고, 총괄 작성하는 일의 전담으로 지명된다. 말은 회의지만, 부서원들 의견 개진이랄 것은 없고, 부서장의 나무람, 지적과 일장 훈시만 존재한다. 부서원들은 한참을 버티다가, 지체되고 있는 일을 언제 할 것이냐는 물음에, 마지못해 자신 없는 답을 우물쭈물 내놓고서야 겨우 풀려난다. 회의는 고문의 도구가 된다.
시간이 지나 기관장이 바뀐다. 리더십 스타일도 다르다. 기관장 주재 회의 중 여기저기에서 제법 말들이 오간다. 하지만 오가는 말들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에 의한 위계질서가 서 있다. 기관장은 누구의 말이든 중간에 끊고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발언을 끊기거나 중지당한 사람은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할 말 제대로 못한 참석자 하나가 억울함을 표시하며 얼굴 표정으로 항의해 본다. 나중에 자신도 그 자리에 오르면, 그 힘을 사용해 보리라 다짐한다. 회의는 말의 각축장이 된다.
15년 전, 한 미국 국립 연구소. 연구행정 분야 단기연수로 이곳에 온 나는, 첫날부터 에스코트를 받으며 한 사람을 졸졸 따라다닌다. 마침 연구자들과 연구행정가들이 함께 모이는 정기적인 회의가 있는데, 그 자리에서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테니 나도 간단히 인사말을 하라고 한다. 미리 준비한 영어를 되뇌며, 드디어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만 회의실 안 풍경(?)에 너무 놀라 머릿속이 하얘지고 만다. 대략 삼십에서 사십여 명의 사람들이 회의실을 꽉 채우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데, 각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어쩜 저렇게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가 있는가, 충격을 받는다. 남녀 비율은 거의 절반, 젊은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족히 할아버지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백인, 흑인, 황인 등 온갖 피부색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입고 있는 옷은 또 어떤가. 반팔, 긴팔티셔츠, 청바지, 정장, 스웨터, 히잡을 두른 여인 등 계절과 입는 옷의 상관성 따위는 원래 없다, 고 항변하는 듯하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온갖 색감과 질감의 옷차림에 현란한 헤어스타일까지.... 영어 발음도 같은 영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그 백인백색의 눈동자를 감당하기 버거웠던 나는, 안 그래도 서툰 영어에 더욱 어눌해진 발음을 더해 서둘러 자기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놀라운 광경은 계속된다. 원탁의 회의 테이블에 앉은 주요 멤버들 외에도 그 주변을 둘러싸고 앉은 회의 참석자들은 그야말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안건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자료를 보니 안건마다 논의 시간이 분 단위로 적혀있고 이를 엄수한다. 1번 안건 7분, 2번 안건 3분..... 한 참석자는 회의 주재자가 발언 중 숫자를 틀리게 말했다고 지적한다. 회의 주재자는 기꺼이 그 의견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발언을 정정한다. 나이가 20대로 보이는 이는 70대로 보이는 이에게 자신 있게 질문을 던진다. 할아버지는 청년에게 정중히 답변을 한다. 회의 중 품위 있는 대화,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의 권력과시용 회의, 일방적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회의, 의사결정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방어막용 회의, 애초에 의견을 교환하고 의논할 의도가 없는 이러한 회의는 진정한 회의가 아니며, 조회(朝會)나 군대의 집합에 가깝다.
“일방로는 지배와 종속의 길이기 십상입니다. 또한 모방의 길이며 단색의 길일뿐입니다. 지배와 종속, 모방과 단색의 길이 창조의 길이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히틀러를 통해 뼈저린 교훈을 얻은 독일. 어느 날 독일에서 초청한 한 전문가는, 회의가 아니라 50분짜리 강연이었음에도, 강연 전 청중을 향하여 당부의 말을 전한다. 독일에서는 누군가 혼자서 오랜 시간 말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 강연 전 언제라도 좋으니, 질문이 생기면 내가 말하는 도중이라 할지라도, 바로바로 얘기해 달라. 나는 강연자의 다소 생소한 말에 약간은 어리둥절하여, 옆에 앉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실없이 웃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강연 후 한 두 개의 질문이 있었으니 예의는 차렸다는 안도감은 들지만, 무엇을 위한 예의인지는 다시 의문이다. 그리고 왠지 강연자는 그리 만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라는 찜찜한 생각이 남지만, 이내 행사는 서둘러 마무리된다.
※ 참고
* p319, <더불어숲> 신영복 지음,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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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분야 공공연구기관에서, 이십여 년 넘게, '연구 행정'을 업으로 삼고 있는 행정가입니다. 그간 좌충우돌 헤매며 연구자분들과 소통했던 과거를 반추하며,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다소 먼 심리적 거리는 무엇에 기인하며, 어떻게 하면 그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 상생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은 무엇일지, 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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